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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강 따라 역사가 숨 쉬는 인문도시■ 류미월의 문학향기 따라 마을 따라 - 경기 여주
류미월 객원기자  |  rhyu6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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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10.12  10:4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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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륵사(사진/여주시청 제공)

여강 강월헌에 앉아 흐르는 강물서
세종과 나옹화상의 흔적을 더듬으며
청산과 창공처럼 속세를 벗어놓다

남한강변에 자리한 신륵사 강월헌(江月軒)에 앉아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면 무겁던 마음이 가벼워지고 평온이 찾아든다. 추강(秋江)에 부서지는 가을 햇살이 한없이 아름다운 윤슬로 반짝인다.
세종대왕이 모셔진 영릉에 가면 좋은 기운이 감싸고 돈다. 성군이 보내는 따스한 기운과 위풍당당하고 기품 있는 소나무숲이 혼미한 정신을 고양시킨다. 영릉에서는 매년 5월15일이면 세종대왕 탄신 숭모제전이 성대하게 거행되고 숭모제향과 더불어 궁중음악, 무용을 비롯한 다채로운 행사가 열린다.

10월9일이면 드넓은 잔디밭에서 한글날 경축 행사와 한글 창제에 관련된 공연과 백일장이 열린다. 여주 명성로에는 고종황제의 황후인 명성황후 생가가 있다. ‘흙과 혼, 불의 조화, 여주도자기축제’는 매년 5월이면 신륵사 관광지에서 개최된다. 고소한 땅콩과 밤고구마, 기름기 잘잘 흐르는 친환경쌀인 ‘대왕님표 여주쌀’은 여주의 인기 있는 특산품이다. 2016년 경강선(판교역-세종대왕릉역-여주역) 개통으로 여주 나들이가 쉬워졌다.

   
▲ 세종대왕 동상

세종대왕의 넉넉한 품에 안기다
일반인 500원의 입장료를 내고 영릉에 들어서면 드넓은 공간에 가슴이 탁 트인다. 매표소를 지나 왕릉까지 가는 길에는 쭉쭉 뻗은 소나무가 위엄있다. 연지와 잘 가꿔진 잔디에 눈이 시원하고 신선한 가을바람을 맞으며 고즈넉한 숲길이 걷기에 좋다. 코로나19로 옥죄는 속세와는 다른 평화로운 풍경이다.
세종대왕 영릉(英陵)은 하나의 봉분에 두 개의 혼유석이 놓인 합장릉이다. 서울 헌릉에 먼저 조성된 왕비 소헌왕후 능과 세종대왕이 돌아가시고 합장했던 능을 1469년에 여주로 천장한 왕릉이다. 영릉을 여주로 옮긴 이후 천하의 명당이라 조선의 국운이 100년이나 더 연장됐다며 ‘영릉가 백년’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세종대왕은 재위 32년 동안 정치·사회·경제 등에서 쌓아 올린 눈부신 업적을 바탕으로 조선의 기틀을 마련했고 문화의 전성기를 이뤘다. 그중에서도 훈민정음 창제는 세종대왕의 가장 위대한 업적으로 손꼽힌다.
세종이 죽은 소헌왕후 심씨의 명복을 빌기 위해 당시 수양대군에게 석가의 일대기인 ‘석보상절(釋譜詳節)’을 편찬하게 했으며, ‘석보상절’에 세종이 감명을 받아 직접 지은 작품으로 '용비어천가'와 함께 석가의 공덕을 찬양한 대서사시인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이 있다.

   
▲ 영릉(사진/여주시청 제공)

월인천강지곡은 상·중·하 세 권인데, 그중 상권만 오늘날 전해지고 있다. 내용은 부처님의 자비가 달빛처럼 모든 중생을 비춘다는 뜻이다. ‘달(月)’은 석가불을, ‘천강(千江)’은 중생을 비유한 것으로 한글 금속활자로 찍어낸 책이다. 한글로 표기된 운문으로는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 다음으로 오래된 작품이며 종교성과 문학성을 조화시킨 장편 불교 서사시라 할 수 있다.
매표소에서 왼쪽으로 들어가면 세종대왕 영릉(英陵)이, 오른쪽으로 따라 올라가면 효종대왕과 인선왕후를 모신 영릉(寧陵)이 있다. 한 장의 입장권으로 두 개의 영릉을 볼 수 있다.

   
▲ 강월헌

여강에 비친 천년고찰 신륵사
남한강 줄기를 따라 신륵사로 가는 길가엔 여주도서관과 여주박물관이 있다. 황포돛배 선착장이 있고 모터보트가 초가을의 물살을 가른다. 아침이면 물안개가 자욱하고 저녁이면 붉은 노을이 강과 하늘을 물들이는 신륵사. 사찰이 산이 아닌 강가에 있어서 더 운치 있고 아름답다. 성인 3000원의 입장료를 내고 들어선 신륵사 경내에는 고려 때 고승 나옹화상이 지팡이를 꽂은 자리에서 나왔다는 아름드리 은행나무가 노랗게 물들어가고 있다. 강가 바위에 자리한 정자 강월헌(江月軒)에 서서 강물을 보아도, 청둥오리들이 유영하는 자유로운 모습을 보아도, 가을빛이 부서지는 풍경이 평화롭기만 하다.

신륵사는 신라 때 창건돼 고려말 나옹화상의 입적 후 세상에 널리 알려진 천년고찰이다. 신륵사는 여주의 정신적 상징처럼 보인다. 역사가 숨 쉬고 문화의 향기가 가득한 신륵사에 가면 자비로운 마음이 전해지는 것 같다. 신륵사는 사찰 그 이상의 영지로 불린다. 그 배경에는 고려 우왕 때 마을에 용의 머리와 말의 몸을 가진 용마가 나타나 사람들에게 고통을 줬는데 이때 나옹화상이 용마에게 신비한 굴레를 씌워 제압시켰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나옹화상은 당시 사람들의 존경을 받던 이름난 고승이었고, 신륵사엔 나옹화상의 사리를 모신 종 모양의 보물 제228호 보제존자 석종(石鐘) 부도가 있다.

   
▲ 경강선(사진/여주시청 제공)

이 또한 지나가리라...
사찰 경내를 둘러보고 다시 강월헌에 앉아 강물을 바라보다 산수화 한 폭 같은 풍경 앞에 나옹화상이 남긴 시구(詩句)가 저절로 떠오른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 하네
탐욕도 벗어놓고 성냄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 하네
-나옹화상 <청산가>-

강물은 호수처럼 너른 폭으로 고요하게 말없이 흐른다. 여주에서는 여주를 지나는 남한강을 여강(驪江)이라고 부른다. 여주에는 명성황후 생가, 목아박물관, 파사성, 폰박물관이 있고 쇼핑객을 부르는 여주프리미엄 아울렛, 이포보, 여주보, 강천보 등 볼거리가 많다.
흐르는 강물처럼 코로나 시대가 흘러가고 힘들고 낯선 시절 또한 지나가리라 소망하며 여강에서 아쉬운 발길을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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