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수필-귀농아지매 장정해 씨의 추억은 방울방울

"자연은 간섭 없어도
저들끼리 아름다운
거리를 보여준다..."

아침부터 저녁에 비 온다는 예고로 배나무 사이 빈 밭을 매고 네댓 고랑에 고구마를 심는다. 나뭇가지 사이로 곤줄박이가 맑고 투명한 소리로 지저귀고 이웃집 텃밭에 약용식물로 심은 작약이 붉게 피어 흔들리는 바람에 넘실거리며 그 뭉근한 향이 우리 배밭으로 날아와 온 몸을 간지럽힌다.
코로나로 묶였던 길이 하나 둘씩 열리면서 5월 들어 두 달 반 만에 드디어 괴산장이 열렸다. 내일 우리 마을회관도 군에서 소독을 하러 나온다고 연락이 왔고 그러고 나면 회관 문도 다시 열릴 것이다. 집 건너편 강가 강수욕장도 폐쇄를 풀고 나니 주말에 여행자동차가 30대 정도 들어와 텐트를 쳐 장사진을 이룬다.

우리도 코로나 이후 처음으로 서울로 교회도 가고 아이들도 만나고 돌아왔다. 예전에는 주말행사였는데, 모처럼 회동이어선지 몹시 피곤하고 힘이 들었다. 코로나19 확산세가 심하던 초기에 모임과 회식을 자제하라는 사회적인 압박을 받을 땐 몹시 부당한 처사를 당한 것 같았다. 그런데 허리가 안 좋아지면서 두어 계절 집 안팎에서 쉬엄쉬엄 놀며 일하며 지내는 것이 나다닐 때보다 편안해졌다. 그동안 ‘사교의 얼굴’을 꾸며 낸 사람에겐 얼떨결에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준 셈이다.
코로나19가 생산활동에 큰 지장을  줬지만 공기의 질이 좋아지고, 물고기가 돌아오고, 수많은 거북이가 알에서 깨어나 바다로 돌아가는 영상을 보며, 생태계가 회복되고 있다는 것은 비극 속에서도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코로나19로 시작된 ‘거리두기’는 이제까지 당연한 줄 알았던 모든 거리를 다시 설정하는 계기가 됐다. 웬만하면 누구나 온 세계를 여행하며 풍경을 누리며 맛집을 즐기고 다니라던 세상의 외침이 팬데믹을 통과하는 서너 달, 처음엔 억울하고, 슬프고 놀라고 얼떨떨하고 두렵다가 요즘은 의아해졌다. 코로나19 이전에 우리가 그렇게 분주하게 다니던 곳은 정말 필요한 것이었나? 소속감과 친화력을 핑계 삼은 불필요한 경쟁을 조장하던 사회가 아니었을까?

‘트리나 폴러스’의 <꽃들에게 희망을>이라는 이야기는 작은 호랑나비 애벌레가 성장하며 나비가 되는 과정을 그린 그림동화다. 다른 애벌레를 따라 특별한 무언가를 쫓아 애벌레 기둥을 만들며 꼭대기에 오르지만 수천 개의 기둥 중에 하나일 뿐, 아무것도 없는 것을 깨닫고 나비가 된 노랑 애벌레를 따라 땅을 기는 애벌레의 삶을 버리고 고치가 되고 애벌레의 참 모습인 호랑나비가 되어 하늘을 날며 꽃들에게 희망을 준다는 이야기다. 

우리는 코로나 이전 그대로 돌아가는 것이 맞는 일일까? 또 그대로 돌아갈 수나 있을까? 어떻게 새롭게 변화할 수 있을까? 우화 속에서 애벌레가 물었다. 어떻게 나비가 될 수 있는지를... 선배고치가 말했다. “간절히 원해야만 해. 하나의 애벌레로 사는 것을 기꺼이 포기할 만큼.” “겉모습은 죽은 듯 보여도 참모습은 여전히 살아있단다.”   
창밖으로 어디서 날아 왔는지 흰나비 한 쌍이 춤추듯 날아간다. 자연 속에는 아무런 간섭도 제약도 없는데도 저들끼리 얼마나 아름다운 거리를 보여주는지. 정말 저녁에는 일기예보대로 비가 오려는지 하늘은 점점 흐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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