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도 동물이 하는 짓은 다 한다 - 42

같은 냉이인데 한겨울은(사진 왼쪽, 1월16일 촬영) 자외선을 막으려고 진한 자줏빛을 띄고 있다가 봄이 되면 녹색으로 되돌아온다.(3월26일 촬영)

 

겨울로 접어들면 가로수를 볏짚으로 감싸준다. 이 일을 하는 아저씨에게 왜 그렇게 하느냐고 물어 보았더니, 퉁명스러운 말투로 그것도 몰라요? 겨울에 얼어 죽지 말라고 해주는 거예요. 라고 대답한다. 과연 맞을까? 아니다. 물론 어린 나무 전체를 감싸주는 것이라면 맞다. 어린 나무는 껍질이 얇아서 세찬 바람을 계속 맞으면 줄기 속의 물이 쉽게 얼어서 죽거나, 탈수가 일어나서 말라죽는다. 큰 나무를 한두 뼘 감싸준다고 얼어 죽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마치 발가벗은 사람이 담요를 허리에 두른다고 추위를 이길 수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짚은 둘러주면 근처의 해충이 “웬 호텔?”이라며 그 속으로 모여들어 겨울을 난다. 이른 봄 그것들이 밖으로 나가기 전에 모아서 태우면 농약을 치지 않아도 손쉽게 해충을 퇴치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 이야기의 초점은 해충예방이 아니다.
지난해 봄에 경기도 과천시에서 갔을 때, 마침 가로수에서 볏짚을 벗겨내고 있었다. 그 나무에는 줄사철나무가 올라가고 있는데, 햇빛을 맞은 잎은 자줏빛인데 비해 볏짚 속에 싸여 있던 잎은 싱싱한 녹색이었다. 줄사철 잎만 그런 것이 아니다. 살아서 겨울을 나는 잎들은 영산홍이나 냉이나 모두 색깔이 자줏빛으로 변해 있다. 한 곳에 있는 영산홍도 나무 그늘 밑은 녹색인데 비해 햇빛을 그대로 맞고 있는 것은 하나 같이 자줏빛으로 변해 있다. 이런 차이는 겨울동안 식물이 살아남기 위한 전략 때문이다.


여름보다는 약하지만 겨울동안 잎은 자외선을 계속 맞고 있다. 자외선은 세포를 파괴하기 때문에 식물은 자줏빛 엽황소(크산토필)나 카로티노이드(이 성분들은 단풍색의 주원료다)를 만들어 자외선을 막는다. 사람으로 치면 눈을 보호하기 위해 선글라스를 쓰는 것과 같다.
날씨가 따스해져서 광합성을 할 수 있게 되면, 겨울 햇빛을 막아주던 자줏빛 색소는 없어진다. 그리고는 사진의 냉이처럼 슬그머니 엽록소로 바뀌어져 싱싱한 녹색으로 되돌아온다. 자외선이 무서워도 살아가기 위해 광합성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식물의 지혜를 짐작할 수 있는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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