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자수필-귀농아지매 장정해 씨의 추억은 방울방울

"큰 것에만 시선을
빼앗기기 말고
소소하고 저렴하며
소중한 것들도 삶..."

며칠 전, 묵은해를 보내며 연말 안에 해야 할 것을 정리하다 보니 하루를 보내는 체감속도가 빨라졌었다. 텅 빈 동네길가로 녹지 않은 눈덩이가 바위처럼 쌓여있고 마을회관은 출입통제로 굳게 닫혀 사람의 온기를 찾아 볼 수 없는 삭막함이 거리를 메우고 있다.

재작년만 해도 이맘때면 반계, 동계, 대동계 모임에 다니느라 매일이 잔치였고 마지막 연말 모임으로 성탄절에 성탄을 축하하고 묵은해를 보내며 새해를 축원해주었는데, 2020년은 코로나19로 마을에 기쁜 일도, 슬픈 일도 함께 나눌 수가 없어 삶을 잃어버린 듯 어르신들 표정이 사라지고 굳어진 것이 마음이 더 아릿하고 쓸쓸했다. 지난해 처음으로 노인회 회장을 맡아 어르신 삶이 좀 더 살기 좋고 보람 있도록 돕고 싶었는데, 삶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더니 오히려 비대면을 설득하고 종용하는 셈이 되고 말았다.

모이지는 못하지만 코로나19로 더 놓치는 일은 없어야겠다는 생각에 성탄절에 뭔가를 나누려고 맘먹고 괴산 장날 여기 저기 돌아보는데, 골목 끝에서 고소한 기름 냄새가 났다. 설설 끓어오르는 커다란 가마솥에서 닭을 튀겨내는데, 사람들이 옆으로 쭉 줄이 늘어선 것을 보고 ‘맛집이구나’ 싶어 우리도 합류했다. 닭을 부위별로 튀겨서 파는데, 통째로 튀기는 옛날 통닭도 있었다.
가격도 저렴해서 일반 튀김 닭의 거의 반값이라 우리는 거기서 우리 마을 가구 수 만큼 통닭을 주문하고 성탄 전날 12시30분까지 찾으러 가기로 했다.

가격이 저렴한 만큼 정말 옛날 방식 그대로 각진 봉투가 아닌, 누런 종이봉투의 접힌 세로부분을 죽 찢어 삼각형 모양이 되면 몸통 채로 튀겨진 넓적한 닭을 넣고 봉투 위가 다물어지지 않은 채로 비닐봉투에 소금봉지 함께 넣고 박스에 차례로 세워 담아줬다.

우리는 따뜻할 때 드시게 하려고 바로 달려와 마을 입구부터 나누기 시작했다. 길가에 있거나 마을 안에 모여 있는 집은 나누기가 쉬운데 눈 쌓인 산골짝 비탈에 들어앉은 집, 연로하셔서 누워 계신 집을 일일이 방문하기는 그리 쉽지 않았다. 그래도 저렴한 통닭봉투를 받아 들고서도 연신 “이런 걸 왜 했냐”고 웃으며 고마워하시는 주름진 얼굴을 볼 때, 잡은 손을 놓지 않고 들어왔다 가라고 붙잡으면 뜨끈한 묵직함이 목을 타고 내린다. 우리는 그래도 ‘이렇게 서로 의지하며 사는구나’하는 어눌한 진심이 만나 다시금 우리 삶을 데우고 있다.

인생에 큰 것들은 늘 위압적이고 답답하다. 지금 우리에게 닥친 코로나의 거창한 삶의 무게가 우리를 짓누르고 있다. 스스로 밥을 먹고 살아야 해서 평범한 과로를 반복하며 이미 열심히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혼란스럽다. 나는 이럴 때 작은 것 속으로 스며든다.

남편이 끓여준 뜨끈하고 시원한 김치라면의 황홀한 맛으로도 살만하고, 또 저렴한 옛날 통닭 한 마리의 끈끈한 관계 속에서도 행복하다. 큰 것에만 시선을 빼앗기기 말고, 소소하고 저렴하며 소중한 것들도 있는 것이 삶인 것을 잊지 말고 살아볼 일이다. 그래서 새해에는 소소한 아름다움으로 채워지길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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