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광희 칼럼 - 누리백경(百景)(146)

‘밥은 국법이다 / 오 밥이여,/ 어머님 젊으실 적 얼굴이여’
 (이성복의 시 <밥에 대하여> 부분)

# 내게 어머니는 곧 밥이었다. 고향의 늙으신 어머니는 만나뵐 때마다 단 한번도 빼놓지 않고 자식의 안부로 묻는 첫마디가 늘 “밥 먹었니?”였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 “오늘 쉬는 날이여?”
슬하에 다섯 남매를 둔 어머니에게 있어서는, “자식 밥 먹이는 일보다 더 중한 일이 뭐여?”로 그 인생이 압축됐다.

어쩌다 느닷없이 시골집엘 내려갈 때면, 오밤중에 바람처럼 횡하니 잠시 왔다 가는 새끼의 한 끼 밥상에 ‘괴기(고기)’ 한 점, 생선 한 토막이라도 올려주기 위해 1.5km 밖 ‘육곳간(정육점)’까지 줄달음질치기를 마다하지 않으셨다.
그 어머니가, 지금은 아흔 하나의 연세에 자식 그 누구 하나도 알아보지 못하고, 당신 자신이 밥 먹는 것조차도 잊는 중증치매로 요양원에서 기약없는 나날을 보내고 계신다. 어머니는 그렇게 저만치 돌부처처럼 서 있고, 이제는 그 적의 어머니 마음을 밥처럼 씹고 또 되씹는다.

# 요즘 ‘집밥’ 대신 ‘가정간편식’이 대세다. 가정간편식(HMR: Home Meal Replacement)은, 집밥을 간단하게 대체한다는 의미다. 이같은 추세는 나홀로 1인가족이 늘어나고 있는데다가 인스턴트 음식 맛에 길들여진 젊은이들이 불ᆞ칼·도마를 대체하는 가정간편식을 선호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간편식은 우리 사회의 변화와 함께 빠르게 계속 진화를 거듭해 왔다. 라면·3분카레·고향만두에서 양반죽·햇반으로, 그리고 국·탕·찌개에서 지금의 반조리 식품인 밀키트·라라밀스(LaLa Meals)에 이르기까지… 농림축산식품부의 통계자료에 따르면, 2년 뒤인 2022년 예상 시장규모가 약 5조 원으로 급성장세를 타고 있다. 대기업간의 ‘피 튀기는’ 시장경쟁도 이미 시작됐다.

게다가 그 요리들을 요리로봇이 만드는 날도 코앞에 와 있다. 세계 요식업계의 최고 권위인 미슐랭 스타급 셰프들의 레시피를 그대로 재현해 주는 요리로봇을 개발중에 있어, 우리 가정의 주방을 점령 당할 날도 멀지 않았다.
가정간편식, 그 음식 모두가 건강식이라지만, 그곳엔 어머니도, 아내도 없다… 편리함 만을 좇다 사람을 모두 잃어버렸다. 그저 인스턴트 음식에 길들여져 날마다 혓바늘 세우는 간사한 혓바닥과, 시린 이가 갈아내는 국적없는 까다로운 입맛만 있을 뿐이다.

이 눈부신 주변일상의 커다란 변화 속에서 주눅들기 보다는, 난 매 끼니때마다 아내가 예전 고향의 어머니처럼 밥상을 차리면서 맨처음 식구 수대로 식탁 위에 짤그랑대며 수저 놓는 소리를 무진 사랑한다. 그럴 수 있는 ‘오늘도 안녕’에 감사한다. ‘어머니의 밥’같은 한 끼의 따뜻한 밥을 입안 가득 먹을 수 있으므로. 그리고 그런 포만감 속에서 마음의 안식을 매일 누릴 수 있으므로.

“밥이 바로 부처인데, 그 밥 한그릇 없어 부처 되지 못한다”는 말, “달마대사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식당과 화장실이 동쪽에 있기 때문이다”라는 불가의 우스개같은 말도, 한 마디로 ‘집밥’의 소중함을 일러주는 얘기는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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