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생활속 발명이야기-왕연중 한국발명문화교육연구소장

미국은 10년도 못돼
15만 세대 가정에 보급

1877년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이 설립한 전화기 회사는 10년도 못돼 15만 세대의 미국 가정에 전화기를 보급하는 신화를 창조했다. 벨의 전화기는 필라델피아 만국박람회에 출품돼 브라질 황제가 관심을 보여 많은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이것이 계기가 돼 같은 해 10월9일 보스턴에서 케임브리지 간에 처음으로 호외통화가 이뤄졌다. 승승장구한 것이다.
1879년에는 영국과 프랑스에, 1881년에는 독일과 이탈리아에도 뿌리를 내렸다. 한 마디로 다국적 기업으로 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벨의 전화기가 가장 뛰어난 문명의 이기로 자리를 잡으면서 세계 각국의 발명가들은 앞 다퉈 전화기와 그 주변 기기 발명에 뛰어들었다. 1889년 알먼 스트로우저가 발명한 자동 전화교환기 시스템을 시작으로 1896년에는 다이얼 전화기가 발명된 데 이어 1900년에 조지 캠벨과 마이클 푸핀이 발명한 유도코일을 발명해 전화기의 수신 거리가 2000km까지 가능하게 됐다.
특히 1915년에는 전기신호를 증폭시키는 전자관이 발명됨으로써 수신거리가 4500km까지 가능해졌으며, 1958년에는 벨연구소에서 자동식 전자교환기까지 발명되면서 대량보급이 가능하게 됐다.

우리나라 첫 개인가입자는 4건
벨이 전화기발명과 생산에 열을 올리고 있을 때 토머스 에디슨도 전화기 발명과 생산에 뛰어들면서 전화기는 미국에서 빠른 속도로 발전하며 세계 각국으로 확산됐다.
우리나라에는 1882년 실험용으로 도입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그 이전에는 다리풍(爹釐風, 1880)·어화통(語話筒, 1882)·전어통(傳語筒) 등의 이름으로 소개됐다. 아직 영어가 생소한 시기라 ‘말의 음파를 전류나 전파로 바꿔 멀리 떨어진 곳에 전달하고 이것을 다시 음성으로 바꿔 통화할 수 있게 한 통신수단’인 전화기를 텔레폰이라 하지 않고 한자어로 표현한 것이다.

전화가 공식적으로 수입된 것은 1893년이었으며, 최초의 전화는 1896년 서울에서 인천 간에 개통됐다. 또 1902년에는 이 구간에 공중전화도 개통됐으며, 서울과 개성 간에서도 개통됐다. 특히 1902년부터 외국인 거주자를 중심으로 개인 가입자가 생기기 시작했다. 첫해 가입자는 4건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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