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농촌愛살다 - 전북 익산‘고은영농조합’서상원 대표

▲ 고은영농조합 서상원 대표(사진 오른쪽)와 아들 서민수씨.

농고 졸업 후 홀어머니 모시고 고향서 ‘대농 꿈’ 이뤄

전북 익산시 황등면은 중생대 쥐라기의 대보화강암(‘황등화강암’으로도 불림) 지대 구릉이 자리해 유독 돌이 많은 고장이다. 현재도 채석장 6곳과 석재가공 공장 75곳 등이 성업 중이다. 또한 화강암 지대 주변으로는 신성들 다망들 간지평들 등 면적의 78%가 평야 지대다. 황토 들녘이 많아 참깨, 생강, 고구마 등이 유명하다.

임대농 시작해 논 2만4000평
한우 70두까지 키워내

고은영농조합 서상원 대표(52·황등면 화강암로 55)는 황등을 대표하는 농부다. 고은영농조합은 법인 회원 6명과 일반회원 30명 등으로, 회원들이 생산하는 다양한 농산물의 가공 유통 판매를 종합적으로 처리하는 등 지역사회의 역할이 크다. 서 대표 개인적으로도 벼농사 79,200여㎡(24,000여 평)에 정미소 등 농작물 가공공장 그리고 한우 70여 두를 사육하는 대농이다.
“고은영농조합을 지난 2012년 8월에 법인 설립했으니까 벌써 8년이 넘었네요. 그동안 많은 우여곡절도 있었지만 회원들의 노력으로 지금은 제법 규모화를 이루는 등 제대로 뿌리를 내렸다고 생각이 됩니다.”

서 대표의 오늘날이 있기까지는 결코 순탄치 않았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와 함께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이리농업고등학교를 다닐 때부터 막연히 농사를 지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당시에 황등은 돌 공장이 많았어요. 돌 공장은 다른 분야 못지않게 제법 임금도 쳐줬습니다. 그래서 고등학교 졸업하고 ‘뭘 하든 먹고야 살겠지’ 하는 마음으로 동네 돌 공장에 취업했지요. 한 8~9년 다닌 것 같습니다. 돌 공장은 주로 밤에 일을 했고, 낮에는 농사일을 도우면서 용돈을 벌었지요. 그러면서 처음에 논 600여 평(1,980㎡)을 빌려서 농사를 시작했는데 점차 욕심이 생기면서 임대 농지가 서른 필지까지 늘어나더라고요.”

서 대표가 막 농사에 재미를 붙이던 1990년대는 한국농어촌진흥공사에서 경작자에 대한 농지매매를 본격화하기 시작할 때였다. 서 대표는 그때 조금씩 농지매입을 했던 것이 지금의 대농의 꿈을 안겨준 계기가 됐단다.
“가난한 농촌 알바생이 농지를 구입하면서 본격적인 농사 경영이라는 것을 하게 됐지요. 또 작은아버지의 정미소가 있는데 젊은 제가 정미소까지 맡아서 운영하다보니까 농산물 가공과 유통 판매하는데 까지 생각이 다다를 수 있었다고 봅니다.”

서 대표는 영농규모가 커지면서 아들 서민수씨(26)를 설득해 농사에 끌어들였다. 이리공업고등학교에 다니던 민수 씨는 아버지의 권유로 한국농수산대학 대가축(한우)과를 졸업했다.
서민수씨는 “어렸을 때는 음악이 그렇게 좋더라고요. 그래서 예술학과 같은 곳을 생각했는데, 아버지가 농업의 무한한 발전 가능성 등을 얘기하면서, 함께 농사짓기를 원했어요. 그래서 결국은 농수산대학을 가게 됐지요. 대학에 다니면서부터 후계농업인 절차를 밟았습니다. 그리고 2017년 졸업과 함께 아버지의 일부 사업을 승계했고, 지금은 7년 의무사업 기간입니다. 무엇보다 통장에 한우를 판 돈이나, 쌀 판매대금과 직불금 등의 수익금이 들어올 때 ‘나도 이제는 분명한 농부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 아들 서민수씨가 정미소에서 막 생산한 쌀을 들어보이고 있다.

음악 좋아하는 아들 설득해
후계농업인 육성 ‘자부심’

서 대표의 자부심 중의 하나가 바로 아들을 후계농으로 육성한 일이다. 아들과 함께 하니 농사 하나하나가 더 즐겁단다. 영농조합 법인을 더 활성화하고, 농업의 규모화와 현대화는 물론이고 축산업과 체험사업을 더 확대하겠다는 것이 서 대표의 앞으로 계획이다.
“농사도 결코 쉬운 것이 아니에요. 많이 연구해야 하고 모험도 따릅니다. 다른 직업 못지않게 융복합적인 생각과 기술이 절대적인 부분입니다. 아들과 함께 농사를 짓는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경쟁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농사는 일정한 출퇴근으로 되는 것이 아니에요. 그때그때 함께하는 순발력과 동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아직까지도 농사는 가족농이 그 근간을 이룰 때 원활하게 앞으로 나갈 수 있어요.”

“그렇다고 농사가 농사에만 국한한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농사가 갖는 다양성이 큽니다. 취미생활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의 경험도 농사에 많은 도움이 된다고 봅니다. 물론 이런 경험들도 농사꾼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서 대표는 젊어 농사에 자신감이 붙어갈 무렵인 2004년 쯤 대학에도 진학해 원예를 전공했다. 2007년 졸업과 동시에 6차 산업 연계의 창업농과 4차 산업 미래농업의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영농조합법인의 설립과 다양한 사회참여 등도 본격화했다는 설명이다.

“농사는 다양성입니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만 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을 판단하고 내일을 생각할 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고 일어나면 변하는 세상에서 농사도 예외일 수 없지요. 농사꾼은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고 실행하고 책임져야 하는 최고경영자의 마인드가 요구되는 직업입니다.”

저작권자 © 농촌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