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최고의 선택은 아내와 결혼한 것
올해 연극 복귀 ‘제2의 전성기’ 꿈꿔

 

강렬한 눈빛과 카리스마로 스크린과 관객을 압도하는 배우 유오성(44). 잘생겼다는 수식어 보다 인간미 넘치고 정 많다는 수식어가 더 잘 어울리는, 보는 이로 하여금 편안함을 느끼게 하는 배우. 날카로운 눈매 각진 얼굴, 사람들은 쉬이 그에게서 강하고 거친 느낌을 먼저 떠올린다. 그러나 그의 눈빛 너머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따뜻함과 열정을 만날 수 있다. 배우 유오성 안에는 거칠고 당돌한 ‘친구’의 준석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간첩리철진’에서의 어수룩하지만 가슴이 따뜻한 철진도, ‘투명인간 최장수’에서 알츠하이머병에 걸려서도 가족을 위한 노력을 포기하지 않았던 최장수 역시 모두 그의 가슴속에 살아있다.
그를 정상에 올려놓은 것은 타고난 연기력도 운도 아니었다. 꿈에 대한 열정과 노력이 만들어 낸 결과의 산물이다. 최선을 다해 주어진 역할에 임무를 다하는 최고의 배우, 그의 남은 연기 인생과 진짜 인생이 무엇보다 찬란하고 화려할 것이라 함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운명이 이끈 연기자의 길

한양대 연극영화과 85학번인 유오성의 원래 대학진학 목표는 신문방송학과였다. 그러나 대학시험 점수에 맞춰 지원을 하다보니 신문방송과 가장 가까운 학과가 연극영화과인 줄 알고 얼떨결에 지원하게 된 그. 학과 사무실을 지나다 선배의 부름에 ‘조명기’ 닦는 일부터 가끔 무대에 올라 지나가는 행인역을 맡기도 했었다.
“가깝게 지내던 대학 방송반 친구로 인해 늦은 밤 방송반 스튜디오에서 LP판을 걸고 볼륨을 최대로 틀어놓으며 음악 감상하는 일이 잦았었는데 그 당시 가슴 속에 있는 무언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며 “음악과 선배들의 공연 후 부둥켜안고 우는 모습 등이 연기자로 이끈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고 유오성은 고백했다.
그는 1990년부터 연극을 시작해 93년 영화 단역을 맡게 됐다. 당시는 연극을 하기 위해 생계차원에서 영화를 했던 것이 98년부터 TV, 영화를 본격적으로 하게 됐다.
그는 잊을 수 없는 작품으로 ‘친구’가 아닌 ‘간첩 리철진’과 ‘챔피언’을 꼽았다. ‘간첩 리철진’에서 처음으로 주인공을 맡았고, ‘챔피언’은 흥행이 저조했지만 최선을 다해 김득구를 그려내 자긍심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가 가장 존경하고 닮고 싶은 연기자는 영화 ‘마부’ ‘박서방’ 등에 출연한 고 김승호다. 중학교 2학년 때 강원도 영월에서 서울로 전학와 EBS에서 방송한 김승호의 출연작들을 보며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기 때문.
여리고 감수성 풍부한 그는 아직도 나이 든 팬들의 칭찬을 들으면 “‘내가 인생을 잘 살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뿌듯하다.”고 말한다.

 

‘가족’은 살아있게 만드는 활력소
하지만 고속도로처럼 뻥 뚫려 앞으로만 나가면 모든 것이 잘 풀릴 것만 같았던 그의 연기 인생에도 고비는 찾아왔다. 자신이 20대 시절 열독했던 소설을 극화한 ‘장길산’에 캐스팅돼 체중이 8㎏이나 빠질 정도로 의욕을 보였지만 작품의 완성도가 떨어져 시청자들로부터 외면 받았었다. 영화와 관련된 소송에 휘말리면서 인간에 대한 배신감에 한때 자살까지 생각하기도 했다.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나는 동안 불혹의 나이를 맞았고 마음의 여유를 찾았다. 영화 관련 소송문제도 해결 된지 오랜 시간이 지났다. 연극배우 출신인 아내 명경수씨와 당시 일곱 살 된 아들이 큰 힘이 됐단다. 아내 명경수씨는 그가 조급하게 영화로 복귀하려 할 때 초심으로 돌아가 연극을 할 것을 권유했다. 힘든 시기에 아내가 성당에 다니며 자신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된 그는 그때부터 함께 성당을 다니기 시작했다.


