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옛날의 트로트 - 노래의 고향을 찾아서

▲ <외나무 다리>노래비(2010, 경북 영덕군 영덕읍 삼각주 공원 소재)

<36> 싱잉스타 최무룡의 노래들

▲ 최무룡의 만년 모습

10년 전, 한 유력 일간지가 펴내는 월간 종합지에 ‘한국 액션영화배우 열전’ 네 번째로 ‘최무룡(崔戊龍, 1928~1999) 편’이 소개됐다.
“꿈꿨기에 불행했던 이카루스의 지친 뒷모습-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기사의 전체 타이틀이다. 사뭇 현학적인 표현으로 최무룡의 일생을 역설적으로 표현했다. 무겁다. 어렵다.

앞의 대제목은, 그리스신화 속의 인물 이카루스(Icarus)의 이루지 못할 꿈과 도전정신을 빗대 얘기하려 한 것일까. 신화 속 이카루스는 미노스 왕이 통치하는 크레타섬을 탈출하기 위해 아버지가 만들어 준 밀랍으로 붙인 날개를 달고 무한한 비상의 꿈을 가지고 하늘을 날다 뜨거운 태양빛에 날개가 녹아내려 땅에 떨어져 죽는다.

천재시인 이상의 시 <날개> 속 박제된 천재의 안타까움으로 대비시켜 보려는 한 배우에 대한 기자의 애정이 눈물겹다.
기자는, 우연히도 서울역 뒤편의 한 3류극장에서 영화 개봉 전 무대에 나와 노래 한 곡을 부르고 쓸쓸히 퇴장하는 노회한 왕년의 대스타 최무룡의 처진 어깨를 보았다고 썼다.

우리 연예계를 통관하던 한 노기자는 영화배우 최무룡의 실체를 이렇게 표현했다.
“잘 생겼다. 연기도 잘 했다. 연출력은 뛰어났고, 영화를 향한 열정은 끓어 넘쳤다.… 하지만 세상은 그를 제대로 평가해 주지 않았다.”

1950년대 후반부터 최무룡은 폭넓은 타고 난 연기력을 바탕으로 배우로서, 언제나 자신만의 걸작을 찍고싶어 하는 감독으로서, 우리 영화계에서 ‘스크린의 황제’로 군림했다.
그러나 첫 번째 부인 강효실과의 결혼과 이혼, 김지미와의 만남과 헤어짐, 그리고 사업(영화제작)의 연이은 실패… 등, 그는 끝이 보이지 않는 미로같은 굴곡진 인생을 살았다. 그의 인생 자체가 영화였다. 그래서 그가 많지 않은 72세의 나이에 이 세상을 떠나게 된 사인(死因)인 ‘심장마비’가 예사롭지 않은 비감을 안겨준다.

맑은 미성의 목소리…
자긍심 가지고 노래 부르는 것 즐겨 

그는 수백 편 영화를 찍은 주인공 배우로서 뿐만 아니라 가수로서도 일가를 이뤘다. 맑고 매끄러운 미성의 목소리로 그 자신이 출연했던 영화의 주제가는 모두 자신이 부르고 음반을 냈다. 그게 32곡이다.

또한 그의 애창곡집을 보면, 자신의 노래 외에 <두메산골>, <안개 낀 장충단공원>, <돌아가는 삼각지>, <번지 없는 주막>, <나그네 설움>을 부른 것으로 봐서 백년설과 배호의 노래들을 좋아했던 것 같다.

이처럼 영화의 주연배우가 직접 음반을 내고, 무대에 올라 노래를 불렀던 특별한 상황(?)은, 특히 극장무대에서의 선전과 영화의 흥행을 이끌어내기 위한 계산된 포석이었다.
그러나 최무룡은 연기자로서도 그렇지만, 가수로서도 상당한 자긍심을 가지고 공들여 노래를 불렀던 듯 싶다. 이제 그가 불러 히트시킨 영화 주제가의 세계로 시간여행을 떠나보자.

