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나봅시다 - 대한가정법률복지상담원 양정자 원장

대한가정법률복지상담원 양정자 원장은 53년 동안 16만 건의 가정문제를 상담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 이화여대 법학과 62학번인 양 원장은 53년 넘게 이혼상담과 법률구조사업에 헌신하며 가족법 개정운동에 앞장선 여성인권운동가다. 법률구조법인 대한가정법률복지상담원이 올해 창립 20주년을 맞았다. 1999년 상담원을 만들어 20년간 이끌어온 양정자 원장을 만나봤다.

 이혼은 아무나 하나… 이혼에도 자격이 있다

 퇴직금과 1만5000평 땅 기부
‘법률복지’ 뿌리 내리도록 헌신할 터

▲ 여성인권운동가 1세대로서 여성계에서 오랫동안 활동한 대한가정법률복지상담원 양정자 원장

소외된 이웃 보살피는 ‘법률복지’
“어려서부터  법을 전공해서 인권변호사가 돼 억울한 사람을 도와주고 싶은 소망을 가졌습니다.” 대한가정법률복지상담원(이하 상담원) 양정자 원장은 지난 53년간 소외된 이웃에게 법률상담을 지원하며 약자를 돕는 법률구조를 뿌리 내리기 위해 한평생을 바치고 있다.
대학 4학년 때 故 이태영 박사로부터 동역자로 일하자는 제의를 받고 시작한 일이 올해로 53년째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변호사인 이태영 박사를 만난 것은 이대 법학과 2학년 때였다. 당시 이태영 박사는 이화여대 학장이었는데 우연한 기회에 미국의 하버드 대학교 로스쿨을 방문해 학생들이 임상실습을 위해 무료변론을 맡고 있는 것을 보고, 이대 법학과에 가정법률상담실습 시간을 개설하고, 이 과목을 수강하는 학생들로 하여금 가정법률상담소에 나가 직접 내담자를 만나 상담하고 리포트를 내게 했다.

억울한 일을 당해도 돈이 없어서, 법을 몰라서 호소할 길조차 찾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상담원은 무료로 법률구조사업을 제공한다. 20년 동안 총 32만472건의 상담 중 부부관계 상담 내용을 살펴보면 많은 변화가 있었다고 한다.

요즘 남자들 예전에 비해 성격 급해지고 화 참지 못한다
“1970년의 상담과 지금의 상담은 큰 차이가 있다. 예전엔 남편이 칼을 들고 위협한다고 상담 온 여성에겐 ‘버릇을 고치려면 남편에게 찌르라고 덤비면서 맞대응하라’고 권했다. 여자가 세게 나오면 예전 남자들은 깜짝 놀라며 오히려 차분해졌었다. 그런데 1990년대부터는 절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농경제사회에서 산업화사회로, 정보화시대로 바뀌면서 요즘 남자들은 성격이 급해지면서 분노를 참지 못한다. 그래서 지금은 ‘무조건 잘못했다고 말하고 그 자리를 피하라’고 말한다. 일단은 살고 봐야 하니까.”
하루 평균 10명 정도 상담을 하다보면  기막힌 사연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법적으로 이혼해 놓고는 재혼해서 새 가정을 이루고 사는 상대를 계속 찾아가고 시비하고 상처 주는 사람, 부부싸움에 부모형제가 나서서 함께 살겠다는 본인들을 떼어놓는 사람, 여태 자식 때문에 할 수 없이 살았다더니 막상 이혼을 하게 되니까 자식을 맡지 않으려고 별 핑계를 다 대는 엄마도 적지 않다. 

