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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곡의 강’ 돼 흐른 남·북 이산가족 ‘테마송’■ 그 옛날의 트로트 - 노래의 고향을 찾아서
박광희 기자  |  history81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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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9.28  10:2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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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고향 그리는 노래(5)-북(北)에 두고 온 고향 <눈물젖은 두만강><한많은 대동강>

(1) 김정구 <눈물젖은 두만강>

(대사) “두만강 나룻터에 황혼이 나리며, 강나루 주막집이 떠나기 싫어 헤어지기 싫어 술잔을 부여안고 울던 젊은이도 나룻배에 올라야 했다./ 정든 고향 정든 사람 되돌아 되돌아 보면 떠나야 했다/ 어느 하늘 아래 다시 만날 언약도 없는 이별도 있었다…”(이하 생략) …

   
 

1. 두만강 푸른 물에 노젓는 뱃사공
   흘러간 그옛날에 내님을 싣고
   떠나든 그 배는 어데로 갔소.
   그리운 내 님이여 그리운 내  님이여
   언제나 오려나

2. 강물도 달밤이면 목메여 우는데
   님 잃은 이사람도 한숨을 지니
   추억에 목메인 애달픈 하소
   그리운 내 님이여 그리운 내 님이여
   언제나 오려나

3. 님 가신 강언덕에 단풍이 물들고
   눈물진 두만강에 밤새가 울면
   떠나간 그님이 보고 싶구나
   그리운 내 님이여 그리운 내 님이여
   언제나 오려나

            (1938, 김용호 작사 / 이시우 작곡/ 박시춘 편곡)

 

‘신문도 팔았다 /달걀장수였다/ 달걀꾸러미 한 줄 떨어뜨려 /길바닥 깨진 달걀 보고 울기도 했다 // 원산 덕원목장 / 양치기 노릇도 했다// 책방 점원으로 책을 꽂고 책을 팔았다 /활동사진 음악사로/ 바이올린도 제법 연주했다 // 그런 뒤 / 두만강 푸른물에 노젓는 뱃사공’을 불렀다/ 세상이 그의 노래 따라 불렀다//
김정구의 무대 /갈 수 없는 두만강 / 잊지못할 두만강 /그의 노래에서 언제까지나 흐르고 흘러갔다.’
-(고은 시 <만인보>20-4, 김정구)

   
▲ 만년의 김정구 모습

김정구(金貞九, 1916~1998), 그는 그렇게 ‘눈물 젖은’ 세월을, 삶을 살았다. 노래도 <눈물젖은 두만강> 이다. 6.25 부산 피난시절에는 아미동 언덕배기 판자집에 살면서 떠돌이 빵장수, 지게꾼, 무대 단역 출연 등으로 고달픈 실향민의 삶을 이어가기도 했다. 그래도 노래만은 포기하지 않았다.

‘눈물젖은 삶’살다 이국땅에서 눈감아
함경남도 원산 명사십리가 고향이다. 집은 궁색하지 않은 독실한 기독교 가정으로 원산기독교청년학원을 다녔다. 맏형 김용환은 작곡가 겸 가수, 누나 김안라는 일본유학파 출신 성악가여서 자연 음악과는 친숙했다. 그가 바이올린 등의 클래식 악기를 잘 다루게 된 것도 그런 가정분위기와 무관치 않다.

이런 음악적인 가정분위기 속에서 1933년 뉴코리아레코드에서 <어머님 품으로>란 노래, 그리고 형 김용환 곡인 <삼번통 아가씨>로 데뷔했다. 그리고 그해인 1936년 서울로 올라와 오케레코드사에 적을 올리며 <항구의 선술집>을 발표하고, 그 이태 뒤인 1938년 발표한 <눈물젖은 두만강>이 크게 히트하면서 이름을 전국에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됐다.
특히 <눈물젖은 두만강>은 1960년대 KBS라디오 5분(한낮 12시55분~1시) 연속 반공드라마 <김삿갓 북한방랑기>의 시그널 주제곡으로 20년 넘게 방송되면서 1970년대 이후 전국민 애창 트로트곡이 됐다.

   
▲ 우리나라 최초의 걸그룹인 ‘저고리 시스터즈’와 일본공연 때의 김정구. 뒷줄에 이난영·장세정의 모습이 보인다.

그는 특히 만요(漫謠)가수의 재능과 끼가 넘쳐 익살스러운 노래들을 많이 발표했다. <왕서방 연서>, <총각진정서>, <수박타령>, 그리고 장세정과 듀엣으로 부른 <만약에 백만 원이 생긴다면은>과 <세상은 요지경>, <돈타령> 등의 만요, 그외에 <앵화폭풍>, <낙화삼천>, <바다의 교향시> 등 경쾌한 리듬의 노래들을 세상에 남겼다.

그는 1980년 대중가수로는 최초로 정부로부터 보관문화훈장을 받았으며, 말년(1992년)에 먼저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 가족 곁으로 이민갔다. 그리고 1998년 가을, 캘리포니아에서 실어증과 기억상실증에 시달리다가 ‘의식없이 누워 잠자듯이’, 강물이 흐르듯이 그렇게 조용히 이 세상을 떠나갔다.

