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미월의 문학향기 따라 마을 따라 - 강원도 원주

▲ 소금산 출렁다리<사진/원주시청 제공>

박경리 문학공원
오롯이 혼자의 시간 속에
글 짓고, 손자와 뛰어놀던
자상한 할머니의 삶이...

뮤지엄 산
아날로그를 통해 잊고 지낸
삶의 여유와 자연과 예술 속에서
진정한 힐링의 휴식을 맛보다

 

오월은 가정의 달이다. 살아가면서 은혜를 입은 부모님이나 스승 혹은 귀인을 떠올리며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은 달이다.
강원도 원주 치악산에 위치한 상원사는 보은(報恩)의 전설을 품고 있다. 구렁이에 휘감겨 죽을 뻔한 꿩을 살려준 젊은이가 한밤중에 구렁이에게 잡혀 죽을 위기에 처하자 꿩이 머리로 범종을 울려 피 흘리고 죽으면서 젊은이를 살린 전설을 만난다.

치악산(雉岳山)은 꿩을 기리는 높은 산에서 연유한다. 최근에는 간현유원지 안에 자리한 소금산 출렁다리(스카이 워크)는 원주의 명물로 자리 잡아 사람들의 발길이 줄을 잇고 있다. 작은 금강산이라 불리는 소금산의 두 봉우리를 연결한 출렁다리다.
원주는 맑은 계곡과 푸른 산, 찬란한 문화유산과 사람이 어우러진 곳이다. 올해는 대하소설 ‘토지(土地)’의 작가 박경리 선생이 가신 지 12주기가 되는 해다. 박경리 문학공원을 찾아 치열했던 작가 혼을 만나고 오크밸리와 이어지는 하늘과 맞닿은 곳에 자리한 이색적인 예술공간 ‘뮤지엄 산(SAN)’을 만났다.

▲ 박경리 동상

작가의 품이 느껴지는
박경리 문학공원

올해는 한국문학의 어머니로 추앙받는 소설가 고 박경리 선생의 12주기가 되는 해다. 선생은 경남 하동 악양면 평사리를 주요 배경지로 삼아 대하소설 ‘토지’를 집필했다. 한국 근현대사의 전 과정에 걸쳐 여러 계층 인간의 상이한 운명과 역사의 상관성을 깊이 있게 다뤘다.
박경리(본명 박금이) 선생은 1926년 경남 통영에서 출생했다. 1945년 진주고등여학교를 졸업하고 1955년 <현대 문학>에 김동리 선생의 추천으로 단편소설 ‘계산’을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표류도’, ‘시장과 전장’, ‘파시’, ‘김약국의 딸들’ 등 문제작을 연이어 발표하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1969년부터 한국현대문학사에 한 획을 그은 대하소설 ‘토지’ 연재를 시작해 집필 26년 만인 1994년에 작품 전체를 탈고했다.
그는 2008년 5월 5일에 타계해 고향 통영에 안장됐다. 원주시 단구동에 위치한 박경리 문학공원에는 박경리 선생이 18년간 거주했던 옛집과 문학의 집이 있다. 문학의 집 2층에서는 선생의 연표와 유품을 살펴볼 수 있고 ‘토지’에 나오는 시대 상황과 인물관계 등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또한 ‘박경리와 만나다’라는 공간에서는 선생이 문학보다 고귀하게 여긴 개인의 삶을 사진과 소박한 유품으로 만날 수 있다.

평범한 결혼사진으로 시작되지만, 선생은 한국전쟁으로 남편을 잃고 어린 아들의 돌연사, 사위 김지하 시인의 오랜 수감생활까지 지켜봐야 했다. 선생은 평탄치 않은 암흑의 시대를 오로지 펜으로 이겨냈을 것이다. ‘토지’의 육필원고와 만년필, 안경, 두툼한 국어사전을 보며 작가의 투혼과 고뇌를 느껴볼 수 있다.
선생의 옛집으로 가는 길 담장 아래엔 시집 ‘우리들의 시간’ 속 글귀가 보인다. “견디기 어려울 때 시(詩)는 위안이었다.”라며 시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던 그녀의 말이 생각났다. “우리는 아픈 생각만 하지 혹이 생긴 연유를 모르고 인생을 깨닫지 못한다.”라는 말의 의미를 다시 곱씹게 된다.

