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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트에 흐르는 두개의 백마강…700년 백제의 넋■ 그 옛날의 트로트- 노래의 고향을 찾아서
박광희 기자  |  history81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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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10.16  11: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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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옛 왕조의 숨결을 찾아서 (2)이인권<꿈꾸는 백마강>, 허민<백마강>

우리 트로트에는 옛 백제왕조의 숨결을 추억하는 두 개의 백마강이 흐른다. 이인권의 <꿈꾸는 백마강>(1940)과 허민의 <백마강>(1954) 이다. 15년을 사이에 두고 세상에 나온 이 두 노래 모두가 ‘무너진 백제의 잃어버린 꿈’과 그 마음의 상처를 달래주는 노래들이다.

   
▲ 운보 김기창의 그림 <낙화암 뱃놀이>

(1) 이인권 <꿈꾸는 백마강>

(오프닝 대사:성우 정은숙)
“백마강 흘러흘러 700년 역사도 흘러가고 / 고란사의 종소리는 누가 치기에 / 꽃없는 낙화암에 저녁노을 섧기도 하다/ 무너진 부여성의 그 전설을 안다며는 /길손은 시 한 수를 읊고 가리라.”

1. 백마강 달밤에 물새가 울어
   잊어버린 옛날이 애달프구나
   저어라 사공아 일엽편주 두둥실
   낙화암 그늘에 울어나 보자

2. 고란사 종소리 사무치며는
   구곡간장 올올이 찢어지는 듯
   누구라 알리요 백마강 탄식을
   낙화암 달빛만 옛날같구나

                  (1940, 조명암 작사 /임근식 작곡)

 

   
▲ ‘제2의 남인수’로 불리며 <꿈꾸는 백마강>으로 전성기를 구가한 가수 이인권

가수 데뷔 초기에 북녘땅 청진에서 ‘제2의 남인수’로 불리던 무명의 신인 이인권을, 일약 ‘대중의 스타’로 만들며 전성기를 열어준 노래가 바로 <꿈꾸는 백마강>이다.
함경북도 청진이 고향인 이인권(李寅權, 1919~1973, 본명 임영일)은 청진상업학교 졸업 후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가수가 될 욕심에 때마침 청진에 순회공연을 온 오케레코드그랜드쇼단을 찾아가 쇼단 숙소에서 오케레코드사 사장 이철과 작곡가 박시춘의 이른바 오디션을 받고 합격점을 얻어 가수의 길에 들어섰다.

이때부터 당시의 톱스타 남인수의 대역을 맡아 순회공연을 다녔는데, 1938년 데뷔곡 <눈물의 춘정>(박시춘 작곡)을 내면서 성가를 얻기 시작해 <꿈꾸는 백마강>을 발표하던 1940년경부터는 당시의 톱스타들인 고복수, 남인수, 백년설의 인기에 버금가는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1949년 <선죽교>(김해송 작곡), <귀국선>(이재호 작곡)으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할 무렵 전쟁이 터지자 피난지 대구의 계산동 성당부근에서 셋방살이를 하며 같은 가수인 아내와 군예대 위문공연을 다녔다. 그러던 중 공연장이 폭격을 당해 아내는 현장에서 즉사하고, 자신은 다리에 부상을 입는 참사를 당한다. 이때의 마음 아픈 심경과 아내를 그리는 마음을 탱고풍의 자작곡 노래로 만든 것이 <미사의 노래>다. 이런 가슴아픈 사연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이 노래 또한 대중가요팬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으며 피난지 거리를 울렸다.

이후 그는 1955년경부터 오로지 독학으로 익힌 기타와 색소폰 연주, 음악이론을 바탕으로 작곡에 몰두해 상당수의 영화주제가를 작곡하기도 한 만능 대중예술인이었다. 송민도의 <카츄샤의 노래>, 최무룡의 <외나무 다리>, 현인의 <꿈이여 다시한번>, 이미자의 <살아있는 가로수>, 남상규의 <산포도 처녀>, 조미미의 <바다가 육지라면>, <단골손님> 등의 당대의 히트곡들이 그가 작곡한 노래들이다.
그렇게 그는 1970년대까지 활발하게 음악활동을 하다 1973년 쉰 넷의 나이에 급작스레 서두르듯 세상을 떠났다. 그가 세상에 남긴 노래는 작곡이 400여 곡, 작사가 50여 곡쯤 된다.

 

   
▲ 허민의 <백마강> 노래비(충남 부여의 구드래 조각공원 소재. 한글서예가 김기승의 글씨로 새겨져 있다).

