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년 특별인터뷰-2021년 우리 농업농촌, 이동필 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에게 듣는다

경북 의성 출생의 이동필 前장관은 박근혜 정부 초대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으로 입각한 3년 6개월 최장수 장관이며, 1980년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입사해 제12대 원장 등 33년을 농촌경제연구원에서만 근무한 농업정책전문가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고향인 의성 단촌면 세촌리 시골마을로 낙향해 노모를 모시며 농사를 짓는 촌부로 돌아가 세상을 놀라게 했다. 거기에 5급 대우 정책자문관으로도 활동하며 영원한 현역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그다. 다사다난했던 2020년을 뒤로 하고 2021년 새해, 농정현실의 문제를 짚어보고 공직생활과 현장에서 체득한 그만의 고견을 들어봤다. ·

땅 일구며 ‘현장에 답 있다’는 평범한 진리 깨달아
지방소멸 대응 위해 관계인구·지역인재·승계농 중요
의성·안동·청송 잇는 애플밸리로 확장된 6차산업 구상

-코로나19로 어려운 시국임에도 취재에 응해주셔서 감사드린다. 건강이 우선 어떠신지 여쭙고 싶다.
서울에서 살 땐 집 앞 스포츠센터를 10년 넘게 다녀도 몸무게 1kg 빼는 게 쉽지 않았다. 고향인 의성에서 농사를 지었더니 6개월만에 13kg이나 빠졌다. 그만큼 몸이 고된 일이라 농사란 걸 절감하고 있다. 그래도 욕심을 내려놓고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음은 고향에 돌아온 가장 큰 수확이다. 타박상이나 찰과상은 좀 있지만 그래도 남들 보기 미안할 정도로 건강하게 지내고 있다.

단촌에서 어머니 모시고 책이나 읽으며 편안한 노후를 보내고픈 생각은 오랫동안 품어왔던 꿈이었다. 고향의 까마귀만 봐도 반가울 정도로 수구초심은 누구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올해 농사는 잘 지으셨는지 궁금하다.
봄철 냉해로 복숭아, 자두, 살구를 하나도 못 땄다. 여름철엔 무슨 장마가 그리도 긴지. 병충해마저 겹쳐 너마지기 벼농사는 작년보다 수확량이 20~30% 줄었다. 고추는 탄저병으로, 마늘은 생산이 괜찮았으나 가격이 영 신통치 않았다. 콩을 심던 앞밭에는 꾀를 내 에메랄드그린이라는 관상수를 심었다. 그 전해에 콩을 한 2000평을 심었었는데 싹이 잘 올라와서 무럭무럭 자라 사람들이 신기해 했다. 하지만 꽃이 지고 열매가 맺으면서 노린재가 갉아먹어 40kg 19가마 밖에 수확하지 못했다. 팔 데가 마땅치 않아 고심하다가 안동의 된장공장에 연락했더니 농협에서 와서 실어가 주었다. 노린재 때문에 울퉁불퉁해진 콩을 골라내니 14가마, 212만 원 남짓을 손에 쥐었다.

농업인이 몸 고생만 하는 게 아니란 현실을 절감한다. 나야 집에서 먹을 양식이나 자급하며 농사 흉내나 내고 있지만 이걸 업으로 삼는 농업인이라면 맘고생이 오죽하겠는가!

오랫동안 6차산업이 농업과 농촌의 미래라 믿고 그 방면으로 공부도 하고 정책도 폈지만 실상 현장에서 농사를 지어보니 농사꾼들은 생산하는 것만도 벅찬 게 현실이다. 매일매일 손에 흙 묻히고 된바람 맞아가며 1년 농사지어도 손에 쥐는 게 몇 푼밖에 안 되는 현실을 겪어보니 책상머리에선 보이지 않던 문제점들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농업인들의 심사를 이해하게 되고, 농협이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현장에 답이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농사 지으며 체득했다.

-농업과 농촌, 가장 큰 위기는 무엇이라 보는지.
저출산 고령화와 이촌으로 인한 지방소멸 문제가 아닐까 한다. 지금 살고 있는 우리 마을은 한때 150호가 넘었지만 지금은 절반도 남지 않았다. 지금은 바로 옆에 3집이 비어있고, 아래쪽으로는 혼자 사는 할머니집도 2채 있었는데 얼마 전 한 분이 돌아가셔서 빈집이 한 채 더 늘어났다. 옛날처럼 알뜰하게 농사짓는 사람이 없어 제법 농사지을 만한 땅도 기계가 들어가기 어려우면 버려지고 있으니 이래서야 어찌 농업과 농촌이 제 역할을 다 하고, 식량자급률이 올라갈 수 있겠나? 그렇게 차츰 사람의 온기가 빠진 고향마을은 그토록 그리워했던 예전의 정겹던 마을이 아니다. 코로나19까지 겹쳐 1년에 두 번 보던 가족들도 찾아오기 어려우니 농촌의 고립은 더 심해졌다.

