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수필-귀농아지매 장정해 씨의 추억은 방울방울

"광활한 바다에 앉으면
고향으로 돌아온 듯
마음은 저공비행을 한다..."

작은 딸이 전화를 했다. 남편이 한 주간 연수회로 집을 비울 참인데 요즘 제주관광이 비수기라 비행기표를 싸게 살 수 있으니 모처럼 우리끼리 여행 한 번 다녀오자고. 집 떠나는 일이 쉽게 엄두가 안 났지만 코로나로 올 들어 한 번도 여행을 못가 여행이 고픈 남편 생각에 그럼 가보자고 대답했다. 딸이 바로 비행기표를 예매하고 가족여행 계획을 세우는 바람에 느닷없이 제주도로 4박의 여행길에 오르게 됐다. 큰딸도 함께 가서 2박을 하고 형편상 먼저 출발하겠노라 한다.
오후 5시 반 제주공항에서 짐을 찾아 나오니 30년지기 송권사가 얼굴에 잔주름 가득하게 마스크 안으로 활짝 웃으며 우릴 반긴다. “아휴~ 넌 전화가 안 되니? 몇 통화 했나 봐라. 문자까지 보냈는데, 내가 답답해서 혼났다 야”

애들 어려서부터 한동네에서 네 자식 내 자식 없이 같이 키우다시피 하며 지낸 터라 오랫동안 못 봐도 허물이 없다. “지현아~ 네 번호 좀 다우. 네 엄마 못 믿것다.” 일단 얼굴을 보고 스케줄 맞춰 또 보자며 사라지고 우리는 큰딸이 자주 가는 물항식당으로 가서 제주생선들을 먹고, 제주시에서 첫째 숙소인 서귀포 중문으로 갔다.

제주의 밤은 서둘러 온다. 낯선 길을 더듬어 가 숙소에 짐을 풀고 나니 벌써 자정이 가깝다. 둘째 날, 아침 일찍 깬 도후(손자)와 우리는 가까운 색달해수욕장에 다녀왔다. 오늘은 오전에 여미지식물원에 갔다가 협재해수욕장으로 가는 길에 본태박물관과 방주교회를 들러 가기로 했다. 변덕스런 제주날씨를 누가 맞추랴. 해가 나면 덥고 해가 숨으면 춥다. 특히 협재해수욕장에서 해가 없이 부는 제주바닷바람을 그 누가 당하랴. 머리칼로 제 뺨을 수 없이 때리는 바람에 나는 일찌감치 차 안으로 피하고, 결국 할아버지 예비점퍼를 더 입고 엄마 머플러를 동여 맨 도후까지 철수해서 점심 겸 저녁을 먹고 일찍 귀가했다.

다음 날은 큰딸이 서울로 돌아가고 우리도 숙소를 제주시로 옮겼다. 자연사박물관에서 도후는 작은 수첩 하나에 본 것 읽은 것을 가득가득 채웠다. 함덕해수욕장을 들러 숙소로 돌아왔다. 새 숙소는 제주시에서 가까운 삼양해수욕장 입구 바닷가 돌담집이었는데 가정집 독채였다. 들어갈 때는 몰랐는데 아침에 파도소리에 깨어보니 집 뒷담 밑으로 바로 바다여서 제주바다의 밀려오는 파도를 보기에 너무 좋은 자리였다.

우리는 오늘 하루가 마지막 날인 셈이라 각오를 단단히 하고 오전엔 함덕에서 잠수함을 타고 오후엔 에코랜드를 다녀왔다. 거의 매일을 도후에게 보여주려고 쫓아다니다 보니 여행에 쉼이 사라져 버렸다. 다행히 저녁에 송권사를 만나 캐모마일 한 잔을 마시며 오랜 회포를 풀고 너무 늦기 전에 한 번 더 보자고 약속을 하고 나오는데, 제 목에 건 머플러를 내 목에 걸어주며 “잘 어울린다. 네게 이거라도 주고 싶다.”고 한다. 나도 친구를 꼭 안아주고 돌아왔다.

4박5일 동안 손자를 따라다니는 일과 중에 ‘곶자왈’이란 제주토속어 하나가 내게 꽂혔다. 제주 섬사람만의 체취와 정서가 느껴지고 이해가 되고 그들의 삶이 마음에 들어왔다.
예전에 할아버지는 내가 진해에서 태어났다고 이름 끝에 ‘해’자를 넣었다. 그래서인가, 나는 내 속 깊은 곳 어딘가 항상 바다에 닿아있다. 넓고 광활한 바다 앞에 앉으면 고향으로 돌아온 듯 마음은 차분히 저공비행을 하면서 모든 불편한 것이 사라지고 순전한 나 자신에게로 돌아간다. 그래서 내게 커다란 쉼이 있는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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