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곳에 가면 – 전남 곡성 ‘길작은 도서관’

▲ 시인할매 작품들이 도서관 담벼락에 걸려있다.

전라남도 곡성 서봉마을엔 시인 할매들이 있다. 할매들이 쓴 시는 살아온 세월만큼이나 그 소재와 내용도 다양하다. 한평생 농사만 짓다 보니 글을 배울 기회도, 시간도 없던 할매들이지만 마을 도서관에서 글 공부를 시작해 시집까지 냈다.
할머니들의 글 공부뿐 아니라 음악, 미술 등으로 마을아이들 교육을 책임지면서 명실상부한 곡성군의 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한 곡성 서봉마을의 ‘길작은 도서관’. 그곳은 어떤 곳일까. 할머니들이 시를 쓰게 된 사연은 무엇일까. 길작은 도서관 김선자 관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목사부부가 빈집 수리해 도서관으로 꾸며
글쓰기·음식교육으로 마을주민 창작열 끌어내

▲ 길작은 도서관 김선자 관장

서봉마을의 문화공간
길작은 도서관을 세운 한광희 목사와 김선자 관장은 2004년 목회를 위해 전남 곡성으로 왔다.
“마을 아이들에게 다양한 교육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었어요.”
마을에 아이들을 위한 공간이 없다는 걸 안 부부는 그들을 위해 도서관을 만들기로 결심한다.
“우리 교회 옆에 빈 집이 있었는데 그걸 사서 도서관으로 만들었죠.”

모든 것을 사비로 해결해야 했던 부부는 버려진 책꽂이를 주워오고 책을 기증받으면서 알뜰살뜰 도서관을 꾸며나갔다. 그렇게 도서관은 금세 아이들의 놀이 공간이자 교육 공간이 됐다. 이후 도서관에서는 독서 활동뿐 아니라 문예창작과에 다니는 김 씨의 아들이 글쓰기 수업을 진행하고 예술을 전공하는 딸이 아이들에게 악기와 애니메이션 그리기 등을 가르쳤다.
“아이들에게는 영어, 수학보다도 다양한 경험이 더 중요하니까요. 최근엔 아들이 동시를 가르치고 있고, 가장 인기 수업은 웹툰 수업이에요.”

할매들의 한글 극복기
김씨 부부는 도서관을 운영하면서 마을 어르신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어느 날 할머니 한 분이 도서관 정리를 도와주시는데, 책을 거꾸로 꽂으시더라고요. 할머니가 글을 모른다는 걸 알았어요.”
어릴 땐 줄줄이 딸린 동생들을 돌봐야 했고 결혼 후에는 집안일, 농사일에 글을 배울 수 없었던 마을 할머니들은 김 관장의 설득에 글을 배우게 된다. “처음에 회의적이었지요. 이 나이에 글을 배워서 뭐하냐, 배운다고 배워질까… 등 저도 솔직히 걱정이 많았고요.”

김 씨는 그럼에도 할머니들에게 글을 아는 즐거움을 주고 싶었다고 한다. 그러한 이유로 곡성군 문해학교 프로그램이 끝나고도 김관장의 한글교육은 계속됐다. “짧게는 3년, 길게는 5년에 걸쳐 다 떼셨어요.”
할머니들은 이내 글을 아는 즐거움을 느꼈다. 이제 버스 이정표를 확인할 수도, 세금고지서를 읽을 수도, 가게에 간판을 보고 찾아갈 수도 있다.

할매들, 시인되다
수업을 하면서 김관장은 할머니들이 이야기 보따리라는 것을 알았다. 역사책에서만 봤던 가난하고 힘겨운 시대를 온몸으로 살아낸 할머니들에게는 굴곡지고도 아름다운 이야기가 가득이었다. 그는 이것들을 그냥 묻어두기엔 아쉬웠다고.
“글쓰기 공부도 할 겸,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글로 기록하고 싶었어요. 할머니들은 보통 글을 쓸때 간결하게 쓰는데 그게 마치 시 같았죠. 함축된 단어와 문장에 인생을 담는게 시 아닌가요 그래서 시를 쓰게 됐습니다.”

소박하면서도 치열하게 살아낸 그들의 삶이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가 될 것이라 생각한 김 관장은 시집을 발간하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반응은 회의적이었다. 가장 든든한 지지자이자 파트너인 남편마저 반대했다.
“그러던 중 한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어요. 출판사 대표가 어머니 생각을 하면서 엉엉 우셨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시집살이가 출간됐습니다.”

이후 시집을 낸 할머니들은 화제가 돼 영화가 제작되기도 했다. 다큐멘터리 시인할매가 그것이다.
얼마 전 치매극복도서관으로 지정된 길작은 도서관은 마을회관에 찾아가 그림 그리기 교육을 진행하기도 한다. 주제를 주거나 10대 한 장, 20대 한 장, 애 낳고 한 장 등 어르신들이 자신의 생애를 돌아보며 그림을 그리도록 한다.
“처음엔 다들 안 하려고 했는데 그림책으로 출간하니 다들 너무 좋아하시더라고요.”
할머니들 이야기의 가치를 알고 이를 위한 창구 역할을 한 김선자 관장. 그녀 덕에 곡성 서봉마을에는 자신의 이야기를 시로 표현하고 그림으로 그리는 시인할매들이 있다.

저작권자 © 농촌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