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여행
왜목마을에 가면 희망처럼 태양이 떠오른다■ 류미월의 문학향기 따라 마을 따라 - 충남 당진
류미월 객원기자  |  rhyu6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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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2.28  11:0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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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남 당진의 왜목마을은 일출과 일몰을 동시에 볼 수 있는 명소다.(사진제공/당진시청)

왜목마을의 일몰 풍경은
살아있는 것은
모두 아름답다며
처진 어깨를 어루만진다.
벅찬 환희감을 준다...

새해맞이 일출을 맞기 위해 동해안 정동진으로 달려가는 사람들도 많지만, 충남 당진의 왜목마을도 일출과 일몰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전국에서 유일한 명소다. 동해의 일출이 화려하고 장엄하다면 왜목마을의 일출은 한순간에 바다를 가로지르는 황톳빛 물기둥이 만들어지는 소박하면서 서정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왜가리 목처럼 불쑥 튀어나온 지형적 특성 때문에 왜목마을이라고 불린다.

   
▲ 35세로 요절한 심훈은 영원한 문학청년으로 남아있다.

시원한 서해대교를 건너 멀리서 보면 펜션 같은 멋진 행담도 휴게소를 지났다. 소설 ‘상록수’로 잘 알려진 심훈의 필경사, 특별한 미술관인 아미미술관 관람, 바닷가 드라이브와 왜목마을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는 내내 설렜다. 당진에 들어서자 산업단지의 제철소들과 당진화력발전소 굴뚝에서 뿜어져 나오는 연기가 힘찬 경제도시라는 신호를 알린다. 당진은 토양이 황토인 곳이 많다. 당진산 황토 감자가 유명한 이유이기도 하다.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증 사태로 전국이 얼어붙고 마음도 가라앉았다. 그렇다고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어서 마스크를 단단히 쓰고 당진행을 감행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진정되면 당진행 나들이 계획을 세워보는 것은 어떨까.

   
▲ 필경사 뜰에 있는 상록수 주인공 조각상

심훈의 삶이 되살아나는 필경사
심훈기념관에 들어서자 썰렁하다. 기념관을 구석구석 돌아보는데 문화해설사 한 분이 다가와서 관람객이 적은 관계로 긴 시간 동안 자세히 설명해준다.
심훈의 본명은 심대섭이다. 독립운동가이자 농촌계몽운동가이고 작가, 시인, 영화감독, 방송국 프로듀서, 저널리스트 등 다방면에 재주가 많았다. 1901년에 태어나 1936년 한창 나이인 35세의 젊은 나이에 장티푸스로 사망했다. 하지만 그는 우리의 가슴 속에 영원한 문학청년으로 남아있다.

그의 유명한 작품으로는 민족저항 시로 <그날이 오면>과 농촌계몽소설의 대명사인 <상록수>가 널리 알려져 있다. 상록수(常綠樹)는 1935~1936년까지 127회에 걸쳐 동아일보에 연재된 소설이다. 농촌계몽운동 소재 장편 현상 공모에 당선된 작품이다. 일제 강점기에 고통 받는 농민들의 삶과 아픔을 그린 작품세계는 상록수처럼 푸르게 우리들 가슴에 남아있다.
이 작품은 청춘 남녀의 사랑 이야기를 한 축으로 삼아 농촌계몽운동에 헌신하는 지식인의 모습과 당시 농촌의 실상을 그리고 있다. 소설 속 남자주인공인 수원 농림고 학생인 박동혁과 신학교 여학생인 채영신은 동지이자 연인이다. 박동혁은 농촌 계몽운동에 평생을 바쳤고 채영신은 예배당을 지어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쳤다.

동혁은 가정형편이 어려워서 학업을 중도에 포기한다. 농민과 함께 호흡하며 채영신은 부녀회를 조직하고 예배당을 빌려 어린이 강습소를 운영하며 농촌을 일으키기 위해 혼신을 다한다. 영신은 일본으로 건너가 공부를 하는 동안 병이 악화돼 죽고, 영신을 장사지내고 돌아오는 길에 동혁은 상록수를 바라보며 농민을 위해 살 것을 다짐한다는 줄거리다. 경기도 안산에 가면 문학작품을 역명으로 사용한 최초의 역인 상록수역이 있다.

