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연재 - FTA시대 우리농업, 여성의 힘으로 지킨다

⑩ 전북 정읍 ‘싸리재 마을기업’(농업회사법인‘콩사랑’서현정 대표)

FTA(free trade agreement, 자유무역협정)시대엔 희망과 불안이 동시에 존재한다. 무역의존도가 높은 한국의 경제여건상 전자 ․ 자동차 ․ 반도체 산업은 FTA에 따른 수출 증대 등이 기회요인으로 희망이 되겠지만, 산업기반이 약하고 고령화된 한국 농업은 농산물 수입 개방화에 대한 불안감을 떨쳐내기 힘들어 FTA의 희생양이란 소리를 듣는다. 하지만 국내 농업도 세계화 개방화의 거스를 수 없는 환경변화 속에서 국내 농식품의 경쟁력을 향상시키고, 자구책을 강구해야 하는 큰 과제와 패러다임의 변화가 요구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에 농촌여성신문은 농림축산식품부와 공동으로 FTA를 위기가 아닌 기회로 생각하고 FTA를 활용해 국내산 농식품과 가공품으로 해외시장 개척에 도전하고 성과를 이뤄낸 선도 여성농업인들, 또 FTA에 대응해 국내산 농산물 소비촉진에 힘쓰며 우리 농식품의 경쟁력 향상에 앞장서는 여성농업인들의 활약을 10회 시리즈로 소개해 여성농업인들이 FTA시대를 슬기롭고 현명하게 대처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국제교역의 불확실성 시대, 식량자급률 확보에 국내 농산물 가공이 큰 역할

>> 국내 식량자급률 향상 기반 마련과 식량안보 근본 해결
>> 가공으로 쌀․ 밀·콩 등의 국내 곡물 안정적 소비시장 구축

코로나19로 세계가 재난 상황을 촉발하며 각국에선 식량에 대한 보호무역의 바람이 불어 닥쳤다. 식량 위기에 대한 경각심이 커져 국가마다 식량자급률 확보에 나섰기 때문이다. 과거 식량위기가 공급 차질, 수요 증가 등 수급 여건의 변화에 기인했다면 이번 코로나19 사태는 감염병 확산에 따른 물류 차질, 수출 제한 조치 등 새로운 형태의 식량위기의 발생 가능성을 시사했다.

우리나라의 사정은 어떠한가? 농식품부 자료에 따르면 2009년 56.2%였던 국내 식량자급률은 10년만인 2018년 46.7%로 9.5%p가 오히려 하락했다. 같은 기간 작물별로는 ▲보리 47.9% → 32.6% ▲밀 0.9% → 1.2% ▲콩 33.8% → 25.4% ▲옥수수 5.6% → 3.3%로 자급률이 대부분 하락했다. 사료용 수요까지 감안한 곡물 자급률은 더욱 심각해 2018년 국내 곡물자급률은 21.7%에 불과한 상황이다.

식량의 해외 의존율이 높은 우리나라는 식량자급률을 높여 식량안보를 지키는 일은 불확실성의 시대에 반드시 우선돼야 할 과제다. 이에 곡물을 포함한 식품가공은 국민의 안전한 생명을 지키는 기간산업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국내산 쌀과 보리, 밀, 콩 등을 이용한 곡물 가공은 국민의 건강생활을 이끄는 동시에 국내산 농산물의 지속적 소비처 확보를 위해 매우 중요한 일이다.

우리나라는 연간 곡물 소비량 약 2000만 톤 중 약 1600만 톤을 수입하고 약 450만 톤을 국내에서 생산하고 있다. 수입 곡물은 주로 밀, 콩 그리고 사료용 곡물이며, 국내에서 생산곡물의 대부분은 쌀이다. 이에 쌀 이외 곡물은 국제시장에서 공급차질이 발생할 경우 국내 수급에 큰 문제가 될 수 있기에 특히 쌀 이외의 보리와 밀, 콩 등 곡물의 가공과 가공품 시장 확보는 매우 중요하다.
식량안보에 대해 농식품부 박수진 식량정책관은 “자급이 가능한 쌀을 제외하고 소비 비중이 큰 밀과 콩을 공급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추는 것이 우리나라 식량안보의 핵심 과제”라고 말한다.

 

농활 여대생의 꿈으로
국산 농산가공품 소비시장 뚫어

FTA피해보전직불금 대상인 국내산 귀리로 ‘귀리오트밀’ 시장 개척

▲ 따뜻한 마을공동체와 돌아오는 농촌을 위해 농사짓고 가공을 하고 있는 마을기업 싸리재마을 사람들과 서현정 대표(사진 오른쪽 네 번째),

“농사가 잘돼도 안 돼도 항상 걱정을 끌어안고 사는
 농민들의 삶을 좀 더 윤택하게 만들고
 사라져 가는 농촌마을에 행복을 전하고 싶었어요”

1992년 우루과이에서 타결된 새로운 다자간 무역협상으로 FTA 시대를 여는 첫 장이었던 우루과이라운드에서 무엇보다 우리 농산물 협상은 가장 많은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모든 수입제한 품목의 자유화, 농업보조금 폐지, 영농자금 융자중단 등 한국농업의 존폐와 직결되는 사안이 많았기에 시장개방에 대한 농민들의 반대가 뜨거웠고, 대학생들까지 이에 동조했다. 그 대학생 중 한 명이 현재 싸리재마을기업의 서현정 대표다.
 