그에게 가족이란 단순한 의미를 떠나서 자신이 영원히 지켜야할 터전이다.
“영화가 흥행이 돼 부를 얻어야 만이 성공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가족을 만들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성공한 셈이죠. 가족은 제가 지켜야 할 성역이며, 적어도 가족만은 생활고에 찌들어서 인상 안 썼으면 하는 것이 제 바램이에요.”
유오성 그는 자신의 인생 가장 최고의 선택 중 하나는 지금의 아내를 만나 결혼 한 것이라 한다. 가끔은 가족을 위해 이 일을 하는 것인지 일을 위해 가족이 있는 것인지 혼란스러울 때도 있다. 하지만 어떻게 사는 것이 가치 있는 인생인지 고민해왔지만 단 하나 배우로 연기를 통해 성취감을 느끼고 사는 것이 자신의 일이라는 신념은 변함이 없다.

 

 

끈질기게 노력하는 배우, 연기는 ‘삶’
배우 유오성은 자신만의 신념이 강한 배우다. 배우는 인간답고 정직해야 한다고 말하는 그. 연기를 하는 것은 거짓말을 하는 것인데 거짓말을 하려면 정직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된다고 자신만의 철학을 이야기 한다. 그는 지금의 자신을 만든 것은 가족과 건강, 사랑, 진실이라고 말한다. 단순히 몸이 건강하다는 뜻이 아니라 건전하다는 것이다.
또 진실하지 못하면 일상적인 연기 그 이상을 넘지 못하기에 스스로에게 진실할 것을 다짐한다.
그는 젊은 시절 배우 이외의 면에서 많이 위축되어 있었다. 많이 부족하고 스스로 자기 긍정을 한 시기보다 부정을 한 시기가 더 많았다. 스스로 보호하기 위해 고의적으로 세상을 지저분하게 보았던 때도 있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교만한’ 생각을 하게 된다. 원칙을 꺾고 세상과 타협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스스로 “교만한 부분이 있다면 인정하자”고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자기만의 원칙이 강해 세상과 불화한 적이 많았을 것 같은 그는 “내가 바뀌었다는 오해를 하지 않도록 연극판 후배들 만나면 ‘편하게 이야기하자’는 말을 많이 한다.”고 했다.


“배우라면 연극이든 영화든 어떤 장르에서든 끊임없이 노력하고 검증받아야 하며, 변하지 않고 항상 그 자리에서 노력해야 한다.”고 말하는 유오성은 아직 국민배우라는 말이 듣기 싫다. 40대 초반의 배우에게 ‘국민배우’라 붙이는 것은 이 사회가 얼마나 척박하고 배우군이 얼마나 얇은가를 보여주는 것이라 말한다. 더불어 그는 “자신의 아들이 그를 주인공이나 스타가 아니라, 어떤 훌륭한 작품에 참여했던 배우로 기억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이런 그가 2006년 오디푸스 더맨 이후 3년 만에 연극 ‘돌아서서 떠나라’로 돌아왔다. 이미 영화 ‘약속’으로도 선보인 적 있던 이번 작품은 영화와 드라마와는 또 다른 매력으로 다가온다. 멜로 연극은 첫 시도라 긴장하던 그는 숨겨진 멜로 본능을 발견 했다며 한껏 웃어 보였다. 오랜만에 관객과 호흡하며 나들이 할 생각에 부푼 그의 모습에서 연기에 대한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배우 유오성이 화려한 제 2의 전성기를 맞이할 수 있길 기대해본다.

 

유오성은…
1966년 9월 11일 강원도 영월 출생으로 아내 명경수와 2남을 두고 있다.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를 졸업해 1992년 연극 ‘핏줄’로 데뷔했다.
이후 연극 ‘빈 방 있습니까’(1994),‘마술가게’(1993),‘늙은 도둑이야기’(1996),‘칠수와 만수’(1997),‘테이프’(2005),‘2006 오디푸스 더 맨’(2006) 등. 영화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1994),‘테러리스트’(1995),‘간첩리철진’(1999),‘주유소 습격사건’(1999),‘친구’(2001),‘챔피언’(2002),‘각설탕’(2006)등 다수의 작품. 드라마 ‘내일을 향해 쏴라’(1998),‘장길산’(2004),‘투명인간 최장수’(2006)외 다양한 작품을 함께 했다.


▲수상내역
  - 1998 MBC 연기대상 신인상
  - 1999 한국최고인기연예대상 남자부문 인기상
  - 2001 제46회 아시아태평양영화제 남우주연상
  - 2001 제9회 춘사영화제 남우주연상
  - 2002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인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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