 

(2) 손인호 <한많은 대동강>

   
 

1. 한많은 대동강아 변함없이 잘 있느냐
   모란봉아 을밀대야 네 모양이 그립구나
   철조망이 가로막혀 다시 만날 그때까지
   아~소식을 물어본다 한많은 대동강아

2. 대동강 부벽루야 뱃노래가 그립구나
   귀에 익은 수심가를 다시한번 불러본다
   편지 한장 전할 길이 이다지도 없을소냐
   아~썼다가 찢어버린 한많은 대동강아

               (1958, 야인초(김봉철)작사 /한복남 작곡)

 

흔치 않은 미성(美聲)으로 10여 년간 노래를 시중에 발표하면서도 일체 방송무대에 서지 않아 ‘얼굴없는 가수’로 불렸다. 심지어는 결혼한 부인조차도 1년이 다 되도록 남편이 노래 부르는 가수인지를 모르고 지냈다.

   
▲ 손인호의 만년 모습

‘얼굴 없는 가수’의 진짜얼굴…
 영화녹음기사

“바빠서 TV 나갈 시간이 없었다. 신분이 대한민국 공보처 소속 공무원이기도 했고…”
이것이 그가 얘기한 얼굴을 드러낼 수 없었던 이유였다.
본명이 손효찬인 손인호(孫仁鎬, 1927~ 2016)의 고향도 이북인 평북 창성이다. 압록강 수풍댐 건설로 고향마을이 물속에 잠겨 수몰이주민이 됐다. 때문에 창성에서 장춘으로 이주해 중·고교를 마치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평양 관서콩쿠르에서 1등을 하면서 가수의 길에 입문하게 된다.

이때 콩쿠르 심사위원장을 맡았던 이가 “이남 가야 당신 소질을 살릴 수 있다”는 말을 곧이곧대로 듣고 곧장 서울로 올라왔다. 그리고 작곡가 김해송이 이끌던 케이 피 케이 악단 가수모집 콩쿠르에서 최고상을 받으면서 악단가수 생활을 시작했다. 이때가 1946년으로 그가 스무살 나던 해였다.
그의 본직업은 특이하게도 영화녹음기사였다. 그는 89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가수로서는 150곡의 노래를 남긴 반면, 영화녹음기사로서는 무려 2000여 편의 영화작품을 녹음했고, 대종상 녹음부문상을 7차례나 수상한 이 업계의 베테랑 이었다.

<돌아오지 않는 해병>, <로맨스 빠빠>, <빨간마후라>, <미워도 다시한번>, <팔도강산> 등의 영화들이 모두 그의 손을 거쳐 탄생했다.
그가 본격가수로 데뷔한 데는 작곡가 박시춘의 역할이 컸다. 공보부 <대한뉴스> 제작때 만난 박시춘에게 은근히 노래를 부탁했고, 박시춘이 마음에 뒀다가 <나는 울었네> 등 두 곡을 줘 본격 데뷔하게 된다.

그후 <비내리는 호남선>, <울어라 기타줄>, <한많은 대동강>, <물새야 왜 우느냐>, <해운대 엘레지> 등의 노래로 한 시대의 획을 그은 가수로 기억되고 있다.
그런저런 연유로 그는 공직에서 은퇴한 뒤인 76세가 돼서야 본격 가수로서 가수협회 신입회원으로 가입한 진기록도 가지고 있다.
이 세상을 떠난 뒤 그의 안택은, 북녘 고향을 바라보기라도 하듯 파주 통일동산 부근 이북5도민 묘원에 마련됐다.

 

■ Tip

   
 

“통곡·절규…전국이 울었다!”

KBS <이산가족찾기 특별생방송>

KBS가 1983년 6월30일 밤 10시15분부터 11월14일 새벽 4시까지 / 총 방송기간 138일, 총 방송시간 453시간 45분 동안 릴레이 생방송한 <이산가족찾기 특별생방송>은 이천만 명의 남북 이산가족을 품어안고 있던 우리겨레의 가슴에 ‘통곡의 강’이 돼 흘렀다. 전국이 TV앞에서 절규하며 울었다.
이 생방송을 통해 1만189명의 이산가족이 상봉했고, 정부차원(대한적십자사)의 <남북 이산가족찾기>의 시발점이 됐다.
이 <이산가족찾기 특별생방송>은 녹화원본 테이프 463개 등 방송기록물 총 2만522건이 기네스북에 올랐으며, 2015년 10월에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기도 했다.

※주제가처럼 불려 심금을 울린 노래

   
 

1. 곽순옥의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1962년 경성방송(HLKA) 라디오 연속극 <남과 북>의 주제가다. 같은 이름의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한운사 작사, 박춘석 작곡의 이 노래는 1985년 패티김이 리메이크해 불러 이산의 아픈 상처를 되씹게 했다.

 

 

 

   
 

2. 설운도의 <잃어버린 30년>
당시 26살의 무명신인가수 설운도(본명 이영춘)를 일약 스타로 발돋움하게 해준 노래다. 그의 매니저가 이산가족찾기 생방송을 보고 작사가 박건호에게 전화를 걸어 이미 <아버지께>라는 타이틀로 발표된 노래의 노랫말을 개사해줄 것을 요청했다.(원곡은 남국인 작사·작곡)
그렇게 해서 ‘하룻밤 새 작사하고>그 다음날 노래 녹음>사흘째 되는 날 방송 >발표 하루만에 대히트’ 해, ‘최단기간에 히트한 노래’로 기네스북에 기록됐다.
설운도는 이 곡으로 제3회  KBS가요대상 7대가수상을 수상하며 스타로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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