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뷰 - 박상융 변호사

사법고시에 합격한 총경 출신으로 댓글 조작사건인 드루킹 사건 당시, 특검보를 지낸 박상융 변호사를 만나 경찰 재임 중 현장에서 다뤘던 사건이야기를 들어봤다.
언제 닥칠지도 모르는 경찰 소환에 대응해 법적 지식을 깨우치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면서 그의 얘기를 들어본다.

 

“폭력 가해자가 청년일 경우
 형사처벌 후 취업제한 초래
 화해․조정으로 처벌 피해야”

사건 마무리할 땐 늘 고뇌와 반성...
“20년 경찰생활 중 맡았던 사건들은 법에 따라 가해자와 피해자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게 절차대로 가장 편하게 종결시켰습니다. 그러나 사건을 마무리하면서 늘 가해자와 피해자 둘 중 한 명에게는 부당한 처벌을 내린 게 아니었는지 고뇌하며 반성하기도 했죠.”
박 변호사는 요즘 가장 많이 발생하는 주폭(음주폭력)을 비롯해 몇 가지 범죄 유형과 사례를 소개하며 그에 따른 수사와 처결에 얽힌 얘기를 들려줬다.

“주폭으로 빚어진 폭행과 정당방위를 쟁점으로 한 사건이었죠. 이 사건은 평소 가정과 회사에서 좋은 평판을 듣는 기업의 중간간부 주정남(가명)의 나쁜 술버릇 때문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주정남은 회사가 구조조정 된다는 얘기를 듣고 퇴직 걱정에 매일 술을 마셨습니다. 평소 주량이 소주 3병이었던 그였는데, 사건이 발생한 날은 자신의 주량을 넘기고도 계속 술을 주문했습니다. 종업원은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취한 주정남의 술 주문을 거절했지요. 이게 화근이 돼 주정남은 종업원에게 술병을 던지며 욕을 퍼부었습니다. 그리곤 종업원의 멱살을 붙잡고 벽에 밀쳐 넘어뜨렸어요. 종업원과 주인은 더 이상 두고 볼 수가 없어 밖으로 내몰았습니다. 그리고 얼마 안 돼 주정남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게 종업원과 주인이 연행됐습니다.”

이 사건에 대해 변호사의 입장에서 본 박상융 변호사의 의견을 들어봤다.
“만취해 행패를 부린 주정남은 업무방해 현행범으로, 주인과 종업원은 정당방위로 처리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렇지만 무조건 형사입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요. 그래서 민사상 조정·화해제도를 형사사건에 도입하면 좋을 듯합니다. 가해자가 청년일 경우엔 형사처벌을 받으면 취업이 제한되는 가혹한 피해를 입을 수 있어요. 이에 따라 피해자에게 실질 보상이 이뤄지도록 민사상 손해배상청구를 쉽게 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는 게 좋습니다. 

싸움은 정당방위로 인정받질 못합니다. 이런 경우에는 20만 원 이하의 벌금과 구류에 처해지는 경미한 즉결심판에 회부가 될 수 있어요. 쌍방폭행의 경우엔 경찰서에서 합의를 주선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어느 한 쪽이 많은 액수를 요구한다면 법원에 적당한 공탁을 해야 합니다.”

 

학폭 재판은 1년이나 소요...
심리결정 빨리 내달라고 탄원 내야

박 변호사는 두 번째 얘기로, 물질만능시대 비인간적인 경쟁에서 빚어진 학교폭력사건 사례를 들려줬다.
“영환(가명)은 교수인 아버지와 의사인 어머니 사이에서 풍족한 생활을 하면서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손에 넣으려 했습니다. 강한 승부욕과 자존심이 센 영환은 학교친구를 밥과 선물로 매수해 자기편으로 만들었어요. 한편, 아버지 없이 어머니와 단 둘이 사는 진구는 항상 밝는 성격으로 친구들에게 인기가 좋았습니다. 그런 진구를 못마땅하게 여긴 영환은 평소 매수해 뒀던 친구를 앞세워 진구를 집단폭행 했습니다. 진구는 바로 영환에게 보복했어요. 영환은 경미한 상해를 입었는데, 이 사실을 알게 된 영환의 부모가 경찰에 신고해 진구가 체포됐습니다. 진구에겐 보호관찰 6개월의 처분이 내려졌습니다.”

