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뷰 - 이동필 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지난 정부 초대 농림축산식품부장관으로 입각한 이동필 전 장관은 2013년 3월11일에 취임해 2016년 9월4일까지 3년6개월 장관직을 수행한 역대 최장수 농식품부 장관이다. 이 전 장관은 현재 고향인 경북 의성군 단촌면 세촌리 한 시골마을로 낙향해 90을 바라보는 노모를 모시고 농사를 짓고 있다.
농정의 수장에서 농민으로 변신한 이 장관으로부터 애환이 깃든 농촌생활 얘기와 이 시대 효행 실천의 방법이 무엇인지 들어봤다.

효는 우리사회를 지탱해 준
대들보 같은 생활덕목…
쇠퇴·훼손되는 효문화·정신을
현대적으로 재정립하고 계승해야

농촌운동을 한 아버지 대신해
평생 농사지으신 노모와 함께 살려고 낙향

“아버지는 신문사에 근무하시다가 교편을 잡으셨어요. 1960년대 재건국민운동이 펼쳐질 당시 고향으로 돌아오셔서 새마을지도자며 이동농업협동조합장 등 농촌운동을 하셨죠. 그러다 병으로 10년을 누워계시다가 1991년에 돌아가셨어요.”
이 장관은 40여 년 전 아버지에게 ‘농민이 왜 못사는지 공부를 해 가지고 오겠다’며 고향을 떠나 객지를 떠돌다 2016년 가을에 고향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한편, 바깥일을 하는 아버지를 대신해 어머니는 평생 농사를 짓다가 퇴행성관절염으로 고생하셨고, 황반병까지 얻어 눈이 잘 보이질 않았다. 이 장관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키고 어머니를 돌보며 텃밭을 가꾸고, 선산을 돌봐야 한다는 이유를 대고 장관직에서 물러나 그 길로 낙향했다. 내려놓고 물러나서야 새로운 삶의 의미를 찾았다고 한다.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공수진퇴(公遂進退 : 공을 이루면 몸소 물러나는 것이 하늘의 도리)’라는 말에 따라 한국농촌경제연구원장, 농식품부 장관 등 40여 년의 공직을 마감하며 용퇴했다. 이 장관은 2016년 9월4일 장관 퇴임식 당일 낙향하려고 했지만 “죄 지은 것도 아닌데 왜 그리 서두르냐!”는 아내의 말에 하루 지나 다음날 고향으로 내려왔다고 한다.

이 장관이 고향으로 돌아와 보니 40년 전 아버지가 지은 집이 너무 좁았고 춥고 더웠다. 집 앞 텃밭 일부를 마당으로 늘려 사원제(思源齊)라는 이름의 다섯 평짜리 사랑채를 지었다. ‘사원’(思源)은 중국 고사성어인 ‘음수사원’(飮水思源)으로, 물을 마실 때 그 근원이 어디인지 알고 마셔야 한다는 뜻이다. 이 장관은 책을 읽거나 간혹 집을 찾는 손님을 여기서 모신다.
맞은편 마당엔 어머니가 친구들과 정담을 나누며 재미있게 놀 수 있도록 ‘애일당’(愛日堂)이라는 조그마한 정자를 지어드렸다. 오늘이 세상의 마지막일수도 있으니 하루를 정말 재미있게 살아보자는 뜻을 담은 정자다.

장관 재직 중엔 ‘농정수칙 1․2․3․4’
귀향해선 ‘생활수칙 1․2․3․4’ 실천

이 장관은 장관 재임 중 ‘현장에 답이 있다’는 소신으로 ‘농정수칙 1·2·3·4’를 기획해 실천한 것으로 유명하다. 한 달(1)에 두 번(2) 이상 현장을 방문해 세 시간(3) 이상 사람(4)을 만나 소통한다는 의미로, 책상이 아닌 전국의 농촌현장을 두루 찾아 무려 28만㎞나 달리면서 농업인들의 목소리를 듣고 소통하기 위해서였다.

