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희 칼럼 - 누리백경(百景)(144)

# 일제시대 때인 1920년대 초~1930년대 말, 우리나라에서 ‘물산장려운동’이 일어났다. 민족 운동가인 고당(古堂) 조만식(曺晩植, 1882~1950) 선생은 일본 메이지대학 유학에서 돌아오자마자 ‘무저항 민족주의 운동’으로 일제의 경제적 수탈정책에 항거해 ‘물산장려운동’을 일으켰다.

고당 선생은 ‘물산장려회’를 조직하고, 그 자신부터 먼저 우리나라에서 나는 산물로만 먹고 입으면서 일본제품 배격운동을 전개했다. 구체적인 기본 실천요강은 ‘첫째, 의복은 남자는 무명베 두루마기, 여자는 검정물감을 들인 무명치마를 입는다. 둘째, 소금·설탕·과일·음료를 제외한 나머지 음식물은 모두 우리 것을 사 쓴다. 셋째, 일상용품은 우리 토산품을 사용하되, 부득이 외국산품을 사용하더라도 경제적 실용품을 써서 가급적 절약한다’ 였다.

일본제품 배격운동으로 시작된 이 운동은 거국적 애국운동으로 확대됐고, 이에 겁을 먹은 일제의 분열공작과 탄압으로 결국은 안타깝게도 유야무야 됐다. 이와 유사한 취지의 ‘국산품 애용’ 운동이 1970년대 초반 박정희 정권때 정부 주도로 일어나 ‘신토불이(身土不二)’란 말이 유행하기도 했었다.

# 지금 유럽의 각 나라들이 일제 때 우리의 ‘물산장려운동’처럼 자국산 대표농산물 소비를 늘리자는 이른바 ‘국산 보호주의’ 정책을 표방하고 나서 시끄럽다.
이같은 움직임은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자국생산 농산물의 판로가 막히자 여기저기서 자구책을 구하고 나선 것이다.

프랑스의 농업장관은 한 라디오 프로에 출연해 “우리 농가를 돕고 ‘음식 주권’을 지키기 위해 프랑스산 먹을거리를 사달라. 토마토를 산다면 프랑스산이 스페인산보다 비싸긴 하지만, 그래도 프랑스산을 선택해 주기를 ‘먹을거리 애국주의’에 간절히 호소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치즈를 더 먹자고 권유하기도 했다.
영국에서는 자국산 차(茶) 마시기를 권장하고, 벨기에에서는 정부차원의 감자튀김 먹기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또한 폴란드 정부는 수입우유 가공업체 명단을 공개해 비애국적 행위를 성토하고 망신을 주며 자국산 우유 이용을 적극 권장하고 나섰다.

그런가 하면, 카르푸를 비롯한 프랑스의 대형 마트들이 자국의 농장들이 생산·판매하는 신선식품 매입을 크게 늘리고, 이탈리아와 네덜란드, 핀란드, 라트비아 정부는 농가를 위한 긴급 재정지원에 적극 팔을 걷고 나섰다.

유럽연합(EU)의 총 농업종사자는 대략 2000만 명에 달하며, 한 해 농·축산업 생산량 규모는 4000억 유로(한화 약536조 원)에 이른다. 이 유럽연합의 거대한 ‘단일시장-싱글 마켓(single market)’이 지금 서서히 무너져 내리고 있다. 소위 ‘먹을거리 애국주의’가 유럽공동체의 둑을 허물어뜨리고 있는 것이다.

이 상황이 결코 ‘강 건너 불’일 수 없다. 판로가 막혀 창고에 쌓인 감자를 길가에 내다 늘어놓고 그냥 가져가라 하고, 생전 듣도 보지도 못한 농산물 판매-‘드라이브 스루’에 나서면서까지 살 길을 찾아 고군분투하는 우리 농가들을 살펴야 할 때다. 그게 바로 ‘먹을거리 애국주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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