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자수필-귀농아지매 장정해 씨의 추억은 방울방울

"행복이 어디에 있는지
마음가짐이 어때야 하는지
명쾌한 답을 준다..."

코로나19로 서울로 오가지 못하는 탓에 자연스레 택배 물량이 많아졌다. 가진 것 중에 좀 넉넉한 것을 서로 나누는데, 우리는 시골에 저장해 둔 감자, 고구마, 깨, 과일, 김치 등 식품을 부쳐주고 애들은 책, 공산품, 건어물 등을 부쳐온다. 이번에 보내온 박스에는 책이 많다. 그중에 얄팍한 그림책 한 권이 섞여 있어, 제 아들 것을 잘못 보냈나 하고 대충 보려고 펼쳤는데 첫 장부터 빠져들었다, 책의 첫 페이지에 ‘여우는 대체로 침묵을 지키고 또 경계심이 많습니다. 살아오면서 받은 상처 때문이지요.’라는 문장이 궁금증을 증폭시킨다.

영국의 일러스트레이터 ‘찰리 멕커시’가 쓰고 그린 동화책으로 많은 색을 생략하고 선으로 표현한 그림이 진한 여운을 남긴다. 글자는 적고 여백이 많아 다 읽는데 30분도 안 걸린다.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이라는 긴 제목의 동화책인데 소년, 두더지, 여우, 말 등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조합이지만 그들의 주고받는 대화 속엔 애틋한 사랑이 넘쳐난다. 소년이 길을 가면서 두더지를 만나고 여우를 구해서 함께 하고, 말을 만나서 길을 가는 내용이다. 주고받는 선문답은 곱씹을수록 깊은 깨달음이 달콤 쌉싸름하게 전해온다. 삶의 행복이 어디에 있는지, 내 마음가짐이 어때야 하는지 명쾌한 답을 준다.

“난 아주 작다.” 두더지가 말하자 “그러네, 그렇지만 네가 이 세상에 있고 없고는 엄청난 차이야” 소년이 답했다./ “살면서 얻은 가장 멋진 깨달음은 뭐니?” 묻자 “지금의 나로 충분하다는 것”/ “너 자신이 정말 강하다고 느낀 적은 언제야?” 소년이 또 묻자 “내 약점을 대담하게 보여줄 수 있었을 때”/ “시간을 낭비하는 가장 쓸 데 없는 일은?”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일”/ “가장 심각한 착각은?” “삶이 완벽해야한다고 생각하는 것”/ “네가 했던 말 중에 가장 용감했던 말은 뭐니?” “도와줘”라는 말/ “넌 성공이 뭐라고 생각하니?” 소년이 묻자 “사랑하는 것”이라고 두더지가 답했다.

논리적인 설명도 없고 미사여구도 없고 그림도 화려하지 않고 기본적인 이야기를 아주 쉬운 말로 쓴 책인데 감동이 끝없다. 간단명료하고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토록 나의 맘에 닿는 것은 내 속에서 고민하던 것과 상통한 까닭이 아닐지.

요즘 즐겨보는 TV수목드라마 ‘런-온(Run-On)’에서 네 명의 주인공이 나오는데, 같은 한국말을 쓰면서도 소통이 안 된다. 각각 서로 아주 다른 세계에 살던 사람들이 만나 각자의 언어로 소통하려는 고통 속에 서로의 말을 배우고 관계를 맺고 성장하며 자기를 가둔 틀을 깨고 성공을 향해 직선으로 달리고 있다. 동화책 두더지의 말로 하면 사랑으로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프랑스에서 코로나 봉쇄령이 떨어지기 전에 가장 인파가 몰린 곳이 뜻밖에도 동네 서점이라고 한다. 그들은 자신의 행복 찾기에 적극적이어서 자기가 행복했던 일을 기억해두고 그 순간을 스스로 만들어 간다는 것. 행복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것이 바로 서점 앞에 긴 줄을 세운 것이다. 

행복의 역치(閾値)를 낮추는 것이야말로 사람이 가장 쉽게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요즘 코로나19 덕분에 예전에 맛보지 못한 넘치는 시간을 누린다. 처음에는 뒹굴뒹굴 쉬는 것이 자유롭다고 여겨졌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건 쉼이 아니었다. 나는 먼저 딸아이들이 갖고 있는 최근의 책과 테이프를 내 것과 모두 바꿔 읽기로 했다. 그리고 눈 덮인 하얀 강줄기가 전설처럼 아련히 풀어져 내리는 한 겨울, 나도 행복한 겨울나기에 맘을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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