고향마을에 내려와서도 이 장관은 ‘생활수칙 1·2·3·4’ 생활수칙을 정했다고 한다. 일찍(1) 자고 일찍 일어나고 하루 두 차례(2) 들에 나가 일을 하며, 하루 삼시세끼(3) 어머니를 모시고 밥을 먹고, 사람들(4)이 찾아오면 말동무나 한다는 것으로, 이 생활수칙을 열심히 실천하며 산다고 했다.
낙향해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지만 정작 삼시세끼 식사 준비는 물론 농사도 아내의 협조 없이는 불가능하다. 어머니 모시고 서울 병원 가는 것과 목욕하는 것도 아내가 아니고는 하지 못한다. 간단해 보이는 이 생활수칙도 겨울철에는 어머니가 노인정에서 식사를 할 때가 많아 실천이 쉽질 않다고 이 장관은 말한다.
“고향에서 부모님 모시고 보람 있는 인생이모작을 꿈꾸는 사람들은 모름지기 아내에게 잘해야 합니다.”(웃음)

시대부합한 효문화와 정신을
젊은이들에게 가르치고 실천토록 해야

“효는 유교사상의 핵심이고 생활규범입니다. 우리 사회를 오랫동안 지탱해 온 대들보와 같은 생활덕목이지요. 그러나 사회가 도시화·산업화되고 핵가족화 되다보니 개인주의와 물질만능주의가 만연해져 가정파탄, 사회혼란, 가치관 훼손이 큰 문제로 대두되고 말았습니다.  부모에게 효도하고 어른을 공경해야 한다는 의식이 희박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조상을 섬기는 일도 쇠퇴하고 있습니다. 국가와 사회가 효문화를 현대적으로 재정립해 젊은이들을 계도하고 계승해 나가야 합니다. 가정에서는 시대에 부합한 효문화와 정신을 자녀에게 가르쳐야 합니다. 최근 귀농·귀촌 붐을 타고 고향으로 돌아가 노부모와 함께 생활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지금이 효의 가치와 문화를 재정립하는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개인이 실천하기 힘든 효는 사회와 국가가 일부를 담당해야 합니다. 저희 동네를 보면, 65세 이상 노인이 대부분입니다. 그 중에 독거노인도 20~30%는 될 겁니다. 자녀들이 객지에 나가 1년에 한 두 번 얼굴 보기도 힘듭니다. 이런 어르신들이 모여 함께 식사를 하거나 생활을 하는 공동급식과 공동홈을 확대해 나가야 합니다. 물론 노인요양보험 등 노인들이 편하게 여생을 보낼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탄탄하게 꾸며져야 국가에 의존하지 않고도 건강한 노인이 병약한 노인을 돌보는 ‘노노(老老)케어 시스템’부터 활성화돼야 합니다.”

돈 버는 농정·배려농정 병행해야
취약한 주택에서 살고 있는 영세한 독거노인 복지에도 더 신경 써야 합니다. 예를 들면, 정부가 마을회관을 리모델링해 공동주거시설을 마련해주는 것이죠. 저는 장관 재직 시 돈 버는 농정 못지않게 ‘배려농정’ 실천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목욕탕이 없는 면소재지에 1억~2억 원을 투입해 작은 목욕탕을 지어주고 장날만이라도 남녀가 교대로 목욕을 할 수 있게 시설을 지원한 것입니다. 택시를 공동으로 이용하는 농촌교통모델 개발도 애를 썼습니다.

거창하지는 않지만 우리 마을에는 어르신들이 서예교실을 운영하고 있는데, 얼마 전에는 솜씨자랑 겸 입춘첩 써주기를 했습니다. 어르신들이 삐뚤빼뚤 글씨를 쓰고도 글을 썼다는 자체에 마냥 행복해하는 겁니다. 이런 문화교실 운영도 농촌노인들의 삶의 즐거움을 북돋운다는 점에서, 그리고 노인들이 외롭지 않게 살아가는 좋은 모임이 되리라 봅니다.”

손편지쓰기는 효문화 재건의 큰 동력
“한국생활개선중앙연합회와 효행청소년단의 협약에 따라 농촌여성신문사가 효문화 재건을 위해 손편지 쓰기 운동을 전개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쉽지 않겠지만 취지에 전적으로 공감하며 응원을 보냅니다. 다만 옛날처럼 부모가 자녀에게 일방적으로 효도를 요구하거나 부양의무를 강요해서는 안 됩니다. 부단한 소통을 통해 수평적 사랑으로 배려하며 살아야 합니다. 손편지 쓰기 운동이 효문화 재건에 불씨가 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그게 정 어려우면 부모님께 전화라도 한 통하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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