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일 심농(心農)교육원 원장

"물리적인 힘보다 지적 능력이
중시되는 지식기반사회에서
노동력의 성별 구분은
무의미해진지 오래다.
여성 특유의 세밀함과
감성적인 능력을 가진
여성농업인들이
생명산업을 리드해 나가는
당당한 주체가 되리라 믿는다."

▲ 영일 심농(心農)교육원 원장

가난한 농촌으로 시집온 나의 어머니 삶은 생명산업의 터전을 잡초 같은 근성으로 일궈온 아픈 추억의 여성농업인의 사연이기도 하다.
1960년대 초반 어느 여름철, 막내 동생을 임신한 어머니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 남의 집 모내기 작업을 마친 후 느지막한 저녁 무렵에야 집에 오셨다. 그리고 바로 이튿날 아침에 안방 문의 문고리를 잡고 심한 산고 속에 막내 동생을 출산하셨다. 당시만 해도 병원에서 아기를 낳는다는 것은 언감생심이었다. 열흘도 채 지나지 않아 산후 조리도 제대로 못한 상태에서 어머니가 다른 농가의 빚진 모내기 품앗이하러 간다며 허약한 몸을 이끌고 집 대문을 나서시던 모습은 아직도 내 가슴에 사무친 아픈 기억으로 생생히 남아 있다. 그때의 장면이 떠오를 때면 지금도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자식을 양육하고, 힘든 농작업으로 가정경제를 이끌어가는 다중적인 근로형태에서 우리 여성농업인들의 농촌발전의 역할에 대해 ‘희생과 헌신’이라는 미명으로 두루뭉술하게 그냥 넘어갔다. 너무나 고달프고 안쓰러운 상황이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우리 농촌여성들은 공동체적 협동의 지혜를 발휘하기도 했다. 당시 마을경제공동체의 구심적 역할을 하는 마을별 부녀회를 조직해 가난의 굴레 속에서도 절미운동을 해서 마을발전기금을 조성해 생활필수품을 파는 구판장을 운영하기도 했다. 거기에서 나오는 판매이익금은 마을 잔치나 초상을 치룰 때 필요한 그릇, 소반, 젓가락, 천막 등을 구입했다. 협동심으로 개별농가의 경제적으로 부족한 부분을 메워나간 셈이다. 예전에도 우리 여성농업인들은 슬기로운 지혜와 섬세한 리더십, 그리고 끈기를 바탕으로 농촌생활을 개선해 나가는데 큰 기틀을 마련했다.

오늘날에도 대부분 여성농업인들은 가사와 농사일의 양립적인 형태로 늘 고단한 삶을 영위해 나가고 있고, 도시에 비하면 문화적 혜택이 상대적으로 열등한 위치에 놓여 있지만 자연과 더불어 생명산업을 일구어간다는 자긍심은 어느 산업에 못지않게 높아졌다.
이런 때일수록 농업농촌의 발전과 미래성장의 디딤돌 역할을 하는 우리 여성농업인들이 농산업의 주역으로 확고하게 자리를 지켜갈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우는 다양한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 여성농업인들에 대한 건강한 생활이 유지되는 활동지원, 보육개선, 문화적 삶의 질 향상과 자기계발에도 세심한 지원이 뒷받침 돼야 한다.

오늘날 우리 농촌이 다양한 방면으로 영역이 확대 발전되고 또 세분화되는 과정에서도 여성농업인의 역할은 더욱 강조되고 있다. 농산물 생산뿐만 아니라 가공·유통·농촌관광과 6차산업화 등에 여성농업인 특유의 섬세하고 온유한 경영마인드 접목을 요구하고 있다. 또 친환경우수농산물 생산, 지역특산품개발, 지역특화음식 개발 등에도 여성만의 전략적 지혜가 돋보이고 있다.
많은 미래학자들은 21세기가 여성의 세기가 될 것이라고 예견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우리는 4차산업화시대를 맞이한 디지털환경에 놓여 있다. 새로운 환경에선 유연하고 창조적인 여성의 능력이 더 잘 발휘될 수 있다.

새로운 미래를 위해서는 언제나 자신을 변화시키고 성장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물리적인 힘보다 지적 능력이 중시되는 지식기반사회에서 노동력의 성별 구분은 무의미해진지 오래다. 여성 특유의 세밀함과 감성적인 능력을 가진 여성농업인들이 생명산업을 리드해 나가는 더욱 당당한 주체가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농촌발전을 앞당겨 가는 핵심적 주역으로 여성농업인들이 당당히 자리매김을 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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