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희 칼럼 - 누리백경(百景)(138)

# 온 세상이 온통 싱싱한 초록의 순수로 물드는 오월. 그리고 마음만으로도 애틋해지는 ‘가정의 달’ 이건만, 코로나19 판데믹이라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살아보지 않은 낯선 세상의 낯선 환경 속에서 ‘목숨의 안위’를 위해서 집안에 발이, 마음이 꽁꽁 묶여 지낸지 여러 달 째다.

‘언택트(Untact, 비대면)’며 ‘사회적 거리두기’, ‘생활 속 거리두기’, ‘드라이브 스루’ 등의 생경한 생활지침 용어들이 채 몸에 배기도 전인데, 그런 것과는 하등 아랑곳 없이 극도의 개인적 이기심과 욕심 만으로 두 눈 질끈 감고 자행하는 존속살해 사건들이 줄을 잇고 있어 ‘가정의 달’이 무색한 지경이다.

# 지난 1월, 서울 동작구에서 돈 문제로 다투다 자신의 70대 어머니와 10대 초등학생 아들을 흉기로 살해한 뒤 비닐로 싸서 방안 장롱에 은폐시켰던 40대 패륜아가 범행 석달 만에 경찰에 검거됐다.
그런가 하면, 서울 강서구의 한 아파트에 사는 60대 엄마가 30대 친딸을 흉기로 찔러 죽이고  자수했다. “정신병적 질환이 있는 딸이 너무 힘들게 해 내 손으로 죽였다”는 게 살해이유의 전부다. ‘모정(母情)’도 이젠 구시대의 유물이 되어가는가…

또한 인천에서는 부모로부터 버림받고 미혼모 시설을 오가던 23세의 지적장애를 가진 미혼모가 만3살 된 자신의 어린아이를 ‘밥을 잘 안먹는다’는 이유로 팔이 아프도록 두들겨 패 갈비뼈 3대가 부러지고 온몸에 피멍이 든 채로 숨지게 해 경찰에 검거 되기도 했다.

# ‘가족’이란 뜻의 ‘패밀리(Family)’란 영어단어는, ‘아버지, 어머니,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Father and Mother, I love you)’의 각 단어 첫 스펠링을 모아 만든 단어라는 말도 있다. 최근 기독교계통의 한 단체에서 발행하는 정기간행물인 《아버지와 가정》 최근호에서 “가족간에 지켜야 할 덕목은 무엇인가?”라는 설문조사를 했는데, 그 결과를 우선순위대로 보면, 1-사랑 2-믿음 3-대화 4-칭찬 5-감사 6-진실 7-존중 8-정직 9-화합 10-예절로 집계됐다.

이 모든걸 종합해 보면, 부부간 이건, 부모자식간 이건 상대방에 대한 무조건적인 배려심이 있을 때만이 가능한 덕목들 이라는 걸 미뤄 짐작할 수 있다.
우리의 가정법률에는 접근금지명령제도라는 게 있다. 가정폭력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접근하는 것을 금지토록 하는 특례법이다. 일종의 법률적 거리두기인 셈이다.
구체적으로 ▲피해자가 거주하는 곳에서의 퇴거 ▲100 미터 이내의 접근 금지 ▲휴대폰이나 이메일 등을 이용한 접근 금지 ▲친권행사 제한 등이고,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2년 이하의  징역, 2000만원 이하의 벌금 또는 구류에 처해지도록 규정돼 있다.

꼭 코로나가 아니어도, 가정이 무너지고 인륜이니 천륜이니 하는 도덕적 개념이 땅에 떨어진지 이미 오래이고 보면, 이제는 ‘끈끈한 정’ 하나로 살아온 가족 간에도 어떤 형태로든지 거리두기를 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드는, 입맛 씁쓸한 요즘 세태다. 하긴 촌수로 치자면야 부부간은 무촌이지만, 부모·자식간은 1촌, 형제간은 2촌간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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