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탐방···친환경 급식계약재배 농가의 눈물

▲ 이천 백사면에서 경기친환경급식에 납품하는 대파를 재배하는 허기범 씨의 시설하우스엔 급식에 납품 못해 수확시기를 놓쳐 추대가 올라오고 꽃까지 핀 대파가 가득 했다.
납품시기 놓쳐 방치된 농산물, 다음 농사 작기에도 지장

#40년 농사에 이렇게 힘들 긴 처음

“1원 한 장 못 만져봤어요. 나뿐 아니라 친환경 급식계약재배 농가들이 다 망하게 생겼어요. 조금 전에 개학이 더 연기될 수 있다고 연락이 왔는데 막막하기만 해요.”경기도 이천 백사면에서 40년간 대파 ‧ 양파 ‧ 마늘 ‧ 수박을 농사짓고, 경기친환경급식에 11년째 참여하고 있는 허기범 씨는 말을 하면서 목이 잠겼다.

학교 개학에 맞춰 친환경급식에 납품할 대파를 계약 재배하는 허 씨는 코로나19로 학교 개학이 23일까지 연기되고, 급식 납품이 중단돼 대파를 갈아엎기 직전이다. 한 동 660㎡ 규모의 시설하우스 3동에서 키운 대파들이 3월 말까지 납품 계약된 대파 물량이다. 이미 3월 1~2주의 납품시기를 놓친 하우스 안의 대파들은 추대가 서고 대부분 꽃까지 피어있었다.

대파는 꽃이 피면 질겨져 상품가치가 떨어지는데다 급식용은 일반소비자들이 선호하는 대파보다 굵게 키운 것이라 일반 시장에서도 선호되지 않아, 일부만 로컬푸드직매장에 내보내고 대량 거래는 생각지도 못하고 있다.

“친환경 대파 농사는 일반 대파 농사보다 몇 갑절 힘들어요. 친환경 자재비랑 인건비랑 경영비도 많이 들고....”허 씨의 하우스엔 대파 수확 후 수박 모종이 들어가는데, 납품하지 못한 대파들이 그대로 있어 다음 농사 작기에도 지장을 주게 됐다.

“수박 심으려고 모종을 맞춰놓았어요. 대파를 갈아엎어도 어디 갖다 버릴 때도 없고, 로터리를 치려면 멀칭이랑 다 걷어 내야 하는데 어디부터 손대야 할지...”허 씨는 수박을 키우려면 점정호수를 깔아야 하는데 시간도 부족하다고 하소연했다. 대파농사 대금으로 직원들 월급도 나가고 수박 모종 값도 치러야 하는데 그것도 걱정이다.

“일이 없어도 월급은 나가죠. 한 사람당 식비랑 해서 250만원 씩은 꼬박꼬박 들어요.”현재 허 씨의 농장엔 네팔에서 온 외국인근로자 3명이 일하고 있고, 친환경 농사라 풀 뽑기랑 일이 많을 때는 20명까지 인력을 써야 하는데 임시근로자는 모두 현찰을 줘야해 걱정이 많다. 허기범 씨가 3월23일까지 출하를 못하는 대파 양은 30톤 규모로 6000~7000만원 규모의 피해를 예상했다.

친환경급식···재배 의무만 있고, 소비 책임 없어

공동구매, 친환경꾸러미 등 공공기관이 앞장서 착한 소비운동

코로나19로 전국 초·중·고등학교의 개학이 연기되고 급식이 중단됨에 따라 허기범 씨와 같은 친환경급식 계약재배농가의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경기도 친환경급식 참여 농가는 1200 농가로 3월에 농산물을 납품하는 농가는 203농가 49개 품목 360톤 물량에 이른다. 학교급식은 매년 전년 공급량을 기준으로 물량을 배분하며 공모를 통해 선정한다.

경기친환경농업인연합회(친농연)에 따르면 경기도의 경우 오는 23일까지 개학이 연기되면 급식농가 피해는 18억6000만원에 이르고 개학이 더 미뤄질 경우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타 지자체의 경우도 모두 비슷비슷한 상황이다.

현재 정부와 지자체는 기관과 단체의 협조를 구해 계약재배 친환경농산물에 대한 착한소비운동이 벌어지며 당장의 친환경급식 재배농가의 피해 막기에 분주하다. 경기친환경급식 납품 딸기의 경우 3월 첫 주에 경기도 농정해양국과 경기농식품유통진흥원이 나서 공공기관과 산하기관을 대상으로 공동구매 직거래 행사를 펼치며 800kg 분량의 딸기 소비를 주도했다. 하지만 전체 경기친환경급식 납품 딸기물량 30톤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며 가격도 1kg에 1만원으로 친환경급식 납품단가 1만3000원에 미치지 못한 가격이어서 친환경 급식납품 딸기 농가 피해는 여전하다. 그나마 딸기는 포장과 배송이 쉽고 일반 소비자의 선호도가 좋은 품목이지만 엽채류의 경우 상황이 더 심각하다.

▲ 지난 11일 착한소비 꾸러미에 참여하기 위해 대파를 손질하고 있는 허기범 씨 농장 풍경. 이날 처음 친환경급식 납품 피해 농가를 돕기 위해 꾸러미사업이 시작됐다.

정부와 지자체는 앞으로도 친환경급식 납품 농산물을 제철꾸러미로 만들어 공공기관 위주로 착한소비운동을 펼칠 계획이어서 일부 피해 보전은 예상되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단 게 농민들의 입장이며 앞으로 이 같은 일에 대비해 근본 대책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친환경 급식재배 계약이 생산에 대한 책임만 있고, 소비에 대한 책임은 없는 불완전한 시스템”이란 게 친농연의 입장이다. 급식물량 미 발주, 학교비정규노동자 파업, 재난, 재해, 질병 등의 상황 발생 시 계약재배 생산된 친환경농산물이 소비되지 못하는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중장기적 방안을 친농연은 요구하고 있다.

경기친농연 홍안나 실장은 “친환경급식의 장점은 계약재배로 농민은 판로 걱정 없이 농사만 잘 지으면 된다는 것이 핵심인데 앞으로도 이런 상황을 대비해 (가칭)계약재배안정화기금 등을 조성해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으면 한다”고 중장기 방안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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