 

(1) <꿈은 사라지고>
         (1959, 김석야 작사/ 손석우 작곡)

라디오 드라마를 영화화 한 작품으로 권투선수의 꿈과 사랑을 그린 영화다.
한국 최초로 권투신이 들어가 있다.
최무룡의 상대역으로 출연했던 문정숙이 <나는 가야지>를 직접 불러 인기를 더해 당시 10만 관객을 동원하며 인기몰이를 했다.

(가사) ‘나뭇잎이 푸르던 날에 / 뭉게구름 피어나듯 사랑이 일고 /끝없이 퍼져나간 젊은 꿈이 아름다워 // 귀뚜라미 지새울고 낙엽 흩어지는 가을에 / 아~꿈은 사라지고 꿈은 사라지고 / 그 옛날 아쉬움에 한없이 웁니다’

▲ 최무룡이 주연을 맡고 주제가를 불러 히트시킨 영화들.(꿈은 사라지고·외나무다리 영화 포스터)

(2) <원일의 노래>
         (1960, 유호 작사 / 이인권 작곡)

최무룡·김지미가 주연했던 영화 <카츄샤>의 주제가로 송민도가 부른 <카츄샤의 노래>와 함께 인기를 얻었다. 이 영화의 음악을 맡았던 이인권의 곡들이다.
톨스토이의 <부활>을 각색한 이 영화는, 서울 국제극장에서 개봉돼 10만 관객을 동원했다. 유성기 음반으로 나온 이 노래 첫머리에 녹음된 최무룡의 맑고 깔끔한 대사가 인상적이다.
“최무룡입니다. 이번에 제가 주연한 영화 카츄샤의 주제를 한번 불러볼까 합니다…”
훗날 가수 방운아가 리메이크 해 불러 큰 인기를 얻었다.

(가사) ‘내 고향 뒷동산 잔디밭에서/ 손가락을 걸면서 약속한 순정을/옥녀야 잊을소냐 헤어질 운명 / 차가운 밤하늘에 웃음을 팔더라도/이제는 모두 잊고 내 품에 잠들어라’

 

(3) <외나무 다리>
         (1962, 반야월 작사/ 이인권 작곡)

영화 <외나무 다리> 주제곡으로 <꿈은 사라지고>, <단둘이 가봤으면>과 함께 최무룡의 대표히트곡이다.
노래의 배경인 경북 영덕군 영덕읍의 삼각주 공원에 <외나무 다리>노래비가 2010년 건립됐다.

(가사) ‘1. 복사꽃 능금꽃이 피는 내고향/ 만나면 즐거웠던 외나무 다리/ 그리운 내사랑아 지금은 어데 /새파란 가슴 속에 간직한 꿈을/못잊을 세월 속에 날려 보내리
2. 어여쁜 눈썹달이 뜨는 내 고향 /둘이서 속삭이던 외나무 다리/ 헤어진 그날 밤아 추억은 어데 / 싸늘한 별빛 속에 숨은 그 님을 / 괴로운 세월 속에 어이 잊으리’

 

(4) <단둘이 가봤으면>
         (1964, 한산도 작사 / 백영호 작곡)

영화 <꿈 잃은 사나이>의 주제가로 1964년 지구레코드 LP판 1면 타이틀곡으로 제작됐다. 그런데 2면(뒷면)에 수록된 이미자의 <동백아가씨>와 <황포돛대>가 오히려 1면의 타이틀곡보다 더 크게 히트하는 이변을 낳았다. 앨범재킷 표지는 신성일·엄앵란이 주연한 영화 <동백아가씨> 사진으로 장식됐고, 우리나라 음반판매 100만 장 시대를 처음으로 연 기념비적 음반이다.