농촌이 살아나기 위해서는 새롭게 농사를 짓도록 창농을 하거나 귀농귀촌을 장려해 외지인을 불러들여야 하는데 생각처럼 간단하지 않다. 우리나라 호당 평균 농업규모는 4500평, 이 땅에 1년 농사지어 농가소득은 4000여만 원, 순수한 농업소득은 1000만 원 남짓이 현실이다. 우리 지역은 외지의 젊은이들을 불러들이기 위해 이웃사촌마을 만들기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취지는 대담했지만 사업 후 땅값이 올라 그 인근에서는 평당 15만 원 이하를 가지고 토지를 확보할 수 없다니 누가 귀농을 하고 창농을 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그럼 어떤 대책이 필요한가?
토지와 노동력에 의존하던 옛날 방식의 생산 위주 농사보다 6차산업화나 다양한 다른 일자리를 마련하도록 해야 한다. 베이비부머들이 어릴 적 추억이 서린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생각만 해도 즐거운데 인구의 지방분산과 국토균형발전 측면에서 그들의 귀농귀촌은 더할나위 없이 좋은 발상이다. 하지만 귀농귀촌자들이 많은 자본과 기술이 필요한 전문경영을 영위하기 어려워 목표를 과학영농을 책임질 전문경영인 육성과 지역인구 증가를 위한 귀촌이나 귀향정책으로 구분하고 거기에 맞는 정책수단과 추진체계를 갖추도록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

지역의 청년들이 마음을 잡고 눌러 앉도록 응원하고 지원하는 일이 선행될 필요가 있다. 지금의 창농이나 귀농귀촌정책은 외지인을 불러들이는데 초점이 맞춰져 역차별을 받는단 목소리도 크다. 그런 점에서 가족농 중심의 우리나라 농업경영을 이어가는 차세대 가업승계농에 대해 보다 많은 관심을 가지고 획기적인 지원할 필요가 있다. 나이가 든 자녀가 있더라도 직업으로서 농사는 선택하지 않겠다는 젊은이들을 우리 주변에서도 많이 볼 수 있는데 이들에게 농업과 관련된 여러 가지 전후방사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교육·훈련을 시키고 다양한 6차산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시설이나 장비는 물론 상속이나 취득에 따르는 조세감면 등 지원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아무래도 지역 사람이 그 지역의 실정을 더 잘 알고, 어릴 때부터 부모에게서 보고들은 지식과 노하우는 물론 네트워크며 고향에 대한 애향심이 있기 때문에 외지인보다 훨씬 안정적인 삶을 꾸리고, 이들이 정착하면서 지역을 지키는 지도자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저출산 고령화로 인한 인구감소 타파를 위해 무리하게 외지인을 끌어들이기보다 지역과 인연을 가진 관계인구를 늘리는 것도 방법이다. 관계인구란 그 지역에 살진 않더라도 그곳에 꾸준한 관심을 가지며 마음속 고향의 후원자 같은 개념이라 생각할 수 있다. 고향사랑기부금제도, 즉 고향세도 그래서 필요하다. 농촌경제연구원 시절부터 지역을 활성화하기 위해 고향세를 연구했다. 2014년 장관재직 시 한국농업경제학회에 의뢰해 고향세 방식을 응용한 농어촌상생기금제도를 도입했지만 후속조치가 미흡해 아쉬웠다. 최근 소멸위험지역지원법 제정 일환으로 고향세 도입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니 다행이다.

