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기 쉬운 여성농업인정책 - ⑨여성농업인 대표성 확대

▲ 농림축산식품부 오미란 농촌여성정책팀장

‘알기 쉬운 여성농업인정책 이야기’를 총 10회 걸쳐 연재한다. 여성농업인의 법적지위를 시작으로 여성농업인 대표성, 성 평등, 복지 등 다양한 활동에 연계된 여성농업인정책에 대해 농식품부 오미란 농촌여성정책팀장이 알기 쉽게 풀어서 전달하며 여성농업인의 정책 체감도를 높인다.

 

여성대표성 성과 목표,
인센티브 부여 등 기회제공 중요

여성의 대표성은 성평등 실현의 중요한 척도로 활용되고 있다.
세계 성평등 지수에서도 의원비율, 고위공직자 여성비율, 기업 임원 여성비율 등은 중요한 척도로 활용된다. UN여성차별협약 이행보고서에는 농촌영역 유일한 과제로 농업생산조직(농수축협)의 여성 참여비율을 이행과제로 제출했다. 그만큼 생산조직에 대한 여성농업인의 참여, 특히 여성의 이해관계를 반영한 농업정책 추진을 위해서는 여성대표성이 중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의 성별격차는 전 세계 154개 국가 중에서 108위로 남성과 여성의 성불평등은 여전히 사회발전의 커다란 과제다. 성별격차의 영역에서도 의사결정(대표성) 영역이 가장 격차가 심하다.
특히 농어촌 지역의 경우 선출직 광역의원의 당선은 가뭄에 콩 나기만큼 어렵다. 농촌의 여성대표성 확대는 한국의 성평등 지수와 매우 중요하게 연계돼 있다. 이러한 특징을 그대로 보여주는 지표가 지역성평등 지수다.

 지역 성평등 지수를 살펴보면 더 심각한 문제에 직면한다. 대도시에 비해서 농어촌 지역일수록 여성의 대표성이 낮다. 농어촌 지역은 여성의원 비율만이 아니라 4급 이상 여성공무원 비율도 도시에 비해서 낮다. 도시 지역의 통장은 여성이 50% 이상이나 농촌의 여성이장의 경우 10%를 넘지 못한다.

농어촌 지역 여성의 대표성은 깊은 골을 이루고 있다. 따라서 일상적인 삶의 영역에서 여성의 대표성을 확장하는 제도와 문화의 적극적 개선 노력이 필요하다. 그것은 마을단위 조직부터 농수축협 생산자 조직, 행정조직, 민간기업 등 모든 영역에서 추진되는 중요한 농어촌 지역의 핵심과제가 돼야 한다.

# 제도는 만들어졌지만 현실은 여전히 높은 장벽
여성의 대표성을 높이는 문제는 사회경제 조직에 여성의 참여를 높이는 것만이 아니라 일을 결정하고 집행하는데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지위에 여성의 비율을 확대하는 방안이다.
한국의 농촌마을은 가부장적 대표성이 강하게 남아있다. 여전히 이장은 당연히 남성이 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고, 마을총회에서도 1가구 1표=남성으로 행사되는 마을도 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 제주도에서는 성평등 마을규약 만들기가 실천되고 있다. 

각종 마을사업을 위한 대표도 여성은 드물다. 그간 1000여개가 넘는 농어촌마을개발(각종 체험마을 및 휴양관련 마을사업)사업이 진행됐지만 여성위원장을 만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렵다. 마을이나 지역개발 조직만이 아니라 생산자 조직에서도 마찬가지다. 농산물이 거의 여성의 노동으로 완성됨에도 불구하고 작목반의 대표도 대부분 남성이다. 농민들의 가장 오랜 생산자 조직인 농협, 수협, 축협 조합장도 물론 남성이다.(여성조합장 8명으로 0.8%).

여성농업인들도 법과 제도를 바꾸기 위한 다양한 목소리를 높여왔다. 1994년부터 여성들의 생산자 조직 참여를 보장하는 복수조합원제(부부 모두 가입 가능)실시를 주장해 농협법 개정을 통해 현재는 남성이든 여성이든 부부 모두 조합원이 될 수 있는 평등한 권리를 확보했다.
또한 농협법 제5조 8항에 여성조합원이 전체 조합원의 100분의 30 이상인 농축협은 이사 중 1명 이상을 여성조합원 중에서 선출·운영하도록 명기하고 있다. 여성참여 증진을 위해 농협법은 복수조합원제와 이사 선출 의무할당을 넣었고, 그 결과 농협의 여성조합원 비율은 지난해 말 기준 32.6% 정도로 향상됐다. 그러나 여전히 지역농협 여성이사의 비중은 아직 8.6%에 머물고 있다.

# 당근과 채찍 모두 필요
여성의 대표성을 높이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나? 한마디로 당근과 채찍이 모두 필요하다.
마을여성이장이 전혀 없던 시기에 전라남도에서 여성이장 비율을 높이기 위해 ‘여성이장인센티브제도’ 실시를 통해 여성이장의 진입을 확대했다. 또 농협은 농협법을 개선해 여성의 진입을 가능케 하고, 여성이사 할당제 역시 제도 개선에 해당하는 정책이다.

