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광희 칼럼 - 누리백경(百景)(168)

#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시간은 잠시도 우리 곁에 머물러 주지 않는다.
어김없이 묵은 해-경자년이 가고, 새해-신축년(辛丑年)이 밝았다. 지나간 한 해는 우리 모두가 두 번 다시 겪어내고 싶지도, 기억조차 하고 싶지도 않은 신역(身役) 고된 나날들의 연속이었다.

<교수신문>에서는 전국 교수 90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 해 2020년 사회상을 반영한 ‘올해의 4자성어’를 순위별로 선정·발표했다. 1위에는 ‘나는 옳고 남은 그르다’는 뜻의 신조어 <아시타비(我是他非)>가 총 1812표 중 588표(전체의 32.4%)를 얻어 선정됐다.

이른바 ‘조국사태’로 불거진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을 지적한 것이다.
다음 2위 역시 그 연장선상에서 ‘낯이 두꺼워 부끄러움을 모른다’는 뜻의 <후안무치(厚顔無恥)>(21.8%)가 선정됐고, 3위는 <격화소양(隔靴搔癢)> (16.7%)이 차지했다. ‘격화소양’은 신발을 신고 가려운데를 긁는다는 뜻으로, 본질을 외면한 채 겉돌기만 하는 답답한 상황을 이르는 말이다.
이러한 사자성어가 그리고 있는 사회상황은 해가 바뀐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라는데 문제가 있다.

# 신축년(辛丑年) 새해는 소띠, 그것도 ‘흰 소의 해’라고 한다. 이는 술사들이 특별한 의미 부여를 위해 오행상의 색깔인 흰소로 특정했음이다.
소는 12간지 중 약삭빠른 쥐에 이어 두 번째 동물이고, 축(丑)이며, 방향은 동북, 시간으로는 새벽 1~3시, 달[月]로는 음력 12월을 가리키는 방향신이자 시간신이다. 수명은 20년이다. 신이 소를 이렇게 배정한 것도 그 성질이 유순하고, 우직스러우며 참을성이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지구상에는 약 12억2700만 마리가 사육되고 있는데, 스페인에서는 투우 경기의 주역으로 활용되고 있고, 인도에서는 차량이나 사람 모두가 비켜가는 숭배의 동물로 추앙받는다.
우리나라에는 약 2000년 전쯤에 들어와 가축화됐는데, 변변한 이름 하나 얻지 못하고 농사[우경]에 없어서는 안되는 소중한 노동력을 제공하는 생구(生口; 한 집에 사는 하인이나 종을 이름)였다. 즉, 가족의 일원이나 다름없었다. 그 가족을 위해 20년을 아무 말없이 오로지 헌신과 희생으로 일관하는 생이다.

특히 똑똑한 아들·딸들의 학비 마련 수단이기도 했던 농가의 ‘비상금고’이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냥 담백하게 암소·황소·누렁송아지 등으로 그 명칭이 단출한 데 비해, 영어에서는 거세하지 않은 숫소를 불(bull), 암소는 카우(cow), 가축화된 소의 총칭은 캐틀(cattle)… 등 25가지의 각기 다른 호칭으로 불린다.

소에 얽힌 오래된 속담 가운데 ‘쇠똥이 지짐떡 같으냐’는 말이 있다. 가망 없는 일, 먹지 못할 것을 바란다는 뜻이다.

아무리 막돼먹은 불온한 세상이라 하더라도, ‘가붕개(가재·붕어·개구리)’로 살아가더라도, 어찌 소박한 꿈조차 꿀 수 없으랴. 폴 발레리의 싯구를 다시금 금과옥조(金科玉條)로 가슴에 새겨보는 새해 첫날 아침이다.
‘바람이 분다. 살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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