한·중 FTA 체결 당시 장기간에 걸친 드러나지 않는 피해를 염두에 두고 농업계에서는 무역이득공유제를 요구했지만 자칫 기업인들의 경영의지를 꺾을 수 있다는 산업계의 우려도 무시하기 어려웠다. 고민 끝에 대안으로 농어촌상생협력기금을 구상했고 당시 여·야·정이 극적으로 합의한 정책인데, 이는 기업들이 부담하는 일종의 고향세라 할 수 있다. 고향세나 농어촌상생협력기금 등이 활성화되면 일반 산업계와 농업, 그리고 도시와 농촌이 서로 돕고 살아가는 새로운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점에서 농촌이 의지할 수 있는 든든한 버팀목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의 농정추진에 있어 개선할 점도 있을 것이다.
일할 수 있을 때 책임을 다 못하고 물러난 사람이 무슨 말을 더 하겠나? 다만 무너지는 농촌을 바라보며 코로나19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형편에 도무지 미래가 보이지 않는 정부의 임기응변식 대응을 보면 잠 못 이루는 밤이 많다. 공익직불제만 해도 1조 원 가까운 예산을 추가로 지출한다지만 그래서 과연 무엇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주민들 수요와 동떨어진 획일화돼 부처별로 제각기 추진하는 토목 위주의 지역개발도 국민 세금을 이렇게 써도 되는지 걱정스러운 부분이다. 눈 먼 돈이라도 우리 마을에 떨어지니 좋다는 사람도 있지만 주민의사는 어디 가고 계획수립 과정부터 공사하고 준공검사까지 외주용역에, 컨설팅 명목으로 돈이 다 빠져나가니 어떻게 되겠느냐며 분통을 터뜨리는 사람도 있다. 1994년 WTO체제가 출범하면서 보조나 지원은 늘어났지만 정작 농촌과 지방은 소멸위기에 몰리고 있으니 어쩌면 모두가 자립이라는 소중한 정신을 잊어버린데 그 원인을 찾아볼 수 있지 않나 생각된다.

-최장수 농식품부 장관으로서 얻은 지혜와 경험을 얻고자 경상북도 정책자문관으로 임용돼 화제가 됐다.
우연히 정도전이 쓴 답전부란 시를 읽었다. 나주로 귀양을 가서 하루는 들에서 일하는 늙은 농부를 만났는데, 그의 말인즉 “녹만 먹고 직책은 돌보지 않아 국가의 안위와 백성들의 근심, 그리고 시정의 득실과 풍속의 미악에는 뜻을 두지 않고, 그저 자기 몸만 보호하는 계책으로 세월만 보내지 않았느냐?”는 질책이였다.

조금의 용기라도 있을 때 못다한 책임의 일단이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에 경북도청 농촌살리기 정책자문관에 임용돼 일주일에 두 번 출근하고, 간혹 현장에도 나가고 있다. 분야별 전문가들과 농촌살리기정책포럼을 운영하면서 기존의 생산위주 농업을 고부가가치 6차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해 의성·안동·청송을 사과산업 클러스터로 육성하고 관광 및 지역개발과 연계하고 지역이 협력해 미국의 나파·소노마밸리처럼 산업과 문화관광이 집적된 애플밸리 조성도 제시했다. 기후변화로 사과생산지가 북상하고 있고, 지방소멸 위험으로 생산인구마저 감소하는 현실에서 전후방산업을 융복합해서 산업육성과 지역활성화 문제를 해결해 보자는 구상인데, 담당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6차산업화의 새로운 모델로 발전시켜 주면 좋겠다.

-2021년 신축년이 밝았다.
대학시절 한우의 육용 가능성에 대해 졸업논문을 쓰게 돼 할머니께서 여쭈었더니 “소는 새끼를 열 마리를 낳아도 일을 면할 수 없다”는 속담을 이야기 해주셨던 기억이 새롭다. 요즘은 일할 목적으로 소를 기르는 사람이 없지만 1970년대 말까지만 해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소가 없으면 안되는 오늘날 경운기나 트랙터 같은 필수품이었다. 그런 점에서 농업인과 가장 닮은 가축이 소가 아닐까 한다. 신축년 새해를 맞아 농촌여성신문 독자들께서 모두 건강하시고, 우보만리(牛步萬里)란 말처럼 소걸음으로 천천히 그러나 지치지 말고 뚜벅뚜벅 걸어가길 바란다.

지난해는 코로나19로 큰 위기도 맞았지만 식량의 안정적 확보가 얼마나 중요한지 국민들을 깨닫게 하기도 했다. 그런 소중한 먹거리를 생산하는 농업과 농촌이 앞으로는 경관과 생태를 보전하고 환경과 문화를 잘 가꾸어 주민들은 물론 온 국민이 행복하게 즐기는 쉼터이자 삶터로 도약하는 2021년이 되길 염원한다. 저밀도의 농촌이 쉼터이자 삶터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사람이 몰려들어 국토를 고르게 쓰면 그것이 바로 균형발전이 아니겠는가? 그런 점에서 농촌다움의 경관과 생태환경을 보전하고 이웃들과 알콩달콩 의좋게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 곧 농촌을 살리고 소멸위기의 지방을 구하는 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운명은 스스로 개척한다는 용기와 자신감으로 소멸위기의 농촌을 살리는데 우리 모두 다시 한번 앞장 서는 한 해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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