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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주■ 세자매네 반디농장 김영란의 전원일기 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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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01.22  10:4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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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 은주야~
그 아픔 다 이겨내고
잘 살아준 은주야!
고마워~"

타임머신을 타고 50년 전으로 시간여행을 해본다. 1970년대가 막 시작된 우리나라. 새마을운동이 시작된 시점이다. 마을에서는 아침마다 확성기로 새마을운동 노래를 우렁차게 틀었다. “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 우리 모두 일어나 새마을을 가꾸세~” 하면서 확성기를 크게 트니까 자다가도 일어나서 앞마당과 골목길을 쓸었다. 노래처럼 기운이 들썩들썩, “우리도 한 번 잘 살아 보세~”하며 온 나라가 희망을 부르짖으며 ‘잘 살아보세~’를 외쳤다.

쌀이 넉넉지 않아서 쌀 한줌에 시래기를 듬뿍 넣은 시래기밥, 감자를 듬뿍 넣고 밀가루를 한 줌 넣어서 만든 감자범벅, 밀가루 반죽을 홍두깨로 밀어서 자주 해먹던 밀가루국수, 두부 만들고 남은 비지로 해 먹던 비지밥. 그땐 없어서 먹던 주식이 지금 생각해보니 건강식인데다가 별미로 여겨진다. 그즈음 라면도 나왔는데 많은 식구가 나눠먹으려면 라면 두어 개 넣고 양을 불리려고 국수를 섞어서 끓여먹던 기억도 난다. 그렇게 먹고도 우리들은 무럭무럭 자랐다.

1969년, 아버지가 운영하던 광산이 사고로 매몰되면서 우리집은 읍내로 이사했다. 호롱불에서 전깃불로, 옹달샘물에서 수돗물로, 문명세계로 이동했지만 50년이 지난 지금도 내 정서적인 자양분은 산골에서 뛰놀던 그 배경 그대로인 것 같다. 그때 그 시절, 추억담들이 뭉개구름처럼 솟아나지만 요즘 유난히 떠오르는 한 아이. ‘은주’

내가 다니던 국민학교 근처에 고아원이 있었는데, 5학년 때 내 옆 짝꿍인 은주는 그곳 고아원아였다. 옆 짝꿍인데도 거의 말을 하지 않아서 그 애랑 말한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가 말을 시켜도 고개를 끄덕이거나 간간이 아주 희미하게 스쳐가는 웃음을 지었을 뿐. 핼쑥한 얼굴에, 흰 버짐이 얼굴 가득했고, 깡마른 몸매에 잘 헤지지 않는 나일론 단벌옷소매가 훌쩍이는 콧물을 훔치느라 반질반질하던...

점심시간이면 어디론가 나가서 수업종이 울려야 들어오던 은주. 그래서 내 도시락을 같이 먹자고 했는데 미안한지, 고개 푹 숙이고 소리 없이 먹던 은주! 그때는 어린 맘에 불쌍한 생각만 했는데 이제 60년을 살고 보니 은주가 짊어졌던 삶의 무게는 내가 상상도 못할 무게였으리라 짐작된다.

학년이 바뀌고 나는 은주의 소식을 듣지 못했다. 중학교에 갔다는 소식도 듣지 못했다. 내 인생이 파란만장했다며 너스레를 떨다가도 은주가 떠오르면 숙연해진다. 그녀를 떠올리면 그 어떤 응석도 투정도 사치스러울 것 같아서 마음을 추스른다. 시작부터 불공평하게 시작됐던 은주의 삶. 은주는 어떻게 살아 냈을까~ 은주를 다시 만난다면 꼬옥 안아주고 싶다.

은주가 옆에서 묻는다면?
“엄마 없는 설움이 어떤 건지 모르지?” “난 엄마가 52세까지 계셨어~”
“부모 없고, 국민 학교밖에 못 나온 사람이 어떤 세상을 만나는 건지 모르지?” “으~응~~” “아무도 기댈 곳이 없는 세상, 얼마나 외롭고 혹독한지 짐작 못하지?” “~~~”
“배고픔, 슬픔, 아픔...웃음, 즐거움, 기쁨...중...내겐 배고픔만 기억나~~~~” 
“미안해, 은주야~ 그 아픔 다 이겨내고 잘 살아준 은주야! 고마워~”
은주를 떠올리면... “삶에 투정 부리면 안 돼~” 하고 나에게 꾸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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