 

▲ 싸리재마을의 주력 생산품은 현미떡을 비롯해 각종 국산 농산물 가공품으로 150여 종류다.

농촌마을에 둥지 틀고, 가공에 눈 뜨다
산골마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서현정 대표는 자연에 대한 그리움인지 대학시절, 방학 때마다 농활을 떠나 자연에 대한 회포를 풀었다.
“대학 졸업 후 취업을 준비 하던 때는 우루과이라운드로 농민집회가 한창이었고, 무조건 농민에게 힘이 돼주고 싶어 동참했어요.”
서 대표는 이를 계기로 만난 정읍 싸리재 마을의 농촌 총각 박창주씨와 부모의 반대를 무릅쓴 채 결혼해 온전히 농촌의 삶 속으로 들어왔다. 아이 셋을 낳아 키우며 남편과 다랑이 논에서 벼와 고추농사를 열심히 지었으나 생활은 항상 제자리였다.

“개방화 시대를 맞아 물밀듯 들어오는 수입농산물의 홍수 속에서 국내산 콩 가격이 1kg에 900원까지 내려가니 그대로 농사만 지어선 안 되겠구나 싶었어요.”
서현정 대표는 바닥까지 떨어진 콩 가격에 분노해 농산물 가공에 눈을 돌렸다. 정읍 싸리재마을은 대부분의 농민들이 다랑이 논에서 벼농사를 하고 콩과 깨 등의 밭작물을 재배하는 시골마을이다. 서 대표는 개방화시대에는 수입농산물이 아닌 우리농산물이 더욱 소중해질 수 있다는 역발상으로 지역의 농산물을 이용한 가공업을 2005년부터 시작했다.

우루과이라운드 반대 데모에 참가하며 농민에 힘이 되고 싶었던 그는, 국내산 콩만 팔아선 잘 살 수 없다는 생각에서 국내산 콩으로 두부를 만들어 유기농매장인 한살림에 납품했고, 우리 밀 보급을 위해 2002년엔 정읍에 ‘밀밭풍경’이란 유기농 빵 매장을 오픈했다. 정읍시농업기술센터의 지원으로 농촌여성소득원사업을 받아 떡과 조청, 한과 등의 가공도 했지만 모두 신통치 않았다.

“정직하게만 하면 잘 될 줄 알고 원가 계산도 없이 어디에 팔지도 모르고 무턱대고 가공품만 만들었던 게 화근이 됐어요.”
결국 2008년 폐업을 하니 지역사람에게도 부끄럽고 남편에게도 면목이 없어 홀로 제법 규모가 있는 떡 공장의 책임자로 도피해 그곳에서 3년간 제대로 경험을 쌓았다. 사업의 A부터 Z까지를 체계적으로 경험과 기술을 배운 서현정 대표는 싸리재마을로 다시 돌아왔다.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나
마을사람들과 힘을 합하다

농가공업에 대한 꿈을 잃지 않았고, 마을사람들과 함께 잘 살아보겠단 꿈이 있었기에 기회가 찾아왔다. 2012년 싸리재마을 사람들과 함께 우리콩가공사업단이란 공동체사업으로 정읍시민 대상 시민창안대회에 참여해 1등을 한 것이 계기가 됐다. 이후 실패의 경험과 공장장으로 일하며 얻은 노하우로 마을기업의 성장을 주도해 나갔다.
현재 서현정 대표는 농업회사법인 콩사랑의 대표로 ‘마을기업 싸리재’ 브랜드로 귀리제품과 현미떡 등 무려 150가지 농산물을 가공 판매한다. 직접 제조하지 않고 판매를 대행해 주는 위탁상품까지 합하면 300가지나 된다.

가공에 사용되는 모든 재료는 지역에서 생산한 국내산 농산물로 소비자들에게도 건강식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제품 생산을 위해 30곳 이상의 농가와 영농법인과 직접 계약을 하고 있고 지역 주민들에게 안정적인 일자리를 제공하는 연매출 30억 원 규모의 사업체로 성장했다.
“전체 재료는 국산 농산물로 마을 주민이 생산한 거의 모든 잡곡을 시세보다 15% 더 높은 가격으로 매입해 농가소득에 도움이 되도록 하고 있어요.”

