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명견 교수의 재미있고 유익한 옷 이야기(76)

"나치 협력 브랜드
과거사와 상관없이
나날이 성공..."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가 나치 조직 안에 의복관련 정책을 전담케 하는 제국패션국(Deutsches Modeamt)을 따로 설립해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유럽제패를 꿈꾸면서 히틀러는 패션을 좌지우지하는 것이 다른 어떤 전략 못지않게 전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꿰뚫어보고 있었다. 실제로 그는 패션국을 통해 군복의 색깔과 마크 등을 효율적으로 만들어 갔으며 통제해 갔다. 히틀러는 우선 멋있는 군복의 판타지가 청년들을 전쟁에 끌어들이는 좋은 미끼였음을 간파했다. 그렇게 제복이 나오자마자 청년들은 번지르르한 제복의 모습에 반해 앞다퉈 나치의 대열에 합류했다. 그리고 많은 젊은이들이 죽어갔다.

히틀러의 그 같은 생각을 가장 정확히 받들어 실천에 옮겨간 게 선전장관에 기용된 괴벨스(Paul Joseph Goebbels)였다. 직물공장의 직공장 집안에서 태어난 괴벨스는 소아마비로 다리가 굽어 불우한 소년시절을 보내며 병역까지 거부당했으나, 특히 패션에서는 완벽을 추구했다. 그 자신이 수백 벌의 정장을 가지고 있었고, 1년 사이에 두 번 같은 옷을 입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초라한 군복은 사람들에게 공포감을 심어줄 수 없고, 멋지고 강한 존재라는 인상을 심어주지 못한다며 침략과 패션을 결합해 갔다.

여기에 의류업자들과 디자이너들이 가세했다. 대표적으로 독일 패션브랜드 ‘보스(Hugo Boss)’가 나치당에 가입해 괴벨스와 손을 잡으면서 승승장구하기 시작했다. 괴벨스는 보스에게 독일군 군복은 물론 나치돌격대, 히틀러 청년단, SS친위대 등의 제복을 만들도록 했다. 악을 나타내는 검정 일색의 정장과 해골이 그려진 모자까지도 제작해 공급했다. 공포감을 불러일으키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보스는 2차 세계대전이 시작된 뒤에도 공장 옆에 수용소까지 만들어 전쟁포로들에게 군복을 만들게도 했다. 샤넬, 크리스천 디오르, 루이비통 등도 나치와 호흡을 맞춰갔다. 그러나 나치에 동조했던 이들 브랜드들은 2차 대전이 끝나고 전범들의 처벌이 끝난 뒤에도 영향력이 소멸되지 않았다. 군복 납품을 계기로 급성장했던 보스는 투표권과 회사운영권을 박탈당하면서 거액의 벌금을 물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보스라는 브랜드를 인수한 새로운 주인이 나치에 협력한 과거사에 대해 사과한 뒤 더욱 성장해, 지금은 세계 110여 개국에 6100여 개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샤넬과 크리스천 디오르 등 나치에 협력한 브랜드들도 과거사와 상관없이 나날이 성공해 가고 있다.

지난해 11월27일 독일군은 인스타그램에 군복변천사를 보여주면서, 금기사항인 나치 군복을 ‘자랑스럽게’ 올렸다. 나치문양과 철십자 기장이 선명한 이 게시물에는 “이 군복의 요소들이 오늘날 고급패션에도 녹아있다”는 설명이 곁들여 있었다. 벌떼처럼 비난이 쏟아지자 독일군은 즉각 사과했으나, 유럽의 젊은이들은 미국 군복보다 독일군 군복이 더 멋지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악행을 저지른 전범과 그 전범에 협력한 패션 브랜드와 그 제품들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는 각각 달라 보인다. 아쉽게도 패션이란 그런 것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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