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옛날의 트로트 - 노래의 고향을 찾아서

<9> 6.25 진중가요-<전선야곡>과 <아내의 노래>

▲ <전선야곡>이 테마곡으로 삽입된 영화 <고지전>의 한 장면

신세영의 <전선야곡>
비장한 애국심 자아내는 군인의 노래

동족상잔의 민족적 비극 6.25전쟁은 일제시대 때의 실향·방랑의 노래 만큼이나 절절한 고통의 노래들을 쏟아냈다. 9.28 서울 수복 뒤, 바야흐로 북진통일을 눈앞에 둔 시점이었던 1950년 10월, 작사가 유호는 전쟁발발 직후 3일만에 점령당해 적지가 된 한강을 미처 넘지 못하고 숨죽이며 숨어지내다가 직장인 경향신문사 문화부에 다시 출근해 일하고 있었다.

▲ <전선야곡>을 부른 가수 신세영의 말년 모습.

그러던 어느 날, 명동거리에서 우연히 밀짚모자에 거지행색을 한 작곡가 박시춘을 만났다.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성큼성큼 주점을 찾아 술 한잔씩을 나누며 그간의 피난살이 얘기며 전쟁상황 얘기들을 나누다가 의기투합해 필동에 있는 박시춘의 집으로 자리를 옮겨 밤새 통음을 했다.
그러던 중에 즉석에서 유호가 노랫말을 짓고, 박시춘이 기타를 쳐가며 그 노랫말에 흥얼흥얼 곡을 붙여 뚝딱 노래 한 곡을 만들었는데, 그 노래가 바로 현인이 불러 히트시킨 행진곡풍의 진중가요(陣中歌謠) <전우야 잘자라>(1950)였다.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로 시작되는 이 노래의 기막힌 흡인력은, 2절 가사의 마지막 소절인 ‘달빛어린 고개에서 마지막 나누어 먹던 / 화랑담배 연기 속에 사라진 전우야’, 3절 가사의 끝 소절 ‘흙이 묻은 철갑모를 손으로 어루만지니 / 떠오른다 네 얼굴이 꽃같이 별같이’ 하는 대목의 눈물어린 절절한 비애감에 있다.
그만큼 피난살이라는 고통스러운 삶을 꾸려갈 수밖에 없는 서민들에게 던지는 감성어린 호소력도 컸다.
이렇게 호흡을 맞춘 유호-박시춘 콤비가 그 이듬해에 만든 곡이 당시 신세영(申世影, 1926~2010)이란 신인가수가 부른 <전선야곡(戰線夜曲)>이었다.

 

▲ 신세영 앨범재킷

            <전선야곡>
1. 가랑잎이 휘날리는 전선의 달밤
   소리없이 내리는 이슬도 차가운데
   단잠을 못이루고 돌아눕는 귓가에
   장부의 길 일러주신 어머님의 목소리
   아아 아아아~ 그 목소리 그리워

2. 들려오는 총소리를 자장가 삼아
   꿈길 속에 달려간 내 고향 내 집에는
   정안수 떠놓고서 이 아들의 공 비는
   어머님의 흰 머리가 눈부시어 울었소
   아아 아아아~쓸어안고 싶었소

3. 방아쇠를 잡은 손에 쌓이는 눈물
   손등으로 씻으며 적진을 노려보니
   총소리 멎어버린 고지 위에 꽂히어
   마음대로 나부끼는 태극기는 찬란해
   아아 아아아~다시 한 번 보았소
 
                     (1952, 유호 작사/ 박시춘 작곡)

 

사내 대장부가 가야 하는 ‘장부의 길’ 일러주시며, ‘부디 살아서 돌아오라’며 정안수 떠놓고 비는 눈부신 흰머리 어머니의 목소리… 이 애끓는 비애감이라니…
난리통에 군대에 가 사지에서 싸우고 있는 아들들은 물론이고, 고향 떠난 실향민들에게도 <전선야곡> 속의 ‘어머니’는 모두 자신들이 가슴 속에서 그리는 ‘눈에 선한’ 고향의 어머니였기에 이 노래는 무한 공감의 감흥을 불러일으켰다.

이 노래를 작곡한 박시춘은 애초 노래 부를 가수로 <애수의 소야곡>을 부른 가수 남인수를 염두에 뒀던 것인데, 대구 오리엔트 레코드사 이병주 사장의 적극 추천으로 당시 대구출신 신인가수로 오리엔트 레코드사 전속가수로 있던 신세영이 부르게 된 것이었다.[결국 1961년  LP(엘피:Long Play) 음반시대에 들어서자마자 작곡가 박시춘은, 경북 영주출신으로 당시 오리엔트 레코드사 전속가수로 있던 <청포도 사랑>을 부른 도미(都美)에게 재취입시켰다.]

▲ <전선야곡>과 <아내의 노래> 작사가 유호(맨앞쪽)와 작곡가 박시춘(가운데), 손목인.

