■ 그 옛날의 트로트- 노래의 고향을 찾아서

<37> 에레나와 카츄샤

▲ 일본영화 <전쟁과 한 여자>스틸컷(2012, 이노우에 준이치 감독)

1950년의 6.25전쟁은 군인들만의 전쟁이 아니었다. 사는 것 자체도 전쟁이었다. 전쟁으로 졸지에 삶의 터전을 잃은 우리의 순희-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고향집 석유등잔불 밑에서 물레질하고, 밤새워 실패를 감던 순희, 열 아홉살에 시집 갈 꿈을 꾸던 순희, 아이 낳고 남편 봉양하던 현모양처 순희, 대학 교정에서 해맑게 꿈을 키워가던 순희가 양키클럽 앞에서, 역전 카바레에서 노랑머리에 뾰족구두 신고 껌을 짝짝 씹어대가며 양담배를 피우는 순희, 낯선 미군을 부둥켜 안고 춤을 추는 순희로 바뀌었다. 겨우겨우 입에 풀칠하던 그 옛날의 순희네 집엔 초콜릿이며 소시지·햄·치즈·양주·양담배가 넘쳐났다.

이른바 미군을 상대로 성매매 하는 ‘양공주’, ‘양색시’란 직업은, 우리의 순희들이 먹고 살기 위해 그 당시 ‘닥치는 대로’ 해야 했던 일의 마지막 선택지였다.
<꿈에 본 내 고향>을 부른 한정무(1919~1960)의 노래 <에레나가 된 순희>가 그들의 모습을 그려주고 있다.

 

(1) <에레나가 된 순희>의 ‘에레나’

1. 그날 밤 극장 앞에서 그 역전 카바레에서
   보았다는 그 소문이 들리는 순희
   석유불 등잔 밑에 밤을 새면서
   실패 감든 순희가 다홍치마 순희가
   이름조차 에레나로 달라진 순희 순희
   오늘밤도 파티에서 춤을 추드라

2. 그 빛깔 드레스에다 그 보석 귀걸이에다
   목이 메어 항구에서 운다는 순희
   시집갈  열아홉살 꿈을 꾸면서
   노래하든 순희가 피난왔던 순희가
   말 소리도 이상하게 달라진 순희 순희
   오늘밤도 양담배를 피고 있드냐

                (1954, 손로원 작사/ 한복남 작곡 /한정무·안다성 노래)

 

▲ <에레나가 된 순희> 원곡가수 한정무(사진 왼쪽부터 황금심·백난아·한정무·금사향·만담가 고춘자).

노래 속 여주인공 에레나는, 19세기 러시아의 진보적 소설가 투르게네프(I.S.Turgenev; 1818~1883)의 소설 <그 전날 밤>에 등장하는 러시아 여자 이름이다.
노랫말을 지은 손로원(1911~1973)은 피난시절 부산 용두산공원의 판잣집에서 단칸셋방살이를 하며 초상화 그리기와 노랫말 작사로 연명했다. 이 노래에는 그의 빛나는 현실감각이 잘 드러나 있다.
‘봄날은 간다’의 작사자이기도 한 손로원은 그렇게 전쟁이 빚어낸 당시 우리 세상의 참모습과 아픔을 노랫말로 극명하게 드러냈다.

‘춤곡인 탱고 리듬으로 잘 만들어진 노래’라는 평가를 받았던 이 노래는 애초 한정무의 목소리로 1954년 이 세상에 내놓았는데, 대중들 반응은 별로였다. 5년여 뒤 작곡가 한복남이 재녹음을 위해 한정무를 찾았으나, 한정무는 1960년 불의의 교통사고로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다.
하는 수 없이 당시 KBS전속가수 출신 신인가수였던 안다성(1931~ )에게 취입시켰다.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 <에레나가 된 순희>를 불러 스타가수가 된 안다성.

안다성도 이 노래의 히트로 인기가수의 반열에 들어서게 됐다.
이 노래는 당대 정권의 입맛에 따라 양담배 단속 시책을 펼 때에는 2절 끝소절 가사 ‘오늘밤도 양담배를 피고 있드냐’를 ‘오늘밤도 파티에서 웃고 있더라’로 바꾸기도 하고, 멀쩡한 ‘순희’가 ‘순이’가 되기도 했다. 하~ 수상했던 시절 만큼이나 곡절 많았던 노래다.

 

(2) <카츄샤의 노래>의 ‘카츄샤’

19세기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L.Tolstoy; 1828~1910)의 대작 <부활(復活)>(1899)을 각색한 영화 <카츄샤>(유두연 감독)의 주제곡이다.

▲ 기지촌 여성들, 일명 ‘양공주’의 일상을 그린 영화의 한 장면.

<부활>은 1914년 일본에서 각색돼 연극 <카츄샤>로 상연됐고, 그 이듬해인 1915년에는 우리나라 용산에서도 상연됐다. 이 영화는 1918년 <해당화>라는 제목으로 번역(박현환 역)출간된 텍스트에서 원작의 기본 뼈대가 되는 사상적인 내용은 배제시키고, 권선징악적인 사랑 얘기로 각색해 한국적으로 영화화 한 작품이다.

때는 일제강점기. 부농의 상속자 아들 원일(최무룡 분)은 판·검사가 되고자 법을 공부하는 법대생이다. 때마침 방학을 맞아 시골집에 내려오게 되고, 이때 집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옥녀(김지미 분)와 사랑에 빠져 아이를 갖게 된다. 방학이 끝나 원일은 상경하고, 아이를 가진 옥녀는 이 사실이 알려져 원일의 집에서 쫓겨난다.