그러나 단순한 인센티브제도로 실질적 여성대표성을 만들어내긴 어렵다. 즉 기회가 주어졌다고 해서 저절로 여성의 이해나 요구가 사업에 반영되지는 않는다. 어렵게 진입한 여성들의 역량강화를 위한 인식개선 교육, 실질적인 역량개발 교육 등 다양한 훈련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 여성이장이나 마을개발 사업 등에 여성의 참여를 증진시키기 위해서는 여성이장 마을, 마을개발이나 생산자 조직 지원 시 여성대표 인센티브 부여 등을 통해 여성의 진입장벽을 완화하고 기여도를 높일 수 있는 적극적 진입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특히 이런 사업을 통해 훈련된 여성들의 활동은 마을이나 농업생산자 조직만이 아니라 지역과 지방자치의 중요한 지도력으로 성장해 지역사회 전체의 여성대표성을 높이고 여성의 사회적 지위를 확대하고, 여성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다. 

하지만 여성농업인의 대표성을 높이는 것은 법이나 제도의 개선을 통한 형식적 진입기회를 제공하는 것으로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마을, 지역사회, 국가, 농업조직 모든 영역에서 여성농업인 대표성을 성과 목표로 만들어서 여성농업인들의 실질적 정책참여가 이루어지도록 정책을 발굴해 기회가 제대로 활용될 수 있도록 실질적인 조건을 만들어 여성농업인 스스로가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농어촌의 사회적 지위에 대한 여성의 도전은 중요한 정책 과제다. 그 높은 장벽을 누가 기어오르고 해체할 것인가? 당연히 여성농업인들 스스로의 힘이다.

 

■  여성대표성 확보 현장 사례 - 전북 장수 장계농협

▲ 장계농협은 여성조합원들로 여성산악회를 조직해 조합과 지역발전의 네트워크를 형성했다.

여성조합원 40%, 여성임원 30% 달성
그곳엔 여성의 힘을 믿은 리더가 있었다

전북 장수의 장계농협(조합장 곽점용)은 올해 3월 2019년 지도사업종합평가 우수상을 받았다. 지난해 11월엔 2019년 3분기 지도사업 종합평가 영농지도부분 대상, 2019년 지자체협력사업 우수상, 2018년 지도사업 종합평가 추진 우수상을 수상하면서 지도 경제 영농 전 부분에 걸쳐 우수한 선도 농협으로 위상을 떨치는 지역농협이다. 

장계농협은 4424명 조합원 중 약 40%인 1756명이 여성조합원이다. 여성 임원도 30%로 조합장 포함 전체 19명의 임원 중 6명이 여성이다. 지역농협 중 여성조합원수와 여성 임원수가 많은 농협이 된 비결은 무엇일까?

▲ 지역농협 여성대표성을 확대한 곽점용 장계농협 조합장

곽점용 조합장은 “여성들이 조합 일을 잘하기 때문이다”고 명료하게 답했다. 조합을 책임지고 경영하다보니 집안에서 살림살이를 맡아하는 여성들이 조합 살림살이도 잘하더란다.  
처음 여성 이사를 본점과 지점에 한명씩 두자고 제안했을 때 이사회의 반대가 있었다. “꽃밭에서 놀려고 그러느냐”며 따가운 시선과 말을 보내는 사람도 있었지만 여성의 능력과 힘을 믿었기에 곽 조합장은 밀고 나갔다. 사실 장계농협이 조합원 한마음대회로 열리던 행사를 키워서 버스 40~50대가 몰리는 직거래 장터도농교류행사인 장계가는날을 열고 다양한 농산물판매로 하루 매출이 2억~3억 원을 올리며 지역경제 활성화에 역할을 하게 된 것은 여성조합원들의 역할이 컸다. 

결국 안건을 대의원 총회에 올려 승인을 받았고 이런 과정으로 배출된 장계농협 출신 여성이사인 최희숙 씨는 이를 계기로 장수군 기초의회에 진출할 수 있었다. 현재 장계농협엔 여성복지 업무를 담당하며 33년간 근무한 양영희 여성 상무도 있다. 
여성조합원수가 다른 조합보다 많은 것에 대해 곽 조합장은 “환원사업이 잘되고 있어 조합원으로 가입하면 혜택이 많기 때문”이라 설명했다.

여성이사가 늘어난 후 조합원의 복지와 의료사업 등이 확대됐다. 조합원 맞춤형 교육과 환원사업으로 조합원의 조합에 대한 만족도도 더욱 향상됐다. 농가주부모임과 고향주부모임 등 농협의 여성조직들의 활동이 활성화 된 것도 큰 성과다. 장계농협에선 여성조합원 385명이 참여하는 여성산악회를 조직해 여성의 단결된 힘으로 조합발전을 이뤄냈다.

장계농협이 장계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을 만들고 2018년 우리치과를 개원해 농민들의 치과 비용 부담을 덜어주게 된 것도 여성조합원들의 힘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한다.
곽 조합장은 “여성조합원들이 자부심을 갖고 활동하며 지역사회에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또 여성이사로 진입할 수 있는 희망을 품게 돼 활동영역이 넓어졌다”며 여성대표성 확보의 성과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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