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자수필 - 귀농아지매 장정해 씨의 추억은 방울방울

"전원일기 속 마을처럼
한 가족이 돼 서로 보듬고
삶을 나누며 살아가길..."

어제만 해도 산기슭 졸참나무 그늘을 들썩이며 뜨겁게 울던 매미는 간 데 없다. 처서를 지나서인가 귀뚜리 풀벌레 소리가 귀에 이명처럼 맴돌고, 그 사이에 목 쉰 멧비둘기의 굵은 중저음이 묵직한 메시지를 보낸다.
8월 초 병원에서 심장부정맥(심방세동) 진단을 받았다. 두 달간 약을 먹고도 잡히지 않으면 심장박동기를 넣는 수술을 한다고 했다. 담담하게 돌아왔지만 그 후 남편은 내게 바깥일을 일체 못하게 한다. 집안에서도 웬만한 일은 다 거들어주다 보니 한낮으로 TV 보는 시간이 많아졌다.

요사이 종편에서는 거의 옛날에 했던 것을 재방영하는데, 1980년대 시작해서 2002년에 끝난 최장수 농촌드라마였던 ‘전원일기’를 가장 즐겨 본다. 거의 우리 결혼시기와 맞물려 시작한 프로이다 보니 옛날 우리의 추억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드라마를 위해 새롭게 꾸민 것이 아닌, 본래 그대로의 시절을 바라보면서 우리가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잊어버린 것이 무엇인지를 확실히 깨닫게 된다. “우리도 그때에는 저랬는데...” 잊고 있었던 옛이야기가 봇물처럼 터져 나온다. 모처럼 남편과 의견일치를 보면서 박장대소하기도 하고, 돌아가신 부모님 생각에 눈물을 펑펑 흘리며 빠져보기도 한다. 특히 전원일기 971회 ‘순영의 추석’ 편이 기억에 남는다.

그 대강의 줄거리는, 김 회장(최불암)댁 큰딸 ‘영애네’가 남편이 사업에 실패하고 추석에 친정에 다녀가지 못할 형편이 됐다. 그걸 안 친정엄마(김혜자)가 딸(영애)네 보내주려고 여러 가지 말린 나물이며 참기름, 들기름 한 병씩 준비해놓고 잠깐 외출을 했다. 그 집 며느리 중 큰며느리와 막내며느리는 친정나들이를 가고, 둘째며느리 ‘순영’만 집에 남아 있었다.

때마침 중국산 인삼을 국산으로 속여 파는 사기꾼이 순영이 혼자 있는 집에 찾아와 특별하고 좋은 삼을 싸게 주겠노라고 떠벌인다. 명절에 고향에도 가지 못한 순영은 친정어머니께 인삼을 부쳐드리고 싶은 마음에 가진 돈을 다 주고도 부족해서 마루에 싸놓은 기름병까지 모두 주고 인삼을 샀다.
외출에서 돌아온 시어머니(김헤자)는 딸에게 부쳐주려고 둔 기름병이 없어졌다고 펄펄 뛴다. 순영은 실토를 하지만, 허락도 없이 이유도 모르고 맘대로 했다고 호된 꾸지람을 듣는다. 이를 지켜본 김 회장은 아내에게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라고 한다. 어미가 딸을 생각하는 마음이나, 딸이 어미를 생각하는 마음이 뭐가 다르겠냐며 며느리 순영을 두둔한다.

중국삼을 팔던 사기꾼이 다른 집에서 인삼을 팔다가 마을 청년에게 들통나고, 순영은 우여곡절 끝에 돈과 기름을 되찾아 시어머니에게 갖다 드렸지만 서로 맘이 편치 않았다. 다음날 김 회장이 순영을 읍내로 불러내서 인삼 한 상자를 주며 친정 모친에게 부쳐드리라고 한다. 그리고 명절에 부모를 생각하는 일이 얼마나 착하고 좋은 일이냐고 위로한다. 순영은 사양을 하다가 시아버지의 깊고 넓은 마음에 감사하며 눈물을 흘린다.

이 방송을 보면서 돌아가신 친정아버지 생각에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있기만 해도 맘이 환해지고, 있는 그 자체로 힘이 되는 존재, 큰 정신이 있어 가르침을 주는 존재가 우리 세대에는 계셨다. 아버지가 계셨고, 선생님이 계셨고, 어른이 계셨다. 내가 사는 농촌마을이 전원일기 속 마을처럼 한 가족이 돼 서로 보듬고 삶을 나누며 살아가길 희망한다. 2020년부터 나도 아름답고 맑은 전원일기를 다시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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