이런 상담자들을 양 원장은 53년간 16만 명 이상 만나고 있다. 그래서 양 원장은 자신을 ‘16만 번 결혼하고, 16만 번 이혼한 여자’라고 소개하기도 한다. 이혼을 결심할 때는 억압과 구속에서 해방돼 자유를 얻을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이라는 확고한 신념과 의지가 있어야 한다고 양 원장은 힘줘 말한다. 그럴 수 있는 사람만이 이혼할 자격이 있다. 이혼하고 법적으로 부부관계를 정리하고 나서도 억울하게 갈라섰다고 생각해서 복수심에 불타오를 사람이라면 차라리 이혼하지 않고 함께 사는 편이 낫다. 자신의 인생을 사는데 앞은 못 보고 계속 뒤돌아보며 이혼한 상대에게서 자유로워지지 못하고 예속된 인생을 살아가는 것은 정말 불행한 일이라고 말한다.

‘호주제 폐지’ 가장 의미있다고 평가
양정자 원장은 가족법 개정운동과 대중매체를 통한 의식화 운동도 지속적으로 펼치고 있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호주제 폐지라고 한다. 호주제도를 주제로 석사논문을 쓰는 과정에서 남계혈통을 중심으로 집안을 이어가는 이 제도가 문제가 많은 점을 발견했다.
“기존엔 호주제도가 관념적인제도일 뿐이다, 집에 구심점이 있어야 할 것 같고, 별다른 피해를 주는 것 같지도 않으니 문제가 없다고 느껴졌다. 그런데 논문을 준비하며 살펴보니 400개 이상의 남녀차별, 인간차별 조항이 호주제도를 기반으로 해서 규정돼 있어 생각보다 그 폐해가 컸다”고 양 원장은 지적한다.

예를 들어 딸이 가장의 역할을 해서 집안을 꾸려왔어도 유산 등의 모든 권리는 아들에게 가게 만드는 것. 독립유공자의 연금의 경우 유공자 집안의 딸은 아무리 집안에 기여한 공로가 크다고 해도 혼인을 해서 호적을 달리하면 손자며느리보다 후순위자라 연금을 받을 수 없는 것, 호주라는 말 자체가 민법상에 남아있으면 남녀차별, 장·차남차별, 인간차별이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1999년 ‘호주제도를 폐지해야 한다’는 내용의 칼럼을 신문에 싣고 1년 동안 매주 ‘호주제 클리닉’을 사례별로 정리해 기고했다. 호주제 폐지는 대한가정법률복지상담원의 가장 큰 업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여성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고 우리 사회에 팽배한 인간 차별의 의식에 맞서는 일이기 때문이다.

법률복지 뿌리내릴 수 있도록 앞장설 터
정의를 말하는 사람은 많지만 이를 실행으로 옮기는 사람은 적다. 양정자 원장은 1999년 한국가정법률상담소를 퇴직해서 나오기까지 상담소 창설자인 이태영 박사와 함께 국내에 27개, 미국에 12개 지부를 개설하고 퇴직 후 상담원과 상담원 지부 6개를 개설해 총 46개의 법조공익시설로 지방거주민들이 보다 쉽게 상담원을 찾아 도움을 받을 수 있게 했다.

새해를 맞아 양정자 원장은 상담원 건물을 새로 마련해 보다 안정적으로 약자를 돕는 법률복지를 제대로 시행해 보고자 한다. 퇴직금으로 받은 5천만 원 전액을 내놨고,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땅 4만9500㎡(약 1만5000평)도 기부했다.
여성인권운동가 1세대로서 여성계에서 오랫동안 활동한 후배들에게 보금자리를 만들어주고 통일을 위한 여성들의 목소리를 내고자 하는 포부를 가지고 있는 양 원장은 마지막으로 법률복지가 뿌리 내릴 수 있도록 더 많은 관심과 지원을 부탁했다.

☞ 양정자 원장은…
- 이화여대 법학과 동대학원(가족법전공) 졸업
- 원광대학교 대학원(사회보장법전공)박사학위 취득
- 한국가정법률상담소 33년 재직
- 국내외 46개 법조공익시설  개설
- 이화여대, 경기대 등에서 여성학과 법률구조 강의
- 국민훈장 석류장, 인권유공자상 수상

저작권자 © 농촌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