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광희 칼럼 - 누리백경(百景)(153)

# 이제 세상은 비시(BC, Before Corona:코로나 이전)·에이 시(AC, After Corona:코로나 이후) 세상으로 나뉘어졌다.
지난 1월 코로나 바이러스 첫 확진자가 나온 이후 7개월 만에 누적확진자가 2만 명을 넘어서, 이젠 그 끝을 알 길 없는 공포의 도가니 속으로 우리를 몰아가고 있다. ‘코로나 블루’(우울감·무력감), ‘코로나 앵그리’(분노의 의미) 속에서 평생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멈춤의 시간’ 속으로 빠져들어가고 있다.

사람들은 이 잔혹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맥 없이 풍화(風化)돼 간다.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생노병사(生老病死)의 생명순환질서가 흡사 제방 둑이 거친 물살에 무너져 내리듯 서서히 무너져 내리고 있다.

# 프랑스의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 1871~1922)는 그의 대하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삶이란 결국 ‘잃어버린 시간’에 불과한 것. 모든 것을 좀먹고 파괴해 가는 ‘시간의 힘’을 뿌리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던지며, 결국은 “인간 존재의 공허함을 느낄 뿐”이라는 철학적 결론을 얘기했다.

그렇다면, 우리의 지나간 (때로는) 아름다웠던 과거는 그렇게 풍화돼 영영 잊혀져 버리고 마는 것인가…
철 없던 유년시절의 기억, 그때 키우던 가슴 속의 푸른 꿈, 가슴 시린 사랑과 이별, 새 생명 탄생의 환희, 사회적 성취… 코로나 이전의 이 모든 것들과의 결별-우리의 사랑이나 고통에서조차 남는 것은 아무 것도 없을 것이란 불길한 예감에 온몸이 떨린다.

# 이제 시작된 에이 시(AC)-코로나 이후의 세상. 코로나19의 ‘제3차 대유행’이 예고된 지금의 상황에서 당국이 내놓은 마지막 희망은 ‘흩어지는 것’이다. 지난 한 주간의 ‘잠시 멈춤’만으로도 이미 우리 삶의 터전인 도시들은 유령도시화 돼 간다. 음식점·커피숍·학원·체육시설 등 47만여 개가 문닫기 일보직전이다.

그곳에 생업을 의탁했던 사람들은 직장을 잃고 뿔뿔이 흩어져 도시의 미아처럼 단기 알바 일자리를 찾아 떠돈다. 이들이 기댈 희망은 그 어디에도 없다. 가난의 어두운 그림자도 어른거린다.
이젠 가족 간에도 두꺼운 벽을 쌓아 얼굴 대하기 어려운 현대판 ‘로빈슨 크루소’가 돼간다. 이제 몇 주 뒤면 추석 연휴 민족대이동이 시작될 것이지만, 지금 제일 무섭고 두려운 대상이 바로 ‘사람’인 세상이 돼버린 코로나 세상에서 명절이 무슨 의미가 있기나 한 걸까.

예전 어느 노 정객이 일갈했던 “우리가 남이가?”란 말도 이젠 먼지 폴폴 나는 고전이 돼 버렸다. 그렇게 정(情)이며 ‘사람’을 잃어버리고, 내 한 몸 챙기기도 버거운 세상이다. 진정한 ‘나’를 어디서 어떻게 찾을 것인가 돌아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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