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희 칼럼 - 누리백경(百景)(127)

‘남쪽 하늘에 검은 구름처럼 지평선 위에 걸쳐 있더니, 이윽고 부채꼴로 퍼지면서 하늘을 뒤덮었다. 세상이 온통 깜깜해지고, 메뚜기들이 서로 부딪히는 소리가 천지를 진동시켰다. 그들이 내려앉은 곳은 잎사귀 하나 볼 수 없고, 모두 졸지에 황무지로 돌변했다.’
미국의 노벨문학상 수상 여류작가인 펄벅(Peal.S.Buck ; 1892~1973)의 대표작 <대지(The Good Earth)>(1930)에 그려진 메뚜기떼의 습격장면이다. 중국 농촌이 배경이 된 이 소설 속 메뚜기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벼메뚜기보다 몸체가 배로 큰 ‘황충’이라 부르는 풀무치다.

<성서>에도 기록돼 있듯이 이집트·에티오피아 등의 동북부 아프리카에서는 이같은 메뚜기의 준동을 ‘흔한 재앙’으로 일컬었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메뚜기가 갉아먹은 농작물의 흔적들을 ‘바람의 이빨(teeth of the wind)’이라고 부른다. 흡사 바람에 이빨이 있어 훑고 지나가면서 온 농작물을 깡그리 씹어서 삼켜버리고 가는 것과 같은 모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와같은 재앙이 또다시 현실이 됐다. 지금 동아프리카와 중동 일대에서 엄청난 속도로 농작물을 먹어치우는 메뚜기 떼가 창궐해 소말리아·케냐·에티오피아 등 동아프리카 국가들과, 홍해 건너편 중동지역의 이란·파키스탄 정부가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메뚜기떼 퇴치에 나섰다.

유엔식량농업기구(WHO)의 긴급성명에 따르면, 이번 메뚜기떼 출현은 최근 25년 사이 최악의 상황이라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세계 최대·최악의 메뚜기 떼 피해 기록은, 1784년 남아프리 카에서 약 3천억 마리의 메뚜기 떼가 약 3000평방킬로미터의 농토에 피해를 입힌 것이다.
지금 문제의 메뚜기 떼는‘사막 메뚜기(desert locust)’라는 종으로, 최대 8000만 마리씩 한 무리로 뭉쳐 날아다니며, 잡식성 이어서 쌀·보리는 물론이고 옥수수·목화·바나나·나뭇잎 등 식물과 과일류를 닥치는 대로 매일 자기 몸무게(2g)만큼씩 먹어치우는 왕성한 식욕을 갖고 있다는 것.

전문가들의 진단에 따르면, 올겨울 동아프리카에 예년보다 훨씬 고온다습한 이상기후가 나타나면서 메뚜기 떼가 번식하기 좋은 환경이 만들어진 것이라는 것. 그런데 앞으로가 더 문제다. 이 사막 메뚜기의 수명이 3~6개월이기 때문에 한 해동안 최대 4세대 번식이 가능할 것이라고 보면, 앞으로 오는 6월까지 메뚜기 떼 규모가 최대 지금의 500배까지 커질 수 있을 뿐 아니라, 바람에 의한 확산이동 속도도 빠를 것이라고 유엔식량농업기구는 큰 우려를 나타냈다.

이처럼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 지금, 지구의 저 서편아래 아프리카·중동 지역에서는 한낱 미물인 메뚜기 떼와, 아시아대륙에서는 신종 바이러스와 처절한 사투를 벌이고 있는 지구촌 풍경이 실로 딱하고 눈물겹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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