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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도 결국은 기본에 충실해야”■ 농촌愛살다 - 전남 담양‘담양 좋고 여름하나니’여인섭 대표
기형서 기자  |  01036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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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2.21  14:3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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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강사에서 귀농전도사로 ‘부농 꿈’
많이 배우고, 사회활동 넓혀야 ‘합리적 영농’ 가능

   
▲ 토마토 농장에서 하루일과를 시작하는 여인섭 대표

전남 담양은 대나무로 유명해 죽향(竹鄕)이라 불린다. 실학자 서유구는 ‘임원경제지’에서 “호남인들은 대를 종이같이 다듬어서 청색과 홍색 등 여러 가지 물을 들여 옷상자 등으로 썼다. 그 상자는 호남의 담양이 가장 뛰어났다”고 기록했다.
대나무를 닮아서 일까. 담양에는 조선의 걸출한 선비들이 많았다. 특히 가사문학의 중심지로 꼽힌다. 면앙정가의 송순을 시작으로 고경명·기대승·임제·송강 등이 배출됐다. 송강 정철은 담양에서 선조를 그리며 ‘사미인곡’, ‘속미인곡’ 등을 풀어냈다.

담양의 동쪽에 자리한 정석마을에는 담양의 역사를 바탕으로 귀농의 꿈을 일구고 있는 여인섭 대표(50·담양군 무정면 정석길 47-9)의 ‘담양 좋고 여름하나니’ 농장이 자리하고 있다. 정석마을은 해발 400여m의 야트막한 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서고 있다. 북으로는 고비산·화봉산, 서로는 금산, 동으로 괘일산·무이산, 남으로 안산·연산 등이 펼쳐졌다.
“귀농이 결코 쉽지 않았죠. 정리할 것도 많고, 자신도 없고 그랬지요. 그러면서도 학원이라는 직업에 대한 고민은 나이가 들수록 더 깊어졌죠. 어머니 건강도 좋지 않았어요. 한 살이라도 더 먹기 전에 건강도 챙기고 평생직장도 만들자는 생각으로 귀농을 결심하게 됐죠.”

여 대표는 담양이 고향이다. 담양에서 초·중·고교를 다녔다. 그리고 대학은 순천대학교 영어교육학과를 졸업했다. 졸업과 함께 전남 광양제철소 단지 내에서 영어학원을 운영했다.
“대한민국에 영어 바람이 부는 시기여서 제법 학생들이 많았습니다. 젊어서는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르게 정신없이 보냈죠. 그렇게 한 10여년 흐르니까 서서히 고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평생을 밤 시간에 근무해야 하는데다 학원 간의 경쟁도 치열했어요. 그러면서 고향으로 돌아가 새로운 마인드로 농사를 지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죠. 저보다 아내가 더 귀농을 찬성한 편이었어요. 어차피 귀농할거면 빨리 가자고 등을 떠민 것이 아내입니다.”

그렇게 여 대표는 2015년 마흔다섯의 나이에 담양 고향으로 귀농을 했다. 부모님이 고향에서 농사를 짓고 있었지만, 여 대표는 별도의 농장을 마련했다. 부모님에 의지하기보다는 새로운 마음으로 진짜 농사꾼이 되기 위해서였다.
“비닐하우스 6동 7920㎡, 밭 3630㎡를 임대했습니다. 그리고 방울토마토와 애플수박에 도전했죠. 그리고 밭에는 참깨, 고구마 같은 이것저것 심었죠. 그리고 얼마 안 지나서 인근의 비닐하우스를 매입해서 멜론도 심었습니다.”

   
▲ 여인섭 대표는 2015년에 귀농해 방울토마토, 애플수박 등을 재배했다. 그는 각종 작목반과 산학협력단, 귀농협의회 등의 사회활동도 활발히 이어가고 있다.

위기 때마다 인터넷과 직거래로 극복
그렇게 시작부터 의욕적으로 멜론을 재배했지만 출하 시기가 문제였다. 그가 처음으로 수확한 멜론이 하필이면 수박 출하 시기와 맞물렸다. 경험이 없어 출하시기를 예측하지 못한 결과였다.
“작황도 좋았어요. 기대를 안고 도매시장에 냈는데 4개들이 한 상자 경매가가 겨우 8천 원이더라고요. 인건비도 건지지 못할 것 같아서 상품을 회수해 돌아왔습니다. 앞이 캄캄했어요. 그때부터 직거래에 목숨을 걸었죠. 동생과 지인에게 일일이 연락하는가 하면, 인터넷에도 올렸습니다. 그래서 첫 농사부터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둘 수 있었습니다.”

여 대표는 그렇게 멜론이 끝나면 토마토, 그리고 애플수박을 이어가며 귀농에 성공적인 정착을 해나갔다.
“농사는 일단 많이 배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다양한 활동 등으로 지역사회에서 대인관계를 넓혀야 정보는 물론이고 판매망 등을 다양화할 수 있습니다.”

여 대표는 현재도 ‘토마토 농업마이스터대학’ 2학년에 다니고 있다. 귀농 첫해부터 담양군농업기술센터 가공수업, 전남도농업기술원 생명대학원, 순천대학교 산지마케팅과정 등 다양한 교육과정을 수료했다. 또한 각종 작목반과 산학협력단, 귀농협의회 등의 사회활동도 활발히 이어가고 있다.
“저는 성공보다는 망치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또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문을 닫지 않는다든지, 온도나 양액 공급 상태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는 것 등이 곧 간단한 실수인 것 같지만 농사를 망칠 수 있는 실수이기도 합니다. 농사를 잘 짓는 일도 결국은 기본을 잘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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