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희 칼럼 - 누리백경(百景)(119)

# ‘거리에서 죽은 쥐가 날로 늘어났고, 트럭으로 수거하는 양도 매일 아침 더 많아졌다. 나흘째가 되자 쥐들은 떼지어 밖으로 나와 죽기 시작했다.… 아침이 되면 개천 바닥에서 뾰족한 주둥이에 빨간 꽃같은 핏망울을 머금은 죽은 쥐들이 줄줄이 널려 있었다.’

알베르 카뮈(1913~1960)의 장편소설 <페스트(La Peste)>(1947년)는 이렇게 시작된다. 카뮈는, 알제리 해변도시 오랑에서 페스트가 발생하자, 완전히 폐쇄된 이 도시에서 주민들이 페스트에 도전하는 얘기를 소설로 써 베스트셀러가 됐다.
# ‘흑사병이 1348년 이 항구를 통해 영국에 유입되다. 이 병으로 국민 전체의 30~50%가 사망하다.’
(‘The Black Death’ Entered England in 1348 through this port it killed 30~50% of the country’s total population.)

영국 웨이머스(Weymouth)항에 새겨진 흑사병(페스트) 동판의 문구다. ‘흑사병(Black Death, 黑死病)’이라는 명칭은, 페스트 환자의 사지와 코 등의 피부가 괴사를 일으키면서 검게 변하는 증상에서 따온 것이다. 1300년대 초, 중앙아시아 스텝 초원지대에서 처음 발병한 페스트는 실크로드(비단길)와 유목민족을 거쳐 유럽과 아시아 대륙으로 빠르게 퍼져 나갔다. 이때 영국에서만 약 400만~700만 명이 페스트로 죽었고, 유라시아 대륙에서 총 7500만~1억 명이 사망했다.
이로 인해 인구가 급격히 줄어들자 노동력이 부족해져 영주와 귀족이 이전처럼 농노를 착취할 수 없게 됨으로 해서 중세 유럽의 봉건제가 한 순간에 무너졌다.

# 페스트는, 과거에는 ‘흑사병’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공포의 전염병이었다. 페스트는 페스트(pestis)균에 감염된 쥐벼룩에 물리면 감염된다. 감염된 야생동물과 접촉하거나, 폐(肺) 페스트 환자가 재채기 할 때 나오는 침방울로도 전염될 수 있다. 이때 쥐벼룩에 물린 자리 주변 림프절이 부어오르고 아프며, 발열·오한·두통·저혈압 증세가 나타난다. 잠복기는 1~7일이다. 19세기 프랑스 화학자 파스퇴르(1822~1895)가 발병원인과 치료법을 알아냈지만, 안타깝게도 예방백신은 없다.

# 최근 이웃나라 중국의 네이멍구(내몽고-베이징 북쪽 500Km 지역) 시린궈러 지역 거주자 부부(43세·46세) 2명이 처음 폐페스트에 감염된 이후 2명이 추가로 발생, 중국 당국이 쥐 소탕작전을 벌이고 있어 우리 보건당국이 긴장 속에 상황을 예의주시하면서 주의를 당부하고 나섰다.
머나먼 옛날, 인류의 대재앙으로까지 일컬어졌던 흑사병은, 지금도 여전히 전 세계적으로(주로 아프리카) 연평균 2500여 명이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또한 어쩌면 사악하기 이를데 없는 인간들에 대한 ‘보이지 않는 손길의 끝없는 저주’ 일지도 모를 일이라는 부질없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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