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명견 교수의 재미있고 유익한 옷 이야기(92)

"그녀의 1달러짜리 옷은
참으로 빛나는 옷이다.
빛나는 날개다"

시집도 안간 딸이 혈혈단신으로 아무 연고도 없는 검은 대륙 아프리카로 의료선교의 길을 떠나던 날, 반백의 부모는 김포국제공항 출국장 바닥에 두 다리를 쭉 뻗고 주저앉아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그런 부모를 뒤로하고 비행기에 오른 1990년 9월, 백영심은 그때 28세였다. 그로부터 30년, 그녀는 지금 아프리카 오지 말라위에서 그 나라 대통령도 엄지 척하는 백의의 천사가 돼 꺼져가는 생명을 살리는 일에 몸을 바치고 있다.

그녀가 케냐를 거쳐 말라위에 정착했을 때, 그 곳은 주민들이 병이 나도 마땅히 찾아갈 곳조차 없는 척박하기 그지없는 땅이었다. 웬만한 수술이라도 할라치면 비행기로 남아공까지 환자를 실어 날라야 하는 나라였다. 전기도, 수돗물도 없는 그곳에 흙벽돌을 찍어 간이진료소를 세웠을 때, 하루 100명도 넘는 환자들이 몰려들었고, 미처 손도 제대로 못쓴 채 그녀의 품에서 죽어가는 아이들을 땅에 묻곤 했다. 쪼들리는 형편에 바나나 두세 개와 커피 한 잔으로 하루를 견뎌내기도 했다. 땀과 눈물과 기도의 세월이었다.

“이곳에 병원이 필요하다”는 그녀의 간절함과 절실함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길이 열리기 시작했다. 2005년 대양상선의 정유근 회장이 100만 달러를 기부한데 이어 국내외에서 따뜻한 손길과 의료진에 의료장비들까지 공수돼왔다. 그렇게 2008년 말라위의 수도 릴롱궤에 200병상 규모의 최신장비를 갖춘 대양누가병원이 문을 열게 된다.

백영심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그곳에 간호대학(2010년), 정보통신기술대학(2012년)의 설립을 주도해 나갔다. 이 같은 공로로 2012년 이태석상에 이어, 2013년 국제적십자위원회가 주는 간호사 최고의 영예인 나이팅게일기장을 받았고, 2015년 호암상, 그리고 2020년 8월 18일 성천상(중외제약 창업자 고 성천 이기석 추모 의료인상)을 잇달아 받았다.

그녀는 이들 상을 받으러 오고 갈 때 주최 측에서 주는 비즈니스 클래스 좌석을 이코노미로 바꾸고 그 차액을 약품구입에 쓰는 것으로 유명하다. 호암상 상금 3억 원도 현지에 도서관을 짓는데 썼고, 성천 상금 1억 원도 현지에 중·고등학교를 세우는데 쓸 예정이라 했다.

지난 8월 성천상 시상식 바로 전날 진행된 인터뷰자리에 백영심은 국제구호품 시장에서 1달러를 주고 샀다는 남방과 면바지를 입고 나타나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다음날 시상식에는 후배가 선물한 원피스를 입었다. 의복이 날개라 했던가. 가끔 옷으로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사람들이 있다. 예컨대 영국의 황세손비 케이트 미들턴이나 미셸 오바마 같은 유명인이다. 이들은 호사스러운 옷차림을 할 수 있음에도 서민적인 옷을 입었다 해서 세계여론의 주목을 받곤 한다. 물론 칭찬받을 만한 일이다. 그러나 1달러짜리 싼 옷을 입고 아껴 한 사람이라도 죽어가는 생명을 구하고 싶은 게 백영심의 간절함이라는 점에서, 적어도 이들과는 구분해서 봐줘야 할 필요도 있어 보인다.

그녀는 “한 번 사는, 가장 최선의 삶을 살 수 있는 게 어떤 길인가 선택하고 보니, 그게 이 길이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녀의 1달러짜리 옷은 참으로 빛나는 옷이다. 빛나는 날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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