싸리재마을의 주력상품은 다양한 현미떡 종류와 귀리 제품류로 오트밀, 귀리선식, 귀리미숫가루, 간편귀리, 군고구마귀리선식 등이 있다. 간편한 한 끼가 될 수 있는 흑임자가루, 들깨가루, 서리태가루 등 분말가루와 간식류로 고구마말랭이와 볶은 곡식, 연잎밥 등도 생산·유통한다. 싸리재마을의 주력상품은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고 있어 흑임자가루, 들깨가루는 네이버 판매순위 1위에 올랐다.

특히 서 대표는 FTA 피해보전직불금 지급대상 품목이기도 한 국산 귀리로 국산 오트밀(볶아 누른 귀리)시장을 개척했다. 귀리는 정읍의 특산물로 아직 국산 귀리가 잘 알려지지 않은 2012년부터 귀리제품을 가공해 왔다. 귀리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꾸준히 귀리 가공제품 개발을 해 왔기에 수입 오트밀 시장이 인기를 끌자 이에 맞설 수 있었다. 다양한 국산 귀리 제품을 생산해 수입 오트밀과 경쟁하며 국내 귀리제품을 알려 국산 오트밀 시장을 개척했다.

“국산 귀리가 건강기능성 식품으로 알려지면서 국내 소비가 증가하고 국산 귀리 재배면적도 확대되는데 싸리재마을기업의 귀리오트밀 제품이 기여한 것 같아 뿌듯합니다.” 서 대표는 다른 잡곡류들도 다양한 가공제품을 생산하고 유통해 국산 농산물 가공품에 대한 소비시장을 확보해 나가기를 계속하고 있다.

“다시 마을의 생기를 찾기 위해선 안정적 수요처 발굴이 필요했는데 이제 그 꿈이 이뤄져 가고 있어요. 고령화 되는 작은 시골마을에서 어르신들은 농사를 포기하지 않고, 또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 귀농·귀촌하시는 분들과 함께 마을의 활력을 찾고 싶습니다.”
농활에 참여하고 우루과이반대 데모에 나섰던 여대생이었던 서현정 대표는 이제 마을사람들과 함께 잘 사는 농촌, 귀농귀촌인들과 함께 하는 지속가능한 농촌마을의 꿈을 만들어 가고 있다.

 

■  싸리재 마을기업은? - 정읍시농업기술센터 이완옥 소장

농촌마을 ‘공동체의 힘’ 보여줘

원재료의 산지구입과 직접 생산으로 원가 경쟁력 확보

- 싸리재 마을기업의 농촌에 대한 기여도는?
고령화된 농촌의 활력찾기를 주도하는 마을기업으로 다양한 가공 제품생산을 위한 주요 원재료를 지역 내에서 수급하고 있어 원재료의 안정적 확보와 지역민의 농가소득 창출로 상생을 하고 있다. 농가와의 계약재배 후 생산한 잡곡을 시세보다 높은 가격으로 매입하고 판로가 없는 농산물을 매입해 직거래 소비자에게 소개해 마을 농가에 수입을 올려준다.
또 싸리재마을은 원재료의 산지구입과 직접 생산으로 경쟁력을 갖추며 2019년 현재 정읍 지역 내 44곳 농가와 생산단체로부터 4억4000만 원의 잡곡을 구입하고 있다.

- 성공요인은 무엇?
유통기반을 직접 운영해 자체 마을기업 싸리재 쇼핑몰을 운영하고 스마트스토어 등 16곳의 쇼핑몰에 입점하고 있다. 오프라인에도 정읍 관내 로컬푸드직매장 2곳과 생협 등에 입점해 있다.
창업 이후 온라인 쇼핑몰을 직접 운영하며 소비자와 직거래 하고, 소비자 기호에 맞는 포장방법과 차별화된 기술력을 토대로 경쟁 우위에 있는 제품을 생산해 유통에서 경쟁력을 확보했다.
서현정 대표의 축적된 경험으로 온라인 오프라인에서의 마케팅 능력을 발휘했고, 소비자 기호에 맞는 제품개발을 해 왔다. 트렌드에 맞춤한 포장법과 차별화된 기술력으로 경쟁력을 높였다.

- 지속성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마을 주민 중 상시근로가 가능한 구성원을 정규직으로 고용해 해마다 고정 일자리를 늘려가고 있다. 이외에도 정읍지역자활센터, 경로당에 후원금을 내며 사회공헌활동도 활발해 지역공동체 활성화에 역할을 하고 있다.
싸리재마을은 70세 이상 어르신들이 주 생산농가로 지속적 인구 유입이 시급한 과제다. 농가의 고령화로 거래 농가가 줄어들고 생산량이 감소되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어 귀농인구 유입을 위한 노력도 신경써야 할 부분이다.
또 코로나19로 인해 건강과 안전농산물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국산 가공품 시장도 확장될 전망으로 통곡식, 무첨가, 건강식을 지향하는 싸리재 마을기업의 시장 확대가 기대되고 있다.
하지만 다양한 종류제품 중 판매가 저조하거나 경쟁력 낮은 제품은 수시로 중단하고 신제품 개발로 대체해 나가면서 경쟁력을 확보해 나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

(농림축산식품부·농촌여성신문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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