신세영은 본명이 정정수로 부산 동래구에서 출생해 대구에서 성장했다. 대구공고 졸업 후 1945년 해방 직후에 일본군에 강제징집 돼 만주·봉천지구에 투입됐다. 이때 미군 B-29의 폭격으로 부상당해 병원으로 후송돼 있다가 일본이 패망하면서 귀국했다. 그리고 1947년 대구 오리엔트 레코드사 콩쿠르에 입상, 전속가수가 되면서 본격 가수의 길로 들어섰다. 데뷔곡 <로맨스 항로>(1948)를 낸 이후 <병원선> <영 넘어 고갯길> <부산야곡> 등의 노래를 남겼고, 특히 작곡에도 남다른 소질을 보여 훗날 나훈아가 불러 히트한 <청춘을 돌려다오>를 작곡하기도 했다.

그의 예명인 ‘신세영’이란 이름은, 1930~1940년대 트로트계 톱스타들이었던 신카나리아의 ‘신(申)’, 장세정의 ‘세(世)’, 이난영의 ‘영(影)’자를 한 자씩 따서 조합한 것으로, 세간에 화제가 되기도 했다.
가뜩이나 신세영이 <전선야곡>을 취입하던 날, 공교롭게도 진방남이 <불효자는 웁니다>를 녹음할 때처럼 그의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목이 메인 목소리로 불러, 그 사연을 알고 듣는 이들의 정감을 더욱 고조시키기도 했다.
이런저런 곡절 끝에 유성기 음반이 세상에 나오게 됐는데, 앞면인 A면에는 심연옥의 <아내의 노래>, 뒷면인 B면에는 신세영의 <전선야곡> 단 두 곡이 수록됐다.
신세영은 1981년 국내에서의 활동을 접고 미국으로 이민 갔다가 2004년 영구 귀국했고, 2010년 84세로 세상을 떴다.

 

심연옥의 <아내의 노래>

군인아내의 절제된 슬픔 그려

▲ <아내의 노래>로 일약 스타가 된 심연옥.

심연옥(沈蓮玉, 1928~미국 거주)은 서울 출신으로 애초 무용가의 꿈을 키웠으나, 법도가 엄했던 집안의 반대로 그 꿈을 접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친구와 극장쇼 공연을 보고 가수의 꿈을 굳혔다.
1945년 해방 뒤 이난영 남편 김해송이 이끌던 KPK(케이 피 케이)악단에 들어가 단원으로 활동하며 악극에 출연하기도 했다. 그후 김해송이 6.25때 납북되면서 극단이 와해되자 홀로 가수로 독립했다.
이때 세상에 처음 내놓은 곡이 바로 <아내의 노래>(1952)다.

 

           <아내의 노래>
1. 님께서 가신 길은 빛나는 길이옵기에
   이 몸은 돌아서서 눈물을 감추었소
   떠나시는 님의 뜻은 등불이 되어
   바람 불고 비 오는 어두운 밤길에서
   홀로 가는 이 가슴에 즐거움이  넘칩니다

2. 님께서 가신 길은 영광의 길이옵기에
   손수건 손에 들고 마음껏 흔들었소
   가신 뒤에 제 갈곳도 님의 길이요
   눈보라가 날리는 어두운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빛처럼 님의 행복 빛나소서

 
                               (1952, 유호 작사/ 손목인 작곡)

 

가늘지만 선이 분명하고, 듣는 이의 귀가 씻기는 듯한 맑고 청아한 목소리는 순식간에 대중들을 사로잡았다. <아내의 노래>는 함께 나온 <전선야곡>과 함께 피난살이로 심신이 고되고 피폐해진 일반 대중들로부터 뜨거운 호응을 얻으면서 심연옥을 단숨에 인기스타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 <아내의 노래> 원곡가수 김백희.

이 <아내의 노래> 원곡은, 1948년 KBS의 첫 전속가수였던 김백희(金白姬)가 부른 <안해의 노래>(조명암 작사/손목인 작곡)였다. 그런데 이 노래의 작사자인 조명암이 6.25때 월북하면서 작곡가 손목인이 작사가 유호에게 개사를 부탁해 심연옥의 노래로 재탄생하게 된 사연을 갖고 있다. 노랫말의 배경도 김백희의 노래는 일제 말기 일제의 대대적인 징병이 있었던 태평양 전쟁인데 반해, 심연옥의 노래는 해방된 조국의 6.25전쟁 이다.

아무려나 전쟁터에 나아가는 남편과 생이별을 해야 하는 아내의 기막힌 심경을 커다란 감정의 흔들림이나 격함 없이(오히려 억지에 가깝게) 담담하게 그려 계속 반복되는 전쟁의 괴로움에도 불구하고 당시 일반 대중들의 인기를 크게 얻었다. 뒤이어 <한강> <그대 이름은> <바위고개> 등의 곡들을 내놓았다.

▲ 심연옥 앨범재킷

심연옥은 1957년 <나그네 설움>을 부른 당대 톱가수 백년설(白年雪, 1914 ~1980)과 결혼(백년설은 재혼임), 슬하에 1남1녀를 뒀다. 그닥 가수활동을 요란스럽게 하지 않았던 그녀는 1979년 돌연 온 가족과 함께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이민갔는데, 남편 백년설은 그 이태 뒤인 1980년에 작고했다.
지금은 해마다 ‘호국·보훈의 달’인 6월의 상징적인 대표노래의 하나로 불리는 <아내의 노래>로만 그녀가 기억될 뿐이어서 새삼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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