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미월의 문학향기 따라 마을 따라 - 충북 영동

▲ 월류봉(사진제공/영동군청)

천태산 은행나무와 월류봉 풍광
시상을 깨우고 달을 붙잡는다...

잘 익은 감이 주렁주렁 달린 거리를 걸으면 어떤 기분이 들까? 들녘이 아닌 시내 한복판 가로수에서.
만추(晩秋)가 되면 감나무 가로수가 등을 밝히고 나그네를 따뜻하게 맞아 주는 곳, 천태산 영국사에는 천년 은행나무가 노란 황금빛 잎을 별처럼 반짝이는 곳 충북 영동이다.
군청 소재지인 영동읍에는 주곡천과 양정천의 이수(二水)가 합류해 영동천을 이룬다. 이수(二水)를 한 글자로 표기하면 영(永)자가 된다. 영동이라는 지명은 이수(二水)와 길동(吉同)에서 유래됐다. 그런가 하면 영동은 포도가 유명해서 가을이면 ‘영동포도축제’가 열리고 황간에 가면 달이 머물다 가는 월류봉(月留峯)이 나그네의 발길을 머물게 한다.

은행나무 아래서 노랗게 물든다
자가운전이 아닌 경우에는 영동역에서 천태산 가는 버스는 하루 6회 정도로 자주 없어서 맞추기 힘들다. 택시로 20분 정도의 거리다.
영국사에 가면 천년이 넘었다는 천태산 은행나무(천연기념물 제223호)의 위용에 놀란다. 이 은행나무는 천 년이 넘게 생의 중심을 잃지 않고 있는 자연과 인간의 상징물이다. 천 년이라는 세월 동안 가난하고 소외된 아픈 삶을 어루만지며 하늘을 오롯이 품은 나무, 그대로의 삶을 위풍당당하게 보여주는 나무다.

▲ 천태산 시모음집 ‘천태산 별나무’

천태산 은행나무 앞에서는 해마다 시제(詩祭)를 지낸다. ‘천태산 은행나무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올해 전국에서 401명 시인들의 자작시를 모아서 ‘천태산 별나무’란 책자를 발간했다.
또한 축제 기간에 시인들이 낸 작품들을 한 작품씩 걸개로 만들어서 천태산 골짜기에 걸개시를 전시했다. 진귀하고 서정적인 풍경이 연출됐다. 각기 다른 시들을 감상하며 골짜기를 따라 걷는 일은 단풍과 어울려 시적 감성에 푹 빠지게 한다. 올해 발간된 ‘천태산 별나무’ 시집에 필자도 동참했다.
졸시(拙詩)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살구와 자두나무를 접붙여서 심는 날/ 햇살과 바람에 새 울음이
새살 돋고/ 볼 탱탱 다디단 과실 열리는 꿈을 꾼다
거름 주고 가지치기 사람의 일이라면 /목마를 때 비 흠뻑 내리는 건
하늘의 일/둘이서 한 몸이 되어 무성하게 번진다.
해도 해도 죽어라 안 되는 일 비일비재/ 나무와 사람 사는 일
어디 크게 다를까/ 나무도 제 할 일 다 해 금빛 나는 과일들
                                                          「나무와 사람」 류미월


 

▲ 영국사 은행나무(사진제공/영동군청)
▲ 천태산 은행나무 시제(詩祭)(사진제공/영동군청)

와인열차 타고 낭만 여행을~
영동 포도는 맛이 좋기로 유명하다. 영동에는 와인 동굴, 와이너리, 와인 족욕 체험장 등 포도와 와인에 대해 깊이 알고 체험하기 좋은 곳이다.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가을 여행은 영동으로 가면 좋을 터.
‘대한민국 와인 축제’가 영동에서 10월 초면 열린다. 기차로 즐길 수 있는 와인열차는 하루 당일치기 여행이지만 마치 2박3일 여행을 다녀온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을 만큼 풍성하고 알찬 여행코스로 짜여 있다. 서울역을 출발해 영동역에 닿는 코레일 열차에서 조식 제공과 2명당 1병의 와인과 고급 와인잔이 제공된다.

영동역에 도착하면 버스에 탑승해서 와인 족욕체험과 인근 노근리 평화공원 등을 볼 수 있다. 기차 외관도 포도 모양 그림이 그려져 있어 설렘을 증폭시키고, 기차 내에서 7080 라이브공연도 즐길 수 있다. 지루할 틈이 없이 즐거운 일정으로 꽉 차 있다. 가을엔 한번쯤 와인 열차를 이용해보자. 기억에 남는 멋진 추억을 남길 테니 말이다.
2018년에 ‘영동 와인 터널’이 생겨서 볼거리가 풍성해졌다. 올해 당일 와인열차 가격은 와이너리 투어+난계 국악체험 코스가 10만 원 전후였다.

월류봉 앞에 서면 나도 풍경...
영동군 황간면 원촌리에는 깎아 세운 듯한 월류봉(月留峯)이 있다. 일반인들에게 그리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숨은 명소다. 우암 송시열은 월류봉에서 많은 시문학을 남겼다.
산 아래로 금강 상류의 한 줄기인 초강천이 흐르고 깨끗한 백사장, 강변에 비친 달빛 또한 아름답다. 월류봉은 다섯 개의 봉우리가 병풍처럼 둘러있고 그 아래로 맑고 깨끗한 금강의 한 줄기인 초강천이 굽이굽이 감돌아 흐르며 그 풍광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이 비경 앞에는 달(月)도 가지를 못하고 머물다 간다고 한다.

월류정이 보이는 둘레길에서 단풍이 곱게 물들기 시작한 초강천을 내려다보는 것만으로 한 폭의 수채화를 보는 듯하다. 월류정은 팔각정이라고도 하는데 최고의 풍광을 보여주는 곳으로 많은 사진작가와 화가들도 자주 찾는 명소다. 월류정 앞에 서면 시 한 수를 읊고 싶어진다. 깊어가는 가을에 월류봉을 찾아가 유유자적하며 자신을 돌아보는 것도 좋은 일이리라.
황간은 영동역과 추풍령역 사이에 위치한다. 영동역에서 운행되는 버스를 이용해도 좋다.

영동은 가을의 깊은 속살과 만나기에 좋은 곳이다. 단풍이 잎을 떨구고 쓸쓸함이 묻어나는 조락의 계절에 나그네를 엄마 품처럼 포근하게 맞아준다. 가던 발길을 잠시 멈추고 아름다운 경치에 푹 빠져 풍월을 읊고 느리게 걷고 싶은 고장이다. 쉼표가 있는 영동이다. ‘종로에는 사과나무를 심어보자’는 노랫말이 어느새 “가을이면 감이 주렁주렁 열린 영동 거리를 걸어보자~ 감이 익어 가면 우리의 사랑도 익어 가리라~~” 나도 모르게 입에서 노래가 흘러나오는 곳 영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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