(2) 허민 <백마강>

부산 피난시절, 친구 형의 결혼식에서 축가를 부르다 당시 도미도레코드사 사장이자 작곡가인 한복남에게 발탁돼 <페르시아 왕자>를 불러 현인의 <굳세어라 금순아>, 신세영의 <전선야곡>, 이인권의 <미사의 노래>가 피난지 부산 거리거리를 휩쓸던 시절, 허민은 또다른 신진스타로 그 대열에 합류했고, ‘백제의 잃어버린 꿈’을 노래한 <백마강>으로 인기정상을 구가했다.

 

                                                      <백마강>

1. 백마강의 고요한 달밤아 / 고란사의 종소리가 들리어 오면 / 구곡간장 찢어지는 백제꿈이 그립구나 / 아~달빛어린 낙화암의 그늘 속에서 / 불러보자 삼천궁녀를

2. 백마강의 고요한 달밤아 / 철갑옷에 맺은 이별 목 메어 울면 / 계백장군 삼척검은 임사랑도 끊었구나 / 아~오천결사 피를 흘린 황산벌에서 / 불러보자 삼천궁녀를

3. 백마강의 고요한 달밤아/ 칠백년의 한이 맺힌 물새가 날며/ 일편단심 목숨 끊은 남(藍)치마가 애닯구나 / 아~낙화삼천 몸을 던진 백마강에서 / 불러보자 삼천궁녀를

                                          (1954, 손로원 작사/ 한복남 작곡)

 

   
▲ 결혼식 축가 부르다 가수로 픽업된 <백마강>의 가수 허민

알토 음역의 중간톤으로 부르는 힘찬 남성적인 발성이 돋보이는 허민(許民, 1929~1974, 본명 허한태)의 대표 히트곡이다. 이 노래의 히트로 피난지 부산 아미동 판자촌에서 다 망해가던 한복남의 도미도레코드사가 기사회생했다.

경남 마산 출신으로 피난지 부산에서 주로 활동한 허민은, 비교적 부유한 과수원집 아들로 태어나 마산상고를 졸업하고 고려대 국문학과를 다니던 중 6.25전쟁이 터져 부산으로 피난가 내내 눌러앉았다.
그는 1950년대 초 남조선콩쿠르 2등 입상 후, 본격적으로 가수활동을 시작해 1954~1957년 몇 년간을 최고의 황금기로 누렸다. 그러나 더 큰 뜻을 펴지 못하고 급성폐렴으로 마흔다섯 창창한 나이에 한스럽게 이 세상을 떠나 아쉬움을 더해줬다.

 

 

■ Tip

삼천궁녀, 꽃처럼 떨어져 푸른 강물에 지다
낙화암(落花岩)

   
▲ 황포돛배가 뜬 백마강·낙화암의 가을 풍경
   
▲ 낙화암 바위 위에 있는 백화정

글자 뜻대로라면, ‘꽃이 떨어진 바위’다. 충남 부여의 대표적인 관광지인 부소산에 있는 바위로 삼국시대 백제의 멸망과 관련된 가슴아픈 설화가 얽혀 있다.(1984년 충남문화재 자료 제110호 지정)
부소산 정상 끝자락 저 아래 아뜩한 백마강의 너울이 어찔어찔 눈에 들어오는 바위 위에 ‘온갖 꽃들이 피어났다’는 백화정(百花亭) 정자가 아무 말없이 서 있다… ‘정말 3000명의 궁녀가 이곳에서 저 시퍼런 강물에 꽃처럼 몸을 던졌을까…’

후궁들이며 궁녀들 3000명이 서로서로 손을 이끌고 와서 강물에 몸을 던졌대서, 그렇게 떨어져 죽었대서, 이 바위를 타사암(墮死巖)이라고도 부른다.
무지막지하게 나라를 도륙내는 신라·당나라 군대의 수십만 말발굽에 채이고 밟히고 쫓기다 막다른 바위 끝에 다다른 백제의 궁녀들, “적에게 잡혀 죽느니 차라리 깨끗하게 강물에 몸을 던져 죽는게 옳으니…”하며 그 높은 산꼭대기 바위 위에서 치마를 뒤집어 쓰고 강물로 뛰어내렸다. 꽃처럼 펄펄펄…. 그런 연유로 이 바위의 이름을 ‘낙화암’이라 했다.

그렇게 한 나라의 숨이, 종묘사직이 꽃이 지듯 스러지고, 백제의 마지막 왕인 의자왕(義慈王, 재위 641~660, 백제 제31대 왕)과 태자 등 1만2000명이 당나라로 끌려가 노비의 삶을 살았다.
(향락에 빠져 나라를 패망의 길로 이끈 의자왕은 스스로 동맥을 끊어 자결하려 했으나 목숨을 건져 당나라 포로로 묶여 가 끝내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서기 660년 이역만리 적국 당나라에서 병을 얻어 쉰 네살에 죽었다. 678년 역사의 백제는 이렇게 허망하게 무너지고, 의자왕은 망국의 주범으로 ‘불귀의 객’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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