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장르포.... 과수화상병 피해현장을 가다(충주 산척면)

충주 산척면 137사과농가 중 124농가 확진…지역경제 파탄 위기
“뒤늦은 매몰 명령에 확산” 농업인 불만…현장간이검사로 변경
▲ 과수화상병 피해가 가장 심한 충주 산척면의 박선하·이천영 부부는 13년간 자식같이 정성으로 키운 사과나무 매몰 준비작업을 하며 채 말을 잇지못했다.

과수화상병이 올해 더 극성을 부리고 있다. 치료약도 예방약도 없는 과수화상병은 지난 10일 현재 전국에서 318농가, 충주에서만 242농가가 확진돼 역대 최악이었던 지난해 피해를 이미 훌쩍 넘어서며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하고 있다. 충북도 피해 면적은 여의도 면적(2.9㎢)의 절반 크기인 172.9㏊에 달한다.

‘과수구제역’으로도 불리는 과수화상병은 치료제나 백신이 없는 게 예방과 방제의 가장 큰 어려움이다. 감염 과수를 매몰하는 게 유일한 방법으로 정부가 국가검역병으로 분류해 관리하고 있다.

충주 산척면은 피해가 충주에서도 가장 심한 지역이다. 지난해까지 산척면에는 193농가의 사과농가 있었고, 지난해 56농가가 과수화상병으로 폐원, 올해 남은 137농가 중 124농가가 확진됐다.

지난 9일 누룩재를 사이로 제천과 접해있는 충주 삼척면을 찾았을 때 곳곳에 굴삭기로 과수 매몰 작업을 하느라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광동마을과 영덕리 두 필지 6000평이 모두 과수화상병으로 확진된 사과 농사 13년째인 박선하· 이천영 부부를 만났다.

“너무 힘들다”고 말문을 연 이 씨는 햇볕에 그을린 얼굴만큼 속도 까맣게 타들어가고 있어 보였다.

“정부에서 하라는 대로 사과꽃이 피는 시기에 3회에 걸쳐 철저히 방제를 했는데도 속수무책이었다”며 긴 한숨을 쉬었다.

이 씨의 농장은 5월25일 과수화상병이 의심돼 신고했으며 지난 8일에서야 매몰을 위한 준비작업을 시작하고 있었다. 오는 17일까지 매몰을 마쳐야 하니 신고 후 20일 이상 걸렸다며 기관의 늦장 대처에 불만을 나타냈다.

과수화상병이 확산된 현재는 농가에서 신고하면 현장에서 농업기술센터직원들이 간이검사키드로 진단 후 바로 판정해 확진이면 매몰까지 할 수 있도록 확진 절차를 간소화해 대처하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5월까지만 해도 농가가 농업기술센터로 의심신고하면 농촌진흥청이 정밀검사를 하고 지자체에 알리고 다시 매몰명령이 내리기까지의 행정처리 지연 문제가 발생해 병이 확산될 여지가 있었다는 게 이 씨의 주장이다.

또 산척면은 확진 농가가 100여 가구가 훌쩍 넘다보니 굴삭기 등 장비와 인력동원이 밀려서 매몰작업이 지연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한 필지 매몰작업에만 4~5일은 족히 걸리니 충주의 굴삭기는 모두 동원된 것 같다는 게 이 씨의 설명이다.

자식같은 사과나무들이건만...
탁구공만큼 크기로 자란 파란 사과가 달린 농장엔 함께 농장을 일구던 부인 박선하씨와 아들, 인부 3명이 매몰을 위한 준비 작업을 하고 있었다.

나무를 베어내고 묻기까지의 준비작업도 일이 많다. 나무를 베어내기 위해선 과원에 설치한 시설을 철거해야 한다. 가지를 잡아주던 선들과 나무를 지탱해주던 봉을 철거해야 하고 관수 호수도 모두 철거해야 한다. 사과 색을 내기위해 설치하던 은박지를 눌러주던 벽돌을 들어내는 작업도 만만치 않다.

▲ 나무를 베어내고 묻기까지의 준비작업도 일이 많다. 나무를 베어내기 위해 과원에 설치한 시설을 철거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 모든 것보다 자식같이 정성 들여 키운 나무들을 없애야 하는 마음의 상처도 크다.