심훈기념관과 필경사는 붙어있는데, 심훈기념관에서는 그의 일대기와 작품세계를 둘러볼 수 있고, 필경사는 심훈의 문학 산실이었던 집으로 심훈이 직접 설계해서 짓고 소설 상록수를 집필했던 아담한 황토집이다. 필경사 옆에는 심훈의 묘가 있다.
심훈기념관을 돌아보니 배가 출출해진다. 점심을 먹기 위해 바닷가 풍경을 보며 한진포구를 지나 칼국수가 유명하다는 안섬포구로 향했다. 포장마차들이 즐비하다. 먹거리촌에는 유독 손님들의 줄이 긴 집이 있었다. 칼국수에 낙지 한 마리를 추가하면 냄비에서 살아있는 낙지가 칼국수와 함께 익어가고 진한 국물이 일품이다. 점심을 먹고 30분을 달려서 당진에 가면 꼭 들러봐야 할 아미미술관을 찾아갔다.

   
▲ 폐교를 리모델링한 아미미술관은 여러 화가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아미미술관에서 철학자가 되다
나지막한 산 아미산(349m) 입구에 있는 폐교를 활용한 미술관은 외관을 담쟁이덩굴이 감싸고 있고, 교실 7~8칸이 멈춰선 기차처럼 아담하고 예쁘다. 성인 입장료는 5천 원이다. 운동장이었던 야외전시장은 평소에 자연학습장으로 활용되고 군데군데 야외 조각 설치미술품들이 있다.
2011년에 개관한 미술관에는 교실별로 테마별 작품이 전시돼 있어 한꺼번에 여러 화가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보랏빛 등나무꽃과 깃털이 주렁주렁 천정에 달린 설치미술작품들이 몽환적 분위기를 준다.

마침 21세기형 현대인의 정체성을 탐구하는 4인의 <Selfie(셀피) 시대의 자화상>전이 열리고 있었다. 과거에는 자화상, 일기, 자서전을 통해 자신을 탐색했다면 현대는 모바일 미디어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며 개개인의 욕망이 어떻게 표출되는지 살펴볼 수 있는 작품들을 돌아보며 자신을 잠시나마 성찰하는 시간이 된다.
장대일 작가의 작품 속 얼굴은 내면의 얼굴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은 멀쩡한 정신으로 살아가기 힘들 정도로 자기감정을 숨길 때가 많다. 하루에도 열두 번씩 바뀌는 얼굴은 밝고 희망적이었다가 어둡고 절망적이 되기도 한다. 그 내면의 얼굴은 깨져 있다. 아프고 우울하다. 조각조각 깨어진 형상을 한 얼굴의 조각상이 보는 내내 불편함과 ‘나의 정체성을 무엇인가? 거울 속의 당신은 당신인가?’ 라고 묻는다.

송하나 작가의 ‘꽃밭은 없다’라는 작품의 글귀 중에 공감이 가는 문구는 이렇다.
“맞아, 남들은 꽃길만 걷는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사실 들여다보면 꽃길만 걷는 사람은 아무도 없더라구.”
꽃 그림 앞에서 사진을 찍는 관람객들이 많았다. 꽃이 아니어도 꽃처럼 보여서 내가 가는 길도 아름다워 보일 수 있다는 메시지를 준다. 미술관을 둘러보고 나오면서 잠시 철학자가 된 기분이었다. 미술관 뒤편에는 아기자기한 빈티지풍의 소품들이 가득한 찻집이 있다.

미술관을 나와 당진시청을 지나 석문면에 있는 왜목마을 포구로 갔다. 당일치기라 일출을 놓쳤기에 일몰이라도 꼭 보고 싶었다. 해변에 도착하자 일몰에 물들기 시작하는 바다색이 낭만을 준다. 일몰이 시작되는 포구는 그림물감을 진하게 쏟아붓듯 아름다웠다. 삼삼오오 여행객들이 던지는 새우맛 과자를 먹으려는 갈매기들이 힘차게 날아와 사람 곁에 머물다 하늘로 비상한다.
사람이 있어서 더 멋진 왜목마을의 일몰 풍경은 살아있는 것은 모두 아름답다며 처진 어깨를 어루만진다. 벅찬 환희감을 준다. 당진 왜목마을에서 나도 노을빛 속에 한 점이 됐다가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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