이 사건과 관련해 박 변호사는 자신의 판단을 들려줬다.
“불구속된 청소년들을 위한 선도프로그램이 마련돼야 합니다. 학교와 보호관찰소, 종교단체와 시민단체들이 힘을 합치면 좋은 선도를 할 수 있을 겁니다. 또한 학교폭력에 연루된 가해자들이 재범을 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게 중요합니다. 특히 가정과 학교, 교우관계에 대한 정확한 조사가 선행돼야 합니다.
최근 학교폭력으로 인한 피해자가 급증하면서 재판부의 사건부담이 가중돼 재판까지 최장 1년의 기간이 소요되곤 합니다. 이에 소년범들은 오랜 고통과 악몽에 시달리게 되고, 이들에 대한 관리 부재로 재범을 범하기도 합니다. 이에 자녀가 소년부에 송치됐을 땐 부모는 재판부에 심리결정을 빨리 내달라는 탄원을 보내야 합니다.”

 

“경미한 사건도 소홀해선 안됩니다”
박 변호사는 사례를 하나 더 들었다.
술을 팔면 안 되는 노래방에서 고객의 강압적인 술 주문에 못 이겨 술을 가져다 준 것을 보고 누군가 신고해 경찰이 들이닥쳤다. 술을 제공 주인은 어떤 처벌을 받게 될까? 이에 대한 박 변호사의 생각을 들어봤다.

“노래방 주인의 사정은 이해가 되지만 처벌이 불가피합니다. 한편, 술 판매를 강요한 고객도 법에 의해 처벌해야 합니다. 이 같은 사건이라도 신고가 접수되면 처벌을 하고, 신고가 없으면 처벌을 면하게 됩니다. 경찰의 업무 과중으로 출동단속이 신속히 이뤄지지 못하는 상황이 많다보니 이러한 일이 벌어질 수 있는 겁니다. 이에 허가권을 가진 지방자치단체 주무부서에서 단속을 하는 것을 신중히 검토해야 합니다.

경찰 측에선 협박으로 인해 불법을 범한 경우인지 사실관계를 명확히 판단해 처벌 여부와 정도를 결정해야 합니다. 손님의 억지와 강요에 못 이겨 법을 어긴 주인은 필요하다면 종업원 등 목격자의 구두증언을 통해 고객에게 역고소를 할 수 있습니다.”
한편, 박 변호사는 20년 경찰 재직 중 다룬 20건의 사건 개요와 사건 대처의견, 경찰에서의 처결방향을 담은 ‘경찰을 말하다’라는 책을 펴냈다. 불시에 닥칠지 모르는 경찰서 출두에 대비해 읽어 볼만한 책이다.

박상융 변호사는 다음과 같은 얘기를 끝으로 인터뷰를 마쳤다.
“경찰생활을 하던 중 어쩌다가 구치소를 가서 수감자들을 접견해 보면 정말 억울하다고 하소연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보게 됩니다. 이런 일이 있은 후에는 경찰 입문 초기에 법대로, 규정대로 하면 편할 것이라는 안이한 생각으로 사건을 마무리한 것이 아니었는지 반성하게 되더군요. 이후 경미한 사건이라도 소홀히 다루지 않게 되더라고요. 법과 규정을 내세우기에 앞서 인간적인 고민을 많이 하게 된 거죠.

이제 법복을 입는 변호사의 자리에 다시 돌아와 사건의 진실과 피고가 주장하는 정의의 실상을 찾아 그들이 억울한 처벌을 받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고자 합니다. 겸허하게 듣고 배려와 고민을 하면서 법 이전에 사람이 먼저라는 생각으로 의뢰인들을 돌봐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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