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희 칼럼 - 누리백경(百景)(132)

창문을 뒤흔드는 요란한 바람소리가 아침잠을 깨운다. 눈을 뜨자마자 다시 돌아온 ‘집콕’의 우울한 일상에는 온통 코로나 바이러스 뿐. 불현듯, 무심히 창밖에 흘러가는 사계절을 잊고 산 일상의 깨알같은 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머릿속에서 흘러간다.

‘춘면부각효/처처문제조//야래풍우성/화락지다소’(春眠不覺曉/處處聞啼鳥//夜來風雨聲/花落知多少)
-봄잠이 하도 달아서 아침이 오는 것을 느끼지 못했는데/곳곳에서 새 우는 소리를 듣는다//지나간 밤 비바람 소리에 /꽃이 얼마나 떨어졌으리오.
-맹호연(孟浩然, 689~740 ; 중국 당나라 시인)의 시 <춘효(春曉 :봄날 이른 아침)

나라 안팎이 온통 코로나 바이러스에 갇혀버린 세상사는 아랑곳 없이 창밖엔 산수유·유채꽃·매화·벚꽃이며 해사한 목련이 다투어 피어난다. 예전엔 미처 몰랐던 일들처럼. 문득 꿈 깨듯 다시 돌아온 일상…
‘물 먹는 소 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이 하루도 /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
-김종삼(金宗三, 1921~1984), 시<묵화(墨畵)>(1969)

우리의 삶이 대체로 그렇게 발잔등이 부은 것처럼 고달프고, 때론 적막하고 쓸쓸한 것임을 예전엔 왜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일까. 그리하여 덥석 두손을 맞잡고 서로의 볼을 비비대고 처진 어깨를 끌어안으며 따뜻한 위안을 찾을 줄을 왜 몰랐던 것일까. 고단한 하루 일과를 마치고 물 먹는 소의 목덜미를 쓰다듬으며 위로하는 시 안의 할머니처럼.

‘가난이야 한낱 남루(襤褸, 누더기)에 지나지 않는다./ 저 눈부신 햇빛 속에 갈매빛(짙은 초록빛)의 등성이를 드러내고 서 있는/ 여름 산(山)과 같은/ 우리들의 타고 난 살결, 타고 난 마음씨까지야/ 다 가질 수 있으랴.// 청산(靑山)이 그 무릎 아래 지란(芝蘭, 지초와 난초)을 기르듯 / 우리는 우리 새끼들을 기를 수밖에 없다.// 목숨이 가다 가다 농울쳐 휘어드는/ 오후의 때가 오거든,/ 내외(內外)들이여, 그대들도/ 더러는 앉고 / 더러는 차라리 그 곁에 누워라.// 지어미는 지애비를 물끄러미 우러러 보고,/ 지애비는 지어미의 이마라도 짚어라.// 어느 가시덤불 쑥구렁에 놓일지라도/ 우리는 늘 옥돌같이 호젓이 묻혔다고 생각할 일이요,/ 청태(靑苔, 푸른 이끼)라도 자욱이 끼일 일인 것이다.’
-미당(未堂) 서정주(徐廷柱, 1915~ 2000), 시<무등(無等)을 보며>(1954.8 <현대공론>)

분명코 앞이 안보이는, 끝이 없을 것 같은 암울한 일상, 심장을 옥죄는 공포와 불안의 연속이지만, 머잖아 그것들이 안개처럼 하염없이 걷힐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의 꿈같이 소중한 일상을 되찾아 다시금 건강하게 가꾸어 나갈 수 있게 될 것이다. 지금의 시련 속에서 결코 노여워 하거나 슬퍼할 일이 아니다. 우리들에게는 이 환난을 충분히 극복해 나갈 수 있는 냉철한 이성이 있고, 불같이 뜨거운 가슴이 있으므로. 내일은 또다시 내일의 태양이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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