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환승센터 구축·보도블럭 정비도 성인지예산으로 편성

2010년 성평등한 재정운용을 목표로 도입된 성인지예산제도가 도입돼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뤘지만 “도대체 성인지예산이 뭐야?”는 목소리가 있는가 하면, 단순 성별만 분리해 통계가 가능한 일자리사업에 성인지예산이 쏠려 있는 허점도 노출하고 있다.

국가재정법은 국회에 제출되는 예산안에 ‘성인지 예산서’, 즉 여성과 남성에게 미칠 영향을 미리 분석한 보고서를 첨부하도록 했다. 그리고 여성이 동등하게 예산의 수혜를 받고 성차별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집행됐는지를 평가하는 보고서인 ‘성인지 결산서’ 작성 의무도 명시돼 있지만 성평등 현실의 벽은 여전히 높기만 하다.

2020년 정부의 예산안을 보면 284개 사업, 31조7963억 원이 성인지예산으로 편성됐다. 일자리 정부임을 내세우는 문재인 정부의 일자리 사업 예산 25조 원보다 훨씬 큰 규모다. 외형적으로 크게 성장했다곤 하지만 실상은 부실 편성사례가 다수 확인됐다.

247억 원이 투입될 국토교통부의 ‘환승센터 구축지원사업’은 성평등과는 무관함에도 대중교통 의존도가 여성이 높다는 주관적 판단으로 성인지예산 사업으로 제출됐다. 자전거 보관대 사업도 같은 이유로 제출됐다. 여성이 하이힐을 신고 파손된 보도블럭에 빠질 수 있단 이유로 ‘보도블럭 정비사업’이 성인지예산에 포함되기도 했다.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국회에서 의회 참여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어린이국회 사업’은 성별을 불분명해 성평등 목표 해소에 어떤 기여를 했는지 알 수 없는 사례에서 보듯이 성평등과 무관한 사업들이 억지로 끼워넣기 편성으로 성인지예산이 방패막이가 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 버스환승센터 구축지원사업은 여성의 대중교통 의존도가 높다는 이유로 성인지예산으로 편성됐다.

성평등과 무관한 사업을 성인지예산 방패 삼아
성인지예산 상설협의체·평가위원회 법적근거 필요

지난 5일 ‘성인지예산제도 성과관리 및 확산 정책토론회’를 주최한 더불어민주당 유승희 의원은 “중앙선관위의 여성추천보조금은 여성정치 참여 확대라는 목적을 갖고 있음에도 10년간 1번도 성인지예산에 포함된 적이 없다”면서 “성인지 관점이 부재한 공무원들의 예산 편성도 문제지만 목표달성을 관리하고 평가할 법적 근거가 없는 게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유 의원은 “기획재정부와 여성가족부,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성인지예산 내실화를 위해 상설협의체를 정례화하고 있지만 법적근거가 없다”면서 “다행히 이번 국감에서 기재부 장관에게 상설협의체 법적근거 마련과 민간 외부위원으로 구성된 평가위원회 설치의 긍정적 검토를 확인한 바 있다”고 밝혔다.

중앙대학교 경제학부 류덕현 교수는 성인지예산제도의 내실화를 위해 성평등 목표 달성 여부의 성과관리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류 교수는 “현재 성인지예산이 성과를 달성하지 못하면 부처나 담당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기 때문에 성과평가체계가 마련되면 성인지예산을 편성한 부처의 책임성이 확보되고, 성평등에 이 사업이 목표달성에 얼마나 기여했는지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그 과정에서 다양한 정보가 생산되고 기존정책과도 공유함으로써 시너지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평가방법은 외부 민간전문가를 중심으로 평가위원회를 구성하되 평가대상에 ▲성인지예산 성과지표 미달성 사업 ▲성별영향평가 기준 미달 사업 ▲전년도 성인지예산 미흡 판정 사업 등은 반드시 포함시켜야 한다고 류 교수는 덧붙였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권인숙 원장은 “예산은 가장 중요한 정책도구이자 사회경제적 우산순위를 반영하는 척도인데도 의도하지 않는 성차별 효과를 발생시키는 경우가 있어 성인지예산이 필요한 것”이라면서 “양적성장에도 불구하고 대상사업 선정의 적절성, 성과관리의 실효성, 성평등 개선 효과 등에 있어서 문제점도 노출돼 실질적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고 밝혔다.

권 원장은 “연구원 내 성인지예산센터를 통해 성인지예산제도가 진정한 국가재정 활동의 성주류화 도구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연구와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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