(가사) ‘흰구름이 피어오른 수평선 너머로/ 그대와 단둘이 가보았으면 / 하얀 돛단배 타고 물새들 앞세우고/ 아무도 살지않는 작은 섬을 찾아서/ 아담하게 집을 지어 그대와 단둘이 / 행복의 보금자리 마련했으면’

그 외에 <가는 봄 오는 봄>주제가인 <살고 보세>, 영화 <울며 헤진 부산항> 주제가인 <사나이 우는 마음>, <지미는 슬프지 않다> 주제가인 <사랑은 오직 한길>, 영화 <심야의 종소리> 주제곡 <동경나그네>… 등이 지금도 ‘만인의 연인’이었던 최무룡을 따뜻하게 추억케 하고 있다.

 

▲ 1920년대 단성사 모습

역사기록상 우리나라 최초의 영화로 얘기되고 있는 작품은, 1919년 10월27일 단성사에서 개봉된 김도산 감독·연출의 <의리적 구토(義理的 仇討)>다.(그런 연유로 10월27일을 ‘영화의 날’로 지정했다)

단성사 사장이었던 박승필이 제작한 최초의 활동사진 연쇄극이다. 이를테면, 연극 무대에 영화 화면(스크린)을 함께 설치해 한강다리라든가 기차 모습을 영상으로 보여줬던 무성영화시대 활동사진의 시초이기도 했다. 주제가는 스크린이 설치된 무대 한쪽에 가수가 직접 나와 생음악으로 노래를 불렀다.

▲ 영화 <아리랑>을 제작·감독·주연을 맡았던 춘사 나운규.

그 7년 뒤인 1926년 10월1일, 춘사(春史) 나운규(羅雲奎, 1902~1937)가 제작·감독·주연을 맡은 영화 <아리랑>이 단성사에서 처음 상영됐다. <아리랑>은 그뒤 2년6개월 동안 전국을 돌며 상영됐다.
3.1운동의 충격으로 정신이상자가 돼 일제에 아부하면서 반민족적 행동을 일삼는 자(기호)에게 낫을 휘두른 죄로 수갑을 찬 채 일본순사에게 끌려가는 주인공(영진)… 이때 주제가 ‘아리랑’이 배경음악으로 흐른다.

▲ ‘아르렁’으로 표기된 김연실의 ‘아리랑’ 유성기 음반 라벨(빅터레코드사)

우리나라 최초의 영화주제가는, 무성영화시대에 스크린 옆에 서서 막간가수 이상숙이 직접 ‘생으로’ 불렀던 ‘아리랑’이다. 그러나 영화제작 기법상 녹음편집돼 영화에 삽입된 ‘아리랑’은 1930년 일본 빅터레코드사에서 ‘아르렁’이란 타이틀의 유성기 음반으로 나왔다. ‘아르렁’은 한국말을 잘 몰랐던 일본 빅터레코드사 직원이 ‘아리랑’을 ‘아르렁’으로 잘못 받아적어 음반에 그대로 인쇄된 것이었다.
이 음반은 일제강점기때 신일선·문예봉과 함께 최고의 여배우로 꼽혔던 막간가수 김연실을 나운규가 <아리랑> 영화 재상영때 불러 녹음시켜 발매한 것인데, 그 까닭에 이를 최초의 영화주제가로 꼽기도 한다.

참고로, 우리나라 최초의 창작가요로서의 영화주제가는 1927년 이정숙이 부른 <강남달>(일명 <낙화유수>)이다. 이 노래는 작사·작곡자인 김서정이 진주 촉석루에 앉아 남강 건너 강남 위에 뜬 달과 남강을 굽어보며 기생이었던 자신의 어머니를 노래의 화자로 해서 지은 것이라  전해진다. 김서정은 이 곡을 동요 <오빠생각>을 부른 중앙보육학교(중앙대 전신)출신의 동요가수 이정숙에게 부르게 했던 것이다.

‘강남달이 밝아서 임이 놀던 곳 / 구름 속에 그의 얼굴 가리워졌네/ 물망초 핀 언덕에 외로이 서서 / 물에 뜬 이 한밤을 홀로 새울까’
- 김서정 작사·작곡 <강남달> 가사(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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