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력 불균형으로 상업영화 여성감독 2.5% 불과

▲ OECD 주요 국가들의 0~14세 사이의 자녀를 둔 여성의 고용률(출처:국회 입법조사처)

30대 여성고용률 급격히 떨어지는 ‘M자형’
파급력 높은 영화계부터 정책적 개입 필요

한국영화가 올해 100주년을 맞았다. 세계 5위 규모의 영화시장으로 성장한 영화산업은 우리 국민이 가장 손쉽게 접하면서 가장 큰 파급력을 가진 문화콘텐츠이기도 하다. 하지만 영화 ‘82년생 김지영’을 두고 남자관람객이 평점테러를 가하거나 관람 자체만으로 페미니즘으로 몰아세우는 모습은 여전한 우리 사회의 성평등 현실을 그대로 노출했다.

지난 10년간 여성 주연배우 영화가 8.3%에 불과하고, 여성캐릭터도 고정적인 성역할에 갇혀있는 등의 문제도 여전하다. 거기다 제작·프로듀싱·촬영·조명 등 스크린 뒷면에도 여성의 설 자리는 좁기만 하다. 특히 미투운동 이후 한순간의 파도가 아닌 성차별 해소의 지속성을 위해 영화계부터 여성소외 현상 해결을 위한 정책적 개입이 필요하단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지난 16일 여성가족부와 문화체육관광부, 더불어민주당 정은혜 의원 주최로 열린 영화계 여성의 주체성 회복을 위한 국회 토론회에서 박현진 영화감독은 일명 영화판의 여성감독으로서 체감한 현실을 언급했다.

박 감독은 “최근 미쓰백, 우리집, 아워바디, 82년생 김지영, 가장 보통의 연애 등 여성감독들의 활약이 두드러진 시기였다”면서 “‘영화 속에서 여자 캐릭터가 많이 보이지 않는 현상을 관객의 기호로만 봐야 할까?’, ‘남자가 주인공인 영화가 흥행이 더 잘 되는 걸 어떻게 해?’, ‘여성관객이 남자 주연영화를 더 보는건데.’, ‘자본주의 사회에서 더 능력있는 사람이 기회를 얻는건데 여성감독이 잘 만들고 흥행 잘 되면 안 써주겠냐?’는 반응이 많은 현실을 문제제기하는 게 여성감독으로서 실패하는 기분을 들게 한다”고 꼬집었다.

박 감독은 “여성감독은 개별 존재로 영화를 만들지만 결과를 항상 여성감독을 대표한다는 압박에 시달린다”면서 “전국 대학의 영화과 학생 절반은 여성이지만 감독의 성비는 심각한 불균형이고, 촬영과 조명 등은 여전히 금녀의 구역”이라고 언급하며 할리우드는 여성영화를 위한 펀드를 조성해서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고 소개했다.

최근 영화진흥위원회는 지난해 미투운동 이후 성평등 소위를 구성한데 이어 지원사업의 심사위원 성비를 5:5로 맞추토록 했으며, 참여자 역시 성비 통계자료 제출이 의무화됐다. 박 감독은 “세상의 절반은 여잔데 이 분명한 사실을 외면하는 영화 속에서 다양한 얼굴을 만나고 싶다”며 “할 수 있는 일이 많은 만큼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 감독의 지적처럼 경력이 길수록 지위가 올라갈수록 여성의 숫자는 극도로 낮아진다. 전국의 대학 연극영화과 학생 중 여성비율은 59%에 이르지만 제작비 30억 원 이상의 상업영화 여성감독 비율은 불과 2.5%다.

남성 독식구조가 공고한 영화계의 문제도 있지만 경력단절로 인한 인력 불균형도 주원인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선진국에선 찾아볼 수 없는 30대에서 고용률이 급격히 떨어지는 ‘M자형’을 보이고 있다. 선진국들은 ‘∩자형’이 보통이다. 국회 입법조사처에 의하면 경력단절 여성은 190만~200만 명 규모로 전체 기혼여성의 20%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2018년 OECD 통계를 보면 30~40대 여성고용률은 스웨덴이 가장 높았지만 우리나라는 65.1%로 가장 낮았다.

30대 여성고용률의 급격한 추락은 비단 영화계만의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파급력이 높은 문화콘텐츠인 만큼 영화산업에 있어서 M자형 곡선 완화를 위한 정책적 개입은 분명 필요하다. 선진국에선 일·가정 양립정책, 시간제 일자리 확대, 노동시장 차별 완화 정책, 임금격차 해소 및 근무여건 개선 등의 정책으로 효과를 거둔 사례가 많다.

문화체육관광부 영상콘텐츠산업과 이지원 사무관은 “문체부는 미투운동 이후 한정된 인력과 예산으로 성희롱·성폭력 예방에 우선 초점을 맞춘 게 사실”이라며 “영화계의 고질적 문제인 장시간 근로문화 개선 등을 통한 성평등 확산을 위해 정책적 개입을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에 빛나는 영화 기생충이 주목받은 건 바로 주 52시간을 지키며 만든 영화였단 점이었다. 반대로 말하면 주 52시간을 얼마나 지키는 게 힘든지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오랜 근로시간은 여성의 경력단절을 부추기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여성가족부 조민경 여성정책과장은 “성평등 문화확산을 위해 인식개선의 정책을 추진해 왔는데 서울국제여성영화제와 여성인권영화제 등 지원에 나선 바 있다”면서 “여성영화감독 지원 공모사업 예산에 1억 원을 편성했고, 스쿨미투를 주제로 한 영화가 내년 개봉예정이며, 양성평등교육진흥원에서는 영화콘텐츠를 성인지 교육에 활용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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