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명견 교수의 재미있고 유익한 옷 이야기(72)

아무 옷에나 잘 어울리고
고풍스러운 매력까지 더해
다시 각광받고 있는 벨벳

체코 수도 프라하에서 지난 11월17일, 시민들이 촛불을 켜들고 체코슬로바키아 민주화혁명인 ‘벨벳혁명’ 30주년을 기념했다.
벨벳혁명이라는 말은 1989년 11월 수십 만 명의 체코 시민과 학생들이 비폭력적으로 공산정권을 무너뜨리고 민주화 혁명을 이뤄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일반적인 혁명과 달리, 체코에서의 비폭력적 성공도 기적이지만 여기에 ‘벨벳혁명’이란 호칭이 붙은 것도 매우 흥미롭다. 

다 알고 있듯이 벨벳이란 한 옷감의 명칭이다. 벨벳(velvet)은 이탈리아의 벨루티가(Velluti家)에서 유래됐다고 하여 이탈리어로 벨루토(velluto), 포르투갈어로는 벨루도(veludo), 일본은 비로도(ビロード), 한자로는 우단(羽緞), 영어로 벨벳(velvet)이라고 쓴다. 털이 서있도록 짜서 깃털처럼 부드럽고 우아한 광택과 매우 높은 보온성을 가진 직물이다. 당초에는, 직물의 특성상 결이 엄청나게 촘촘해야하기 때문에 오직 비단실로만 짤 수 있었다. 때문에 값이 너무 비싸, 왕실과 종교지도자들 같은 특수계층에서만 사용했다. 요즘은 발달한 직조기술 덕분에 일부 최고급품을 제외하곤 레이온을 섞거나 합성섬유 등 여러 섬유가 사용된다.

그렇다고 이탈리아가 벨벳을 처음으로 발명한 나라는 아닌 것 같다. 중국, 이집트, 이라크가 서로 원조라며 우기고 있고, 기원전 3세기 중국의 진나라 때, 견(絹)에 직조된 벨벳 조각이 발견됐다는 점에서 연대순으로는 가장 앞선다. 중국의 비단에 매혹된 유럽인들에게 실크로드를 통해 전해져 이탈리아가 유럽에서 처음으로 벨벳산업을 일으킨듯하다.
그러나 이 직물의 직조 방법이 어려워서 벨벳의 장인이 되는 길은 매우 험난했다. 4년에서 8년 이상의 훈련을 거치고도 다양한 시험에 통과해야 했지만, 일단 장인이 되면 일반 직조공들의 30~40배가 넘는 수입을 얻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이탈리아의 도시국가들은 13세기부터 18세기까지 벨벳산업을 전략적으로 육성해 엄청난 부를 얻었다. 때문에 velvet이라는 단어 속에는 ‘도박으로 딴 돈 혹은 예상한 것 이상의 수익’의 의미가 숨어있다.

과학과 직조방법이 발달하며 다양한 종류의 벨벳이 만들어지고 있지만, 현재도 벨벳은 고급직물로 취급되고 있다. 여성이나 아동의 옷감 외에도 레깅스, 장갑, 실내장식 등 다양하게 쓰이고 있다.
벨벳이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1930년대다. 여전히 사치품이었고, 한때는 물자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사치규제 대상이 되기도 했다. 사람들은 벨벳이 가진 오묘한 매력과 고급스러움 때문에 자칫 소화하기 어려운 소재라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근래에 들어 아무 옷에나 잘 어울리는데다 고풍스러운 매력까지 더해져 다시금 각광을 받고 있다.

피흘림 없이 이뤄진 체코의 민주화혁명이 얼마나 아름답게 느껴졌으면 벨벳혁명이라 이름 했을까. 핵을 머리에 이고 사는 대한민국이 조그마한 땅덩어리 안에서 전라도니 경상도니, 진보니 보수니 하며 사분오열 돼 앙숙처럼 싸우고 있는 게 작금의 세태다.
부드럽고 우아하고 서로의 체온을 감싸주는 벨벳의 세계가 새삼 좋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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