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별 아닌 평균소득으로 지급해 시설채소농가 손해 막심

▲ 이번 왕숙신도시 조성으로 재산권에 침해를 입었다는 주민들의 반발이 극심하다.

엉터리 영농손실보상금
“40년 가까이 농사만 지어 왔다. 근데 아파트 짓는다고 쫓겨나는 것도 억울한데 영농손실보상금으로 겨우 평당 1만1000원을 책정했다. 지금 농사로 버는 돈의 20%밖에 안 되니 이건 착취나 다름없다.”

경기도 남양주 진건읍에서 시설채소 농사를 짓고 있는 홍장용씨의 말이다. 평당으로 따지면 5만 원 가량의 수익을 올리고 있는 홍 씨지만 토지수용으로 인한 영농손실보상금이 1만1000원으로 책정돼 터무니없다는 것이다. 약 6만6000호의 아파트가 들어서 제3기 신도시 중 가장 큰 규모인 왕숙 공공주택지구는 진건·진접읍과 일패·이패동 일대를 대상으로 한다. 하지만 홍 씨처럼 농지를 수용당하게 됐지만 현실과 동떨어진 영농손실보상금으로 두 번 운다는 농민이 속출하고 있다.

영농손실보상금은 공익사업 등으로 영농활동을 계속할 수 없을 때, 다른 농지를 구입하거나 전업을 준비함에 따라 소득상당액을 보전하는 제도다. 지급기준은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에 따라 통계청의 농가경제조사를 근거로 한다. 도(道)별 연간 농가평균 단위경작면적당 농작물 총수입의 직전 3년간 평균 2년분을 곱해 보상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문제는 품목별이 아닌 해당 도의 농작물 평균소득을 기준으로 보상한다는 점이다.

홍장용씨는 “이번에 수용되는 토지 대부분은 1972년 그린벨트로 지정된 이후 농사 이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서울과 가까운 이점과 고소득작물을 장려하는 정부 정책을 믿고 시설채소농사를 1988년부터 지었다. 하우스를 1동씩 늘려가는 재미에 살았는데 이번에 날벼락을 맞았다”며 같은 피해를 입게 된 농업인들과 함께 주민대책위원회를 꾸렸고, 시설영농분과위원장도 맡았다. 정부가 장려한다고 해 따른 결과가 이건가 하는 억울함에 가만있을 순 없어서다.

시설채소농가들이 요구하는 건 우선 영농손실보상금을 말 그대로 손실난 만큼 보상을 해달라는 것이다. 현재 기준으로 삼고 있는 통계청의 농가경제조사는 품목별이 아닌 농작물 평균소득을 반영하고 있어 기본적인 상식에서도 벗어나기 때문이다. 통계청의 자료가 아니더라도 농촌진흥청이 품목별 소득을 조사한 자료가 있어 이걸 기준으로 삼는 게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의견도 내놨다. 시행규칙만 바꾸면 되는 일이라 국토교통부 등 정부에서 충분히 해결가능한 부분이라 결코 어려운 일도 아니다.

또한 국토교통부가 대책이라고 내놓은 실제 소득인정 기준 역시 현실을 모르는 처사라고 분통을 터트렸다. 홍장용씨는 “실적을 인정받으려면 도매시장, 대형유통업체 등의 출하자료가 있어야 하는데 상당수가 직거래나 온라인 등을 통해 판매하고 있어 해당 농가들은 전혀 인정받을 수 없는 모순이 생긴다”고 주장했다.

▲ 남양주의 왕숙신도시 조성으로 시설채소농지가 절반 가까이 수용당하게 되면서 농민들은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농업 포기하게 만드는 정부…경지면적 매년 감소

대토보상 한다지만…
이번 왕숙지구에 편입된 시설채소농지 면적은 270ha로 이는 남양주 전체의 절반에 해당하는 규모다. 시설채소농업이 발달한 남양주에서 이번 토지수용으로 인해 절반이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것이다. 또 다른 시설채소농가는 “현 시세로 보상한다지만 그 돈으로 남양주에서 그만한 농지를 구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라며 “하루 아침에 정들었던 고향을 떠나지 않으려면 농사를 포기해야 하고, 농사를 지으려면 적어도 30~40km 떨어진 연천이나 가평, 아니면 강원도로 옮겨야 하니 답답한 노릇”이라고 속사정을 밝혔다.

이미 토지수용으로 평당 120만 원 정도에 보상을 마친 곳도 있다. 하지만 신도시가 조성된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풍선효과로 이미 주변은 평당 최고 250만 원까지 올라있는 상황이다.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이에 올 초 남양주시는 현 시세를 반영한 적정 보상 이외에도 대토 보상 등 보상체계를 다양화하고, 이주민이 원하는 곳에 택지를 공급한다는 계획을 내놨다. 하지만 이 대책도 농민 입장에서 대책이 될 수 없다는 주장도 나왔다.

또 다른 농민은 “우리 입장은 수십 년간 지어 온 농사를 계속 짓고 싶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토보상은 농사를 짓지 않는 사람이나 혜택을 볼 일이지, 우리들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라며 “중앙정부는 그렇다 쳐도 지자체는 우리 입장을 들어보고 대책다운 대책을 내놔야 하는 거 아니냐”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대토보상 기본 취지는 원주민의 정착을 돕고, 막대한 돈이 부동산 시장으로 들어가 집값이 폭등하는 걸 막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대토보상은 농민 입장에서 그림의 떡일 뿐이다.

사실 영농손실보상금과 대토보상 등의 문제는 오래전부터 문제가 있다고 농민들의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국토교통부 등은 과다보상, 부정수급 등의 문제를 들어 요지부동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 결국 농업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원인제공은 정부가 하고 있는 셈이다. 지난해 경지면적은 158만1000ha였다. 2010년 171만5000ha였던 것과 비교하면 13만4000ha, 약 7.8%의 경지가 사라졌고, 경지면적 감소의 가장 큰 요인은 건물건축이었다. 결국 현실화된 보상책이 마련되지 않으면 농지가 사라진 땅엔 아파트만 들어서고 상황이 계속 반복될 뿐이다. 국회를 비롯해 관련 법안논의를 더는 미룰 수 없다는 게 농업인들의 한결같은 목소리다.

■나도 한 마디-남양주왕숙 공공주택지구 이종익 주민대책위원장

“서민 위한다면서 농민 내쫓는 현실 개탄”

남들은 토지 보상받고 대박 난 줄 안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강제수용되는데도 최고 40%가 넘는 양도소득세 때문이다. 주민들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강제수용 토지의 양도소득세 100% 감면을 내용으로 하는 법안이 국회 상임위에서조차 통과되지 못했다. 총선이 코 앞이라 법안이 언제 통과될지 깜깜하기만 하다.

나도 1984년부터 시설채소농사를 지어 왔고, 아들이 뒤를 잇고 있는데 이번 토지수용으로 남양주를 떠나거나 농사를 포기하거나 둘 중에 하나만 선택해야 할 처지다. 이번 신도시가 서민을 위한 아파트를 짓는다는데 서민 중의 서민인 농민을 내쫓는 현실이 개탄스럽다. 더군다나 그린벨트로 묶여 50년 가까이 재산권다운 재산권을 누리지 못한 우리들이다. 현실적인 영농손실보상금과 세금 문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다. 우리 입장에선 물러날 수 없는 생존권이 걸린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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