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자수필-귀농아지매 장정해 씨의 추억은 방울방울

역광을 받아 까맣게
줄지어 선 실루엣
라인이 섬세하다...

잿빛 하늘이 손에 잡힐 만큼 가까이 내려와 있다. 골난 아이처럼 몹시 찌뿌둥한 하늘이 순식간에 캄캄해지더니 싸락눈을 흩뿌리기 시작했다. 하늘과 아파트를 가르는 선이 풀어지고 뭉개지면서 눈은 모든 것을 감춰 버렸다. 길이 미끄러울까? 낼은 날이 추워지려나? 시골집 복동이(개) 물그릇은 얼지 않았을까? 이런 저런 걱정을 하며 병원으로 간다.

작은 딸의 소개로 구리시에 있는 한방병원으로 다니기 시작한 지 이제 3주차. 주중에는 괴산에서 지내고 주말에는(토~월) 서울에서 주일을 보내며 병원 치료를 받고 내려간다. 이틀 밤이나 사흘 밤을 딸네 집에 머물 수 없어 비어 있는 방 하나를 빌려 겨울 동안 한방치료를 받기로 했다.
한의원에서 진료 순서를 기다리다가 병원 벽에 걸린 그림(?)에 시선이 꽂혔다. 강렬한 황금 모래벌판을 배경으로 제대로 걸친 것도 없는 천진난만한 까만 소년들이 유쾌하고 즐겁게 뛰노는 그림 두 점. 척 봐도 아프리카 같은 곳일 듯했다. 남편이 등 뒤에서 “잘 찍은 역광 사진이군. 바다 표면에 강렬한 석양을 포인트로 두고 아이들은 까맣게 실루엣으로 찍었는데~ 이런 타이밍을 만나기는 쉽지가 않지”라며 한 마디 한다.

모래벌판이 아니다. 지는 태양빛을 받아 바다 물결이 온통 황금색으로 번쩍이는 배경에 멀리 배 한 척과 가까이 물장구치며 뛰노는 아이들의 율동이 까맣게 박혀 깔깔대며 웃는 소리까지 들리듯 그 강렬함에 나는 마음이 심쿵할 정도로 사진에 반해버렸다. 원초적 생명의 찬가였다. 오늘 우리가 사는 시대에는 시골에서조차도 저런 날것의 야생을 볼 수가 없다.  살아 온 날의 추억이 역류하듯 잊어버린 우리의 옛날이 저절로 떠올랐다.

우리의 어린 시절 가난도, 불운도 어쩌지 못했던 시절, 달콤하고 고소한 것도 없고 재미난 TV나 핸드폰, 컴퓨터도 없었지만 그 결핍과 심심함이 오히려 인간적인 풍요와 우애, 관심을 살아나게 했고, 그래도 자기 앞가림하며 함께 살아가는 능력을 키워주던 시절이었다. 여백이 넘치는 긴 시간동안은 우리가 주인공이 되는 무대였고 어른들 몰래 다니며 저지르던 아찔한 모험과 탐험이 있던 시절, 풍요로운 가난과 빛나던 나날이 우리 속에도 살아 있었다.   

지금 이 시대는 돈 없이 살 수 없고 돈이 있어도 삶이 없는 시대가 된 것은 아닌가. 빠른 속도와 폭포 같은 정보 속에서 누구나 똑똑해진 시대다. 그런데도 삶에서 가장 중요한 어떤 능력이 고갈돼 있음을 느낀다. 그 한의원의 역광 사진은 내 살아온 날을 순식간에 되돌아 보게 했고 오늘 내가 무엇을 잃어버리고 사는지 단번에 기억나게 했다.

아니나 다를까 복동이는 물그릇에 꽁꽁 언 얼음을 혓바닥으로 핥아 동그랗게 패여 있어 새 물을 떠다주고, 서울에서 살다 온 짐들을 정리하고 다시 괴산에서 하루를 시작한다. 서북향으로 거실창이 나 있는 우리집에 겨울 석양이 나뭇가지 사이로 후광처럼 산을 둘러 비추고 있다. 풍경화를 그려본 사람은 또 가득 채운 그림을 그려본 사람은 안다. 밑바탕의 중요함을. 그리고 여백이 주는 서정적인 가치를. 낙엽을 떨구고 선 나무들이 까치발을 하고 산등성이 역광을 받아 까맣게 줄지어 선 실루엣 라인이 섬세하다. 멀리 있어도 나뭇가지 뼈 마디마디가 빛에 관통돼 세세한 것까지 다 드러나 보이는 정갈함, 솔직함, 겸허함이 경외롭다. 

존재조차 없던 작은 것들이 저 영원에서 비추는 듯한 역광을 받아 짧은 순간 무대 중심으로 자신의 존재를 장엄하게 드러내는 것에 나는 박수치며 환호한다. 오늘 태양은 내겐 최고의 연출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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