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명견 교수의 재미있고 유익한 옷 이야기(85)

"패션이란 무엇을
입었느냐가 아니고
누가 입었느냐에 따라
달라 보인다..."

어디를 틀어도 미스터트롯이다. 결선 시청률 35.7%라는 기록도 놀랍지만, 시청자들의 열렬한 ‘사랑의 척도’는 잴 수 없을 것 같다. 그들의 노래 실력은 물론 머리에서 발끝까지의 패션까지 사람들의 눈과 마음을 끌고 다녔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오디션이 끝나자, 방송들은 미스터 트롯들로 들썩이고, 광고판까지 다 휩쓸고 있다.

트롯이란 1914년 미국의 유명 연예인, 헤리 폭스(Harry Fox)가 고안한 춤과 춤곡에서 비롯됐다. 일본 엔카의 원조라 불리는 고가 마사오(古賀政男 1904~1978)가 자신의 음악에 폭스 트롯이란 이름을 붙였다가, 폭스를 떼고 트롯이라 불렀다. 이 음악이 조선에 영향을 줬고, 그게 우리의 트롯이라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당시 음악평론가 모리(森)는, 고가 마사오의 대표작 ‘술은 눈물일까 한숨일까’가 조선인 친구 전수린(‘황성옛터’ 작곡가)의 ‘고요한 장안’을 베꼈다고 했다.

고가가 유소년기 10여 년을 조선에서 지냈고, 그 자신도 조선인들이 흥얼거리는 민요를 날마다 듣고 살았으며, 그 시절이 없었다면 이러한 곡들을 만들 수 없었을 것이라고 고백한 바도 있다. 때문에 일본 엔카에는 물론 우리의 뽕짝에도 고유의 우리 가락이 베어있다는 이야기다.
일제 치하에서, 한과 설움을 품어낸 우리의 노래가 뽕짝이라 ‘비하(卑下)’ 된 데에도 아픈 역사가 있다. 1960년대에 한일외교가 굴욕적이라며 국민들의 반발이 크게 일자, 민심을 달래려고 ‘왜색’인 일본문화의 잔재를 몰아내자며 뽕짝도 엔카의 영향이라고 탄압했다. 인기 가요들이 금지곡이 됐고, 새 음악에 밀리며 차츰 뽕짝은 질이 낮고 싸구려라는 이미지가 붙게 됐다.

미스터트롯들은 오디션을 통해, 트롯이 우리 민족의 한과 감성을 절절히 풀어낸, 전통가락이라는 잠재의식을 일깨어줬다. 뽕짝이 심금을 울리는 ‘명곡’이라는 것도 증명해냈다. 더불어 출연자들은 역경을 이겨낸 삶의 모습을 진솔하게 펼쳐 보이며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경쟁무대임에도 서로를 배려하고 격려하며 위로하는 모습들은 어느 오디션에서도 보기 힘든 값진 것들이었다. 그들이 펼치는 인간드라마에 열광하면서, 사람들은 그들의 패션에도 눈과 마음을 빼앗길 수밖에 없었다.

미스터트롯들은 반짝이 옷 대신 세련되고 정감 있는 다양한 옷들로 무대를 채웠다. 그들은 어떤 옷도 멋지게 소화해냈다. 이들의 인기가 높아지자 국내 의류업체들은 물론 세계 명품들의 의상 협찬이 줄을 이었다. 그야말로 패셔니스타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임영웅이 입은 셔츠는 510%의 매상을 올리는 공을 세우기도 했다. 심지어 이들이 한 TV프로에서 입고나온 ‘몸뻬(속칭 냉장고 바지)’나, 이천 농촌마을을 찾았을 때 입은 농민들의 노동복도 대 환호를 받았다. 만일 미스터트롯들이 사랑받지 못했다면 어떤 옷으로 꾸몄던들 관심이나 가졌겠는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가 입은 옷이 좋아 보인 것이다. 패션이란 무엇을 입었느냐가 아니고 누가 입었느냐에 따라 달라 보인다는 이야기다.

사랑 받는 삶을 사는 사람의 패션이 가장 영향력이 크다는, 마음의 눈으로 패션을 본다는 진실을, 미스터 트롯들의 패션을 통해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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