무작정 서울로 올라온 옥녀는 카바레에 취직해 카츄샤라는 이름의 여급으로 일하게 된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원일은 검사직마저 버리고 백방으로 수소문해 옥녀를 찾아낸다. 그러나 옥녀는 병이 깊어 원일의 품에서 숨을 거둔다는 스토리다.
이 영화의 주제가 <카츄샤의 노래>는 극작가이자 작사가인 유호가 노랫말을 짓고, <꿈꾸는 백마강>을 부른 이인권이 작곡했다. 애초 노래는 송민도가 불렀는데, 뒤에 이미자·김부자·김추자·김연자가 나름대로 리메이크해 불러 크게 히트했다.

 

 

▲ 영화 <카츄샤> 포스터

          <카츄샤의 노래>
1.  마음대로 사랑하고 마음대로 떠나가신
   첫사랑 도련님과 정든 밤을 못잊어
   얼어붙은 마음 속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오실 날을 기다리는 가엾어라 카츄샤
   찬바람은 내 가슴에 흰눈은 쌓이는데
   이별의 슬픔 안고 카츄샤는 흘러간다

2. 진정으로 사랑하고 진정으로 보내드린
   첫사랑 맺은 열매 묻기 전에 떠났네
   내가 지은 죄이기에 끌려가도 끌려가도
   죽기전에 다시 한번 보고파라 카츄샤
   찬바람은 내 가슴에 흰눈은 쌓이는데
   이벌의 슬픔 안고 카츄샤는 흘러간다

              (1960, 유호 작사/ 이인권 작곡 / 송민도 노래)

 

이 영화에 삽입된 또다른 주제가 <원일의 노래>는 1960년 최무룡이 불러 영화의 인기를 더했다. 특히 노래가 시작되기 전, 낭랑한 목소리로 낭송하는 최무룡의 깔끔한 대사가 인상적이다.

“최무룡입니다. 이번에 제가 주연한 영화 <카츄샤>의 주제가를 한번 불러볼까 합니다. 약한 여자이기에 받아야 했던 모진 운명을 안고 북쪽 하늘 밑 거치른 벌판을 한없이 흘러가야만 했던 카츄샤에게 또 다시 옛님의 다사로운 입김이 되살아오길 빌면서 저는 이 노래를 부르렵니다.”

 

          <원일의 노래>
  내 고향 뒷동산 잔디밭에서
  손가락을 걸면서 약속한 순정을
  옥녀야 잊을소냐 헤어질 운명
  차가운 밤하늘에 웃음을 팔더라도
  이제는 모두 잊고 내품에 잠들어라

            (1960, 유호 작사/ 이인권 작곡/ 최무룡 노래)

 

(3) <땐사의 순정(純情)>

이 땅에 미국 문화의 하나인 댄스홀이 본격적으로 생겨난 건, 6.25전쟁 이후 미군들이 쏟아져 들어오고 그와 더불어 미국 대중문화가 거침없이 흘러 들어오면서부터다. 이후 댄스홀·댄스학원이 늘어나고, ‘춤바람’이 사회문제로 대두되기도 했다. 사교춤이 번성하고, 혼자 춤을 추러 댄스홀에 오는 남자손님을 돈을 받고 상대해 주는 직업댄서도 생겨났다.
부드러운 인상의 예쁜 얼굴을 가졌던 가수 박신자(1931~1961)가 1959년 유성기 음반으로 내놓은 <땐사의 순정>은 겉으로는 화려해 보이지만 댄서의 서글픈 애환을 그린 노래다.

 

▲ <땐사의 순정>을 부른 박신자의 앨범재킷

         <땐사의 순정>
1. 이름도 몰라요 성도 몰라
   처음 본 남자품에 얼싸안겨
   네온싸인 아래 오색등불 아래
   춤추는 땐사의 순정
   그대는 몰라 그대는 몰라
   울어라 색소폰아

2. 새빨간 드레스 걸쳐입고
   넘치는 그라스에 눈물지며
   비 내리는 밤도 눈 내리는 밤도
   춤추는 땐사의 순정
   그대는 몰라 그대는 몰라
   울어라 색소폰아

3. 별빛도 달빛도 잠든 밤에
   외로이 들창가에 기대서서
   슬픈 추억속에 남모르게 우는
   애달픈 땐사의 순정
   그대는 몰라 그대는 몰라
   울어라 색소폰아

         (1959, 김영일 작사/ 김부해 작곡/ 박신자 노래)

 

▲ <댄서의 순정>으로 리메이크했던 김추자(금지해제 기념앨범)

3박자 블루스 리듬의 이 노래는 빛을 보기도 전에 원곡가수 박신자가 서른 한 살 나이에 갑작스레 요절하고, 1970년 김추자가 관능적인 분위기의 <댄서의 순정>으로 리메이크 해 불러 크게 히트했다. 그래서 김추자를 원곡가수로 알고 있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이 노래는 이미 1968년 공연윤리위원회로부터 ‘가사 저속, 퇴폐적’이란 이유로 금지곡 판정을 받았고, 김추자가 다시 부른 이후인 1975년에 다시 ‘저속·방송부적격’ 판정을 받는 등의 금지곡 철퇴를 맞았지만, 이후 이미자·조미미·장사익·주현미 등 후배가수들이 나름의 곡해석으로 다양하게 불러 이 노래의 생명력을 질기게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처음 본 남자품에 얼싸안겨 푸른 등불 아래 붉은 등불 아래 춤추는 댄서의 순정’을, ‘넘치는 그라스에 눈물짓는’ 애달픈 댄서의 순정을 그 누가 알랴…
그렇게 우리의 ‘순희’들은 주체하기 힘든 모진 시대의 칼바람 위에 버티고 서서 세상을 아프게 살아냈던 것이다. 감히 누가 이들에게 ‘도덕적 타락’이라고 돌을 던질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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