박선하씨는 “겨우내 언 손을 호호 불어가며 고생하며 전정 작업을 하고, 적화까지 마치고 이제 수확만 기다리고 있었는데...”라며 채 말을 잇지 못했다.

‘남편에게 제초제 좀 쓰지 힘들게 일한다’며 짜증도 내고, GAP인증 받느라 고생을 해 가꾼 농장이기에 과수화상병이 아니길 두 손 모아 빌고 또 빌었단다.

매몰 준비 작업을 끝낸 농장에 5m 깊이로 구덩이를 파 베어낸 나무를 넣고 석회처리해 매몰하는 것은 구제역 발생 시의 작업과 별반 다르지 않다.

과수화상병 피해가 가장 심한 충주 산척면의 박선하·이천영 부부는 13년간 자식같이 정성으로 키운 사과나무 매몰 준비작업을 하며 채 말을 잇지 못했다.

심고 수확하려면 8년 넘게 투자해야
생계 막막한 농민들… 손실보상금에

농업인들을 더 힘들게 하는 것은 보상문제와 앞으로 살아갈 걱정이다. 과수화상병은 매몰 후 4년 동안 다시 과수를 심지 못하고 4년 후 식재해도 수확을 하기까지 총 8~10년은 족히 걸린다.

또 사과 농사만 전문으로 해온 농업인이고, 땅도 사과농사에 적합한 땅이라 다른 작물을 심는 것은 엄두가 나지 않는다. 과수농사를 위해 장만한 농기계도 모두 무용지물이 된다. 공들여 어렵사리 확보한 단골고객도 잃게 되니 8~9년 후 사과를 다시 수확하더라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이천영 씨는 “당장 농기계 할부금이나 시설물 설치에 빚진 융자금도 갚아야 하는데 생계가 막막하다”며 올해 변경 된 지난해와 차이나는 손실보상 지침에 불만을 토로했다. 이 씨와 같은 입장인 산척면 과수농업인들은 대책위원회를 꾸렸다.

대책위원회 주장은 1ha, 사과 10년생 평균 1250주 재배를 기준으로 지난해 보상기준과 비교해 올해는 1억3350만 원이란 금액차이가 발생한다는 주장이다.

“일반인들은 보상금액이 적지 않은 금액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4년 후 새로 과원을 조성하는 비용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게 대책위원회의 입장이다.

손실보상금 지급의 기준은 지난해는 일반,밀식, 반밀식으로 재배유형별로 차등을 두었으나 올해는 편차를 해소하는 것으로 변경됐다.

참고로 산척농협은 사과 과수원 300평 조성단가를 묘목대 250주에 3750만원 식재비와 관수시설· 재수시설 등에 450만 원과 4년간의 과원관리비 350만~400만 원 등 총 1300만 원으로 1ha(3000평)면 1억3000만 원 가량 소요된다고 파악했다.

이천영씨의 농장엔 1700주의 사과나무가 있고 한주에 40~50kg의 사과를 수확했지만 보상액은 3억 남짓이며 부부와 함께 요리사로 일하다 합류한 아들까지 함께 일하고 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걱정이다. 하늘이 무너지고 억장이 무너진다. 무얼 믿고 농사지어야 하나?”

부부는 끝내 애써 참았던 눈물을 훔쳤다.

■ 미니인터뷰 - 박철선 한국사과연합회·한국과수농협연합회 회장

▲ 박철선 회장

"과수산업 무너지면 지역경제도 큰 타격"

“산척면의 과수산업은 산척면 농업소득의 50%이상을 차지하는 120억원 규모인데 이번 과수화상병으로 인해 지역경제 기반이 무너질 위험에 처해있어 안타까운 심정이다.”

박철선 회장은 무거운 마음을 드러내며 우리나라 과수산업의 붕괴로 이어질 위기에 있다고 말했다.

더구나 감염 경로와 원인을 명확히 밝힐 수 없고 뽀족한 치료법도 없기에 더 답답한 마음이라면서 “매몰은 임시 처방이고 영구적 치료약 개발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올해 특히 확산 속도가 빠르고 전국 확산 조짐이라 농업인들과 기관이협력해 효율적으로 적극 방제에 대처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박 회장은 “피해농가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피해보상·복구비, 작목전환비 등 현실적이고 충분한 지원책을 수립해 신속히 지원해 달라”는 요구도 잊지 않았다.

아울러 “‘한국과수농협연합회는 타 지역 확산을 막기 위한 조치로 과수전정 등의 작업을 하는 분야별 전문가를 육성해야 한다’는 건의를 정부에 제출한 바 있다”며 과수화상병 확산을 위한 대책도 내놓았다.
 

■ 과수화상병 현황과 대책은...

# 올해 과수화상병의 현황은?
---전국 318곳에서 발생

6월10일 기준으로 전국 318곳에서 과수화상병 발생했다. 농촌진흥청은 과수화상병 발생이 확산되던 지난 1일 ‘병해충 위기단계별 대응조치’에 따라 위기경보 단계를 주의에서 경계로 상향조정해 대처하고 있다. 과수화상병은 겨울 이상고온에 의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내에서는 2015년 경기도 안성에서 처음 발병했다. 올해 충북 충주와 제천·진천·음성에 이어 경기 안성과 파주, 전북 익산과 강원 평창까지 빠르게 확산돼 과수농가들이 초긴장 상태다.


# 과수화상병 왜 올해 더 극성인가?
---냉해에 수세 약해지고, 올 봄 많은 비 영향

올해 과수화상병이 더 극성인 이유에 대해 서용석 삼척농협 조합장은 “올봄에 비가 많이 오고 냉해가 있어 나무가 약해진 데다가 지난해부터 감염돼 있었지만 모르고 지난 경우가 있을 것”이라고 얘기한다.

들판에 꽃이 많이 피었을 때 과수화상병이 많이 확산된다는 농업인들의 얘기도 일리가 있다고 서 조합장은 보고 있다. 근거리는 나비나 벌에 의한 전염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원거리는 사람이나 전지 가위 등에 의한 세균감염을 원인으로 추정한다.


# 과수화상병 공적 방제 범위 조정 이유는?
농업인 의견 반영해 폐원 범위 조정

충북도농업기술원의 올해 과수화상병 방제와 손실보상 지침과 개정에 따르면 지난해까지는 발생과원을 폐원하는 것으로 했으나 올해는 선택적 방제로 변경해 주 발생지역인 충주와 제천, 음성은 발생주율 5% 미만일 경우 발생 나무만 제거하는 것으로 변경했고, 완충지역인 증평, 진천, 단양은 발생과원의 폐원, 특별관리구역인 미발생지역인 청주, 보은, 옥천, 영동, 괴산은 발생과원 폐원과 인근 100m 과원 폐원으로 범위를 조정했다.

이에 대해 정충섭 농촌진흥청 재해대응과장은 “농업인들의 의견을 수렴한 지침으로 충주 제천 지역 등은 이미 과수화상병 균이 전 지역에 퍼져있기에 취한 조치”라고 설명하며 “농업인들의 얘기를 귀담아 들은 유연한 대처로 충주 제천 지역도 과수화상병 발생이 5%가 넘지 않아도 농가에서 원하면 폐원이 가능하게 조정해 농가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게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 과수화상병도 사회재난인데....
이종배 의원 재난관리법 개정안 발의

과수화상병을 사회재난에 포함하는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재난관리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미래통합당 이종배 의원(충주)은 과수화상병 확산·방지와 피해 농가 지원을 위한 재난관리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고 9일 밝혔다. 개정안은 과수화상병과 같은 식물병해충 확산도 사회재난에 포함해 피해 지역에 예비비를 투입할 수 있는 제도적 근거를 마련할 수 있게했다.

이 의원은 “최근 충주 지역에서 과수화상병이 급속도로 확산하고 있으나 법적 근거가 없어 국가와 지자체가 대응 예산을 확보하기 어려운 실정”이며 개정안을 통해 피해 농가에 대한 생활안정지원, 간접지원, 피해 수습지원을 할 수 있도록 했다고 밝혔다.

이종배 의원은 “재난관리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과수화상병 피해농가에 대한 체계적인 지원이 이뤄질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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