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명견 교수의 재미있고 유익한 옷 이야기(77)

▲ 사진/오스카 홈페이지 캡처

"‘기생충’에 대한 긍지와
아카데미 향한 의지를
옷에 새겨 표현하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제92회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등 4개 부문의 상을 거머쥔 시상식장에서 이미경 CJ 부회장이 입고 나온 옷이 화제가 되고 있다.
‘기생충’의 총괄 프로듀서 자격으로 시상식 무대에 오른 그녀는 화려한 최신 명품의상 대신 오래전부터 갖고 있던 꼼데가르송 빈티지 재킷을 입고 나왔다. 이 옷에는 원래 다양한 종류의 밴드가 부착돼 있었는데, 이 밴드마다에 ‘기생충은 쿨하다!(PARASITE is cool)’ ‘나 정말 진지해요(I’m Deadly Serious)’ 등 영화와 관련된 문구와 영화 속 명대사,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새겨져 있어 눈길을 끌었다. ‘기생충’에 대한 긍지와 아카데미상을 향한 강한 의지가 옷에 표현돼 있었던 것이다.

원래 아카데미 시상식은 수상 못지않게 세계 시청자들의 이목을 끄는 게 바로 의상이다. 스타들의 차림새가 패션에 끼치는 영향은 대단하다. 때문에 올해도 스타들은 어김없이 독특한 의상으로 시선을 끌었다. 흑인 배우 겸 만능엔터테이너 빌리 포터는 여성의 전용 옷인 드레스를 입고 나와 터지는 플래시의 세례를 한 몸에 받기도 했다. 옷의 ‘표현의 기능’을 십분 살리는 시도였다. 이날 시상식에 참석한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 작품에 대한 자부심과 아카데미상에 대한 열망을 직접 글로, 그것도 옷에다 새겨 표현한 사람은 오직 이미경 부회장 한 사람이었다.

인간은 옷을 입기 전부터 몸에 무엇인가를 나타내려고 시도해왔다. 바디페인팅이나, 흉터 같은 것으로 용맹스러움이나 아름다움 등을 표현했다. 옷의 스타일, 무늬, 색깔, 글자 등이 점차 표현의 수단이 됐고, 구약시대에도 제사장의 옷에 글자를 새긴 보석을 달았다는 기록이 있다. 프랑스 혁명 직후 디자이너 르로이(Louis Hippolyte Leroy 1763~1829)가 드레스에 자유, 평등, 우애라는 글자를 새기고, 벨트에 ‘자유 아니면 죽음’이라는 문장을 넣어 세상에 내놓았다. 이 드레스는 당시 프랑스 국민이 염원했던 소망을 표현했다하여 큰 환영을 받았으며, 르로이는 나폴레옹의 아내 조세핀(Josephine)의 눈에 들어 전속 디자이너가 됐다. 당시로는 파격적인 패션으로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이미경 부회장의 ‘파격’에는 우리가 주목해야 할 대목이 있어 보인다. 삼성 이병철 회장의 친손녀인 그녀는 영화계에서 그야말로 ‘큰손’이기도 하지만, 손 대는 작품에 대한 안목이 대단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찍이 ‘변호인’과 ‘광해’등 빼어난 작품을 만들어 냈고, 이를 반체제의 영화라 해 기분 나빠한 박근혜 정권의 미움을 사 미국으로 쫓겨가기도 했다. ‘이미경 사단’인 봉준호나 송강호도 그녀와 함께 블랙리스트에 올랐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지는 ‘기생충’의 수상직후 <이미경 CJ 부회장, 봉준호 감독과 배우 송강호는 (지난 정권에서) 블랙리스트에 올라있었다. 블랙리스트가 계속됐다면 기생충은 오늘날 빛을 보지 못했을 것>이라 평가했다.

이미경 부회장에게는 휠체어를 타거나 목발을 짚지 않으면 거동이 불편한 유전병이 있다. 그런 그녀가 아카데미 시상식장에서 입은 옷에 새겨 놓은 것은 다름 아닌 불굴의 ‘뚝심’이었다. 그게 우리가 그녀를 바로 봐야 할 대목인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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