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희 칼럼 - 누리백경(百景)(118)

김치가 한국인의 밥상에서 점점 멀어져 가고 있다. 지난 2013년 ‘김장, 김치를 담그고 나누는 문화’라는 제목으로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오른 게 무색하게 김장은 그냥 ‘정신문화유산’으로 남을 모양새다.

‘김포족’은 김장을 포기한 주부를 일컫는 요즘의 신조어다. “요즘 세상에 돈 낭비, 시간 낭비인 김장을 꼭 해야 하나요?”하고 반문하는 주부들이 전에 없이 많이 늘었다.

국내 유수의 한 식품업체가 주부 3115명을 대상으로 한 ‘김장’ 관련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절반이 넘는 54.9%가 ‘김장을 포기 한다’는 ‘김포족’으로 나타났다. 그 ‘김포족’의 58%는 김장 포기 이유로, 고된 노동과 스트레스로 인한 후유증을 들었으며, 직접 담그는 것을 포기하는 대신 포장김치를 사먹겠다고 응답했다. 사 먹는 것이 훨씬 합리적이란 인식이 형성돼 가고 있는 것이다.

또한 한 일간신문이 성인 남녀 253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김장 설문’에서도 ‘김장을 안 한다’는 응답자가 38%로 ‘올해 김장을 직접 한다’는 응답자 34% 보다 많았다. 응답자의 28%는 ‘시댁(본가)이나 친정(처가)에서 한다’고 답했다. 이들 응답자 대다수가 ‘명절 스트레스를 한 번 더 받는 느낌’, ‘입맛에 안 맞고, 처치곤란으로 시댁과 갈등을 겪은 적이 있다’고 토로했다. 이런 갈등은 아래 젊은 세대로 갈수록 부모세대와의 세대 차를 더 많이 느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뿐만 아니라 응답자의 절반 이상(57%)은 ‘김치를 매일 먹는다’고 답했지만, 20대 응답자의 14%는 아예 ‘안 먹는다’고 답했다.
더 나아가 ‘김치 없이 살 수 있다’는 답도 20대는 29%, 60대는20%나 됐다. 점점 더 편리함 만을 좇는 세상으로 흘러가고 있다.

이렇다 보니 가전제품, 특히 김치냉장고에 대한 생각들도 많이 변했다. ‘김치냉장고를 필수 가전으로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40대 69%, 50대 83%, 60대 이상 84%가 ‘그렇다’고 답한 반면에 20대(55%)와 30대(51%)는 절반 정도만 필수품으로 생각하고 있어 커다란 인식 차를 보이고 있다.

‘무 배추 캐어 들여 김장을 하오리라/앞냇물에 깨끗이 씻어 소금 간 맞게 하소/고추 마늘 생강 파에 조기 김치 장아찌라 /독 옆에 중두리(작고 배 부른 오지그릇) 요 바탱이(중두리보다 조금 작은 오지그릇) 항아리라/양지에 움막 짓고 짚에 싸 깊이 묻고/장다리 무 아람 한 말 수월찮게 간수하소.’
하던 옛 <농가월령가>(10월령) 속의 김장담그기 모습은 점차 사라지고, 이젠 박물관에나 가야 볼 수 있을 세상이 빠르게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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