박경리 선생의 옛집은 2층 양옥으로 18년 동안 이곳에 살았으며 1980년부터 14년간 ‘토지’ 4, 5부를 완성했다. 토지는 총 5부작으로 16권으로 이뤄진 대하소설이다.
문학공원 마당에는 선생의 조각상이 있다. 그 옆에는 ‘꽁지’라고 불렀다는 고양이 조각상이 웅크리고 앉아있다. 텃밭을 일궈 모든 것을 자급자족하며 살고자 했던 선생의 일상이 느껴진다. 이곳은 선생이 머물면서 글을 쓰기로 자청한 유배지였고,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 속에 글을 짓고, 손자들과 뛰어놀던 자상한 할머니의 삶이 녹아있는 곳이다. 박경리 문학공원을 둘러보고 원주시 지정면 오크밸리 2길에 있는 뮤지엄 산으로 향했다.

▲ ‘뮤지엄 산’의 테라스카페 앞 전경

하늘 맞닿은 곳에서 예술을 만나다
왜 ‘뮤지엄 山’이 아니고 ‘뮤지엄 산(SAN)’일까? 궁금했다. 산(SAN)은 Space, Art, Nature의 줄임말이다. 등산을 못 해도 좋다. 해발 275m 약 2만2천 평 규모의 산자락에 멋스럽게 자리한 미술관이다.
공간을 관람하다 문득 고정관념에 균열이 생기는 곳, 뮤지엄 산은 일본의 유명한 노출콘크리트 기법 설계자의 대가 안도 다다오의 설계로 시작해 설치미술가 제임스 터렐의 작품을 끝으로 2013년 개관한 미술관이다.

이곳은 ‘소통을 위한 단절’이라는 멋진 표어 아래 잊고 지낸 삶의 여유와 휴식을 생각해볼 수 있는 공간이다. 도시의 번잡함에서 벗어난 아름다운 산과 자연의 느긋함을 건축물로 설계했다. 순수한 사랑이라는 꽃말을 가진 주단을 펼친 듯 붉은 패랭이꽃과 하얀 자작나무길을 만들어놓은 ‘플라워 가든’, 바람 한 점에도 흔들리는 물결과 반영의 ‘워터 가든’, 종이의 가치와 드로잉의 재발견 ‘페이퍼 갤러리’와 시적 감성을 불어넣은 조각품들, 지붕이 없는 미술관 ‘스톤 가든’, 몽환적 시간으로의 여행이 시작되는 ‘제임스 터렐관’이 인상적이다.

▲ ‘뮤지엄 산’의 안도 다다오 작품

뮤지엄 산은 최대한 느린 걸음으로 걸으면서 마음을 따라 산책해야 좋다. 마음을 사로잡는 작품들과 아날로그를 통해 그동안 잊고 지낸 삶의 여유와 자연과 예술 속에서 진정한 힐링의 휴식을 맛볼 수 있다.
필자는 작년에 일본 시코쿠 가가와현에 있는 예술의 섬 ‘나오시마’에 다녀왔다. 노란색, 빨간색 호박 조각상으로 잘 알려진 섬이다. 그곳에서 본 빛의 예술가라 불리는 제임스 터렐의 작품이 인상 깊었는데, 뮤지엄 산에서 또 만나니 감회가 새로웠다. 제임스 터렐의 작품의 특징은 관람자가 직접 작품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체험 작품이 이미지로 보는 작품 사진과 실제로 가서 보는 것과는 완전히 다름 느낌이다.

뮤지엄 산의 갤러리에서 만나는 한국모더니스트 추상화 1세대인 김환기, 유영국, 전혁림, 문신, 이성자의 작품을 도심 화랑이 아닌 산속 전시실에서 감상하는 재미도 있다. 두루 돌아보다 종이박물관, 판화박물관 체험실에는 무료 엽서코너가 있다. 딸과 아들에게 엽서를 썼다. 뒤늦게 받아보겠지만 문자소통으로 익숙한 스마트폰 시대에 손글씨 엽서는 색다른 선물이 되리라.
다음에 원주를 찾을 때는 폐사지(廢寺址) 탐방을 해보고 싶다. 세월의 흔적을 더듬고 쓸쓸함과 아름다움을 함께 만나고 싶다. 사찰의 흥망성쇠를 유일하게 목격한 느티나무가 돼 빈터를 잠시 나만의 상상으로 채워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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