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광희 칼럼 - 누리백경(百景)(147)

# 총길이 415km, 하루 교통량 77만대, 하루 통행료 수입 25억 원, 교량(다리) 991개, 터널 27개, 휴게소 34개소.’
경부고속도로의 대체적인 개관이다. 1968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처음 이 길을 닦는다고 했을 때, 당시 서울대 상대 교수들 전원이 대국민 성명서를 내고 “소수의 부자들이 젊은 처첩들을 차 옆자리에 태우고 전국을 놀러다니는 유람로가 될 것”이라고 비난하고, “국가 재정 파탄난다”며 언론에서도 맹렬히 반대했다.

그 길이 지금은 우리 대한민국의 숨통의 줄기를 잡아주는 대동맥이 돼 있다.
전국 일일생활권 시대가 열리고, 그 축을 중심으로 산업단지가 늘어나고, 도시들이 성장했다. ‘마이카 시대’도 열리면서 국민들의 삶의 질도 높아졌다.

# 우리의 국민 1인당 GDP가 100달러 남짓 했던 당시, 서독을 우리나라의 발전모델로 삼은 박정희 전 대통령은 서독에 먼저 탄광 광부와 간호사를 외화벌이 인력으로 파견한 뒤 1964년 12월6일 당시 서독 뤼브케 대통령 초청으로 서독을 국빈 방문하게 됐다.
그런데, 문제는 당시 우리나라에는 일본 정도만 오가는 소형 여객기만 있었을 뿐, 독일까지 장거리를 운항할 비행기가 없었다. 할 수 없이 미국의 아메리칸 에어라인을 전세기로 빌려달라고 했으나, 미국 정부가 “쿠데타로 대통령 된 나라에 비행기를 빌려줄 수 없다”며 거절해 실로 난감한 처지에 놓였다.

이때 어쩔 수 없이 정부에서 당시 <동아일보> 최두선 사장을 특사로 서독에 보내 비행기편을 협의케 했다. 최두선 특사는 서독 뤼브케 대통령과 에르하르트 총리를 만난 자리에서, “각하, 우리나라에는 서독까지 올 수 있는 비행기가 없습니다. 독일에서 비행기를 한 대 보내주실 수 없습니까?”
이 말을 듣고 서독대통령과 총리는 깜짝 놀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고 뒷날 통역사가 전했다.

결국 홍콩까지 운항하는 서독 여객기(루프트 한자)를 먼저 서울로 보내 박정희 전 대통령 일행을 1, 2등석에 태운 뒤, 홍콩으로 가 이코노미석에 일반승객들을 탑승시켜 방콕-뉴델리-로마를 거쳐 서독의 프랑크푸르트까지 갔다는 눈물겨운 이야기가 에피소드로 전해 온다.

그렇게 서독에 간 박정희 전 대통령은, 서독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우리 국민 절반이 굶어죽어 가고 있다. 돈 꿔 달라!”며 눈물로 호소해 3억 마르크의 돈(차관)을 빌려와 고속도로 건설과 경제산업개발에 투입했다.

# 지난 7월7일로 경부고속도로 개통 50주년을 맞았다. 지금은 그 경부고속도로를 포함해 나라 안의 총 고속도로 길이가 4767km에 달한다. 지난 50년간 고속도로가 무려 9배 가까이 늘었다.
그러는 동안에 고속도로가 ‘부유층들의 유람로’니, ‘국가 재정 파탄낸다’며 비난하는 사람들은 없었다.

그때는 왜 그걸 몰랐던 것일까.
‘피눈물로 닦아 나라 번영의 초석을 놓은’ 그 공과 덕을 결코 홀대하거나 잊어서는 안된다.
그 위업의 뒤안에 엄연히 존재했던 이름없는 민초들의 피·땀·눈물의 가치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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