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창덕 경영지도사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식량위기에 대한 경각심을 갖는 사람이 많다.
식량위기를  ‘보이지 않는 쓰나미’라 한다.
역설적이게도 농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농업의 역습이자 농업 가치 확산의 기회다."

▲ 임창덕 경영지도사

인류의 역사는 바이러스와의 역사라 할 수 있다. 농업에도 변곡점으로 작용해 왔다. 14세기 유럽으로 확산됐던 흑사병도 당시 지역별로 감염률이 달랐던 모양이다. 이탈리아의 피렌체는 인구의 80% 정도 사망했지만, 밀라노는 15% 사망률을 보였는데 환자를 철저히 격리한 덕분이었다. 폴란드는 농업국이라 교역이 상대적으로 적었고 국경을 폐쇄해 피해를 상당히 줄일 수 있었다.

흑사병이 지나간 후 정치·경제·사회적으로 많은 변화가 있었다. 사망자가 많아 일손이 부족해 농민에 해당하는 농노의 임금이 일 년에 2~3번 상승하기도 했다. 소작농을 구하지 못한 영세 영주들이 파산하는가 하면, 영주와 농노가 기존 예속 관계가 아니라 협상하는 관계로 발전하기도 했다.
부족한 인력을 대체할 농기계의 개발도 가속화됐다. 지난 4월8일 워싱턴포스트지는 노동자들이 생전 처음으로 주도권을 갖기 시작한 것은 흑사병 이후라고 보도하며, 임금인상과 근로시간 단축을 요구하는 파업이 있었다고 당시를 재조명 했다.

한편 최근 유엔 산하 식량농업기구(FAO)는 코로나 사태가 장기적으로 지속되면 글로벌 식량 대란이 촉발될 수 있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현재 각국은 인적·물적 이동을 차단해 농산물의 수출입이 어려워진 상황이다. 인력부족으로 농산물 수확 등 생산에도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인도의 펀자브 지방의 경우 농사 인력 부족으로 밀 수확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우리도 본격적인 영농철을 맞아 외국인근로자의 입국이 막혀 인력 부족이 예상되는 등 농산물 가격 안정의 불안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쌀 등 농산물은 부족하면 수입하면 된다는 시각을 가진 사람이 많다. 수출하고 벌어들인 달러로 수입하면 문제없다는 논리다. 그러나 농산물을 수입에 의존하다 보면 국내 농업 생산 기반이 붕괴됨은 물론 생명산업인 농업의 대외 의존도만 키운다. 인근 일본은 코로나 영향으로 중국산 수입 채소 확보가 어려워 농산물 수급에 큰 차질을 빚고 있다. 우리나라의 곡물자급률은 2018년 기준 21.7%다. 78.3%는 해외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는 뜻이다.

농업을 경시해 어려움을 겪은 나라가 있다. 필리핀은 이모작 이상이 가능한 나라로 80년대 초까지만 해도 쌀 수출국이었다. 그러나 농업의 대외 의존도를 높이고 농업에 대한 투자를 소홀히 해 1993년부터 쌀 수입국이 됐다. 2008년 식량위기 당시 필리핀 정부는 학교 체육관을 임시 쌀 창고로 전환토록 명령하고 쌀 수출국에 쌀을 더 보내 줄 것을 호소하기도 했다.

영국의 경우 자국의 주식인 밀의 가격을 지지하는 법률인 곡물법이 자유무역론자들의 주장에 따라 1846년 폐지됐다. 자유무역으로 인해 낮은 가격으로 곡물 조달이 가능해졌지만 세계대전 상황에서 해상봉쇄로 인해 해외로부터의 식량 조달이 어려워져 심각한 식량난을 겪은 바 있다. 이후 영국은 농업에 대한 투자 확대로 지금은 곡물 자급률이 90%에 이르는 나라로 탈바꿈했기에 우리에게 시사해 주는 바는 크다.

현재 우리나라 농업인 인구는 국내 총 인구의 4% 수준이다. 농업이 국민총생산에 차지하는 비율은 2% 남짓이며 농업 예산은 전체 국가 예산의 3%가 약간 넘는 수준이다. 농업에 대한 투자가 적고 농업에 대한 정치적인 관심이 많지 않은 이유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해외 사재기 등 식량위기에 대한 경각심을 갖는 사람이 많다. 식량위기를 보이지 않는 쓰나미라 한다. 역설적이게도 농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농업의 역